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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피 Oct 31. 2024

[가정폭력 생존일지] 형사소장을 작성하다

세상이 나보고 죽으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여성의 전화에서 내가 겪은 일이 가정폭력임을 알려주고 나서 내가 취한 조치는 다음과 같다.


1. 1366에 연락하여 가정폭력 사실 확인서 발급 요청

2. 동사무소에 방문하여 등초본 열람 제한 및 복지 제도 상담

3. 우리 동네 변호사 상담 신청

4. 변호사를 만나기 전 내가 겪은 일을 형사/민사 양식의  고소장으로 만들기

5. 과거 일을 복기하다가 스스로의 바보 같음에 지쳐 자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 정신건강센터에서 전화 상담 시작.





사실 올해 4월 5일, 그 인간들이 내게 지운 빚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었다.

표면상으로는 다른 트리거가 있었지만 내면의 기폭은 이것이었다.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었다.


채무통합을 했지만 결과는 기대했던 것과 달리 한 달에 60만 원, 6년. 부모가 했지만 묶이지 않은 대출도 있어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다시 채무 통합을 신청해야 하는데 그러면 3개월 동안 또 독촉전화에 시달려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걸 견딜 자신이 없었다. 집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핸드폰을 꺼놓고 지내야 하는, 모든 걸 견딜 자신이 도저히 없다. 


고소장을 쓰면서는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몰라 13살, 지난 회차에서 썼던 일부터 차례로 썼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이사이, 시간이 비거나 점심시간에 가만가만히 쓰고 싶은 대로 썼다. 거의 일기 수준으로 초안을 뽑고 친구에게 보냈다. 친구는 "너는 왜 여기서도 그 인간들을 이해하려고 해?"라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쓴 소장에는 "피고소인들에게도 삶이 버거웠을 것입니다. 그런 니 저에게 집안일을 맡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설거지를 못한다고 때릴 것까진 없지 않나요?"라는 식으로 쓰여 있었다. 이것은 고발의 문장이 아니라 하소연의 문장이었고 고소장에 적을 문장이 아니라 상담사에게 말해야 하는 형식의 문장이었다. 하여 초안을 토대로 나는 객관화 작업을 진행했다.



화가 치밀 때마다 고소장을 뜯어고쳤다.

피고소인은 13살인 고소인을 폭행했습니다. 손에 잡히는 것으로 혹은 손과 발로 폭행했습니다. 이마트에서 사 온 대나무 회초리가 부러지면 옷걸이로 폭행했습니다. 손이 부어 때릴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손목부터 팔이 접히는 부분까지 폭행했습니다. 청소기로도 폭행했습니다. 몇 번은 걷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피고소인들은 병원에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쓰기 시작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처럼,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주에 1회, 전화로 상담사가 전화를 걸어와 이야기를 나눌 때도. 상담사가 "기분을 어떻게 조절하세요?"라고 물으면 "고소장을 써요. 객관화된 언어로 거리 두기가 되니까 마음이 편해요. 내 일이 아닌 거 같아요."라고 답했다.


문제는 고소장을 다 쓰고 난 뒤였다. 다 쓰고 나니 13살부터 33살(만 32살)... 근 20년 동안의 모든 일이 서류로, 그것도 문자 메시지나 입금 내역 등 다양한 증거들과 함께 내 눈앞에 150페이지로 빼곡히 나열 돼 있었다. 고소장을 쓰면서 여기저기 연락하며 변호사 선임을 알아봤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여성의 전화에서 안내해 준 곳은 대한법률구조공단과 한국가정법률상담소였고. 나는 이름이 제일 그럴듯한 한국가정법률 상담소에 전화를 걸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건 대여금 반환 청구를 하면 된다, 가정폭력으로 풀 일이 아니다. 당신이 성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연락해라."라고 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는 "당신이 미성년자냐? 성인이면 지원받을 수 없다. 맞은 거냐? 그게 아니면 어렵다. 민사냐? 민사가 아니면 안 된다."라고 해서 끊었다. 그리고 다시 판플랫을 보며 전화를 걸어 "판플랫에는 무료로 민사, 가사 소송대리, 형사소송 지원, 법률상담 등을 지원한다고 되어 있는데 왜 안 되냐?"라고 물었더니 "그건 형사소송이잖아요. 소송 몰라요? 소장은 알아서 쓰시고 상담 예약해서 오면 봐드리지만 접수하고 진술은 알아서 하시고 법원 송치가 되면 그때 다시 예약 잡고 오세요."라고 했다.


"기일이 잡히면요?"

"미뤄야죠."

"안 밀리면요?"

"어쩔 수 없죠? 근데 보통 미뤄줘요."


입에서 욕밖에 안 나왔지만 그냥 전화를 끊었다.




사실 형사 소송 정도는 사실 관계만 맞으면 소장이 형편없어도...

우리 동네 변호사에서 자문받은 뒤 혼자 접수하고 혼자 진술하고 와도 되지만.

상대는 내가 제일 잘 아는 그 인간들이다.


그 인간들은 나에게 돈을 줄 바에는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고약한 내가 자작극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와 비싼 변호사를 선임해 올 것이 뻔하다...

하여 나는 변호사가 간절했다. 한 번의 접수로 완벽해야 한다.


하여 이후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 실화탐사대, 궁금한 이야기Y, 자식담보대출이라는 기사를 쓰신 기자님께 차례로 메일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방송국은 모두 답장이 없었고 기자님께는 답장이 와 여러 단체를 알려주셨다. 하지만 답장을  받은 건 월요일이고. 그전 날,  일요일에 나는 한 기사를 봤다.



여가부와 한국여성변호사회가 가정폭력에 대해 법률지원 협약을 맺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상기의 판플랫에는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스토킹과 교제폭력만 상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가정폭력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나는 정말 마지막 기대를 걸고 한국여성변호사회에 내 사정과 내게 필요한 도움을 적어 남겼다. 


그리고 기적처럼 월요일 저녁 7시 즈음, 변호사님께 연락이 왔다.



나를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 주시는 용감하고 멋진 분이다.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있다.





고소를 준비하면서 형사로 할지, 민사로 할지.

그리고 형사로 하면 형사처벌을 요청할지 가정법원으로 송치를 요청할지 많이 고민했다.


나는... 우선 형사 소장을 썼고 이후의 행보는 가정법원으로 송치를 바란다.


부디 그 인간들이 자신들의 죄를 알고 치료받고 남은 생 동안 속죄하며 동생들에게 잘했으면 한다. 나에게는 잘할 필요 없다. 그냥 지들이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자녀대출 해 간 돈이나 돌려줬으면 좋겠다. 그걸로 나에 대한 속죄를 하고 나머지는 동생들에게 베풀었으면 좋겠다. 나는 영영 그들을 보고 싶지 않다. 그냥 동생들에게 그 인간들이 부모로서 존경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리하여 남은 생을 정말로 따뜻하고 환한 가족으로 보내길 바랄 뿐이다.


나는 다 포기했지만 둘째는 아직도 그들과 살고 막내는 부모와 연락을 끊었지만 아직 20대다.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으니, 부디 그 인간들이 먼저 바뀌어서 막내에게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다.


사실 내가 굉장히 신경 쓸 바 아닌 거 아는데.

그렇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 이렇게 해야 편할 거 같아.






참, 이번 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위로를 받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분노해하며 그들을 욕해줬다.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이, 마치 내 인생을 대신 살아 본 것처럼.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조금 지나자 고마웠다.

나는 20년이나 이렇게 살아서 사실 어느 정도로 내 피해가 심각한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저 내가 너무 많이 상처받아 더는 상처받을 마음이 없다는 것만 알 뿐이다.


요즘은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밥을 먹지도 못한다.

뭔가 먹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토해버린다. 하여 굳이 먹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어제저녁에는 윗입술이 떨리기에 설탕을 한 움큼 입에 넣고 물과 함께 삼켰다.

예전에 거식증이 있을 때 쓰던 방법인데... 이렇게 또 이 방법을 쓰게 될 줄이야.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하여, 마침내 오늘 소장을 접수한다. 조사는 아마도 내일 받지 않을까 싶다.


참, 오늘 한국여성의 전화에 들러 가족관계증명서도 열람제한 서류도 받으려 한다.

소송을 마치고 받을 돈을 다 받으면 이름과 주민 번호를 바꿀 계획이라.


성도 바꿀 수 있다고 해서 예쁜 이름들을 수집하고 있다.





아주 먼 미래를 생각하면 고양들과 나, 다.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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