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생존일지] 시즌2, 증인과 증언

여기서부터는 역시 시즌2 라고 해야 좋겠지요

by 김계피

우선 짧은 소식부터 전하자면 보복고소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이 시작 될 예정이다. 정식 재판을 청구했기 때문인데. 솔직히 유쾌하지 않다. 지금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이 많은 데 이런 일로 기운 빼기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죄자가 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재판을 진행해야 하는 이 어리석은 마음은 대체적으로 잊고 지내기로 했다. 그래야 내 생활이 유지 될 수 있을테니까.






2026년 1월의 어느 날

형사 재판의 증인으로 비공개 재판에 참여하고 왔다. 모친과 여동생이 방청을 왔기에 비밀재판을 신청한 나와 남동생은 증언 전 한 번 더 비공개 재판의 필요성을 언급 했다. 단순히 신변적인 안전이나 공포적인 분위기 때문에 보기 싫은 것이 아니라 모친은 다른 사건에, 또한 저 둘이 모두 보복 고소를 하여 다른 사건에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을 하여 비공개 재판으로 전환 됐다. 법원은 가림막으로 부친을 가리려고 했지만 우리의 강력한 요청에 조그마한 방에 들어 가 헤드셋을 쓰고 우리의 증언을 들어야 했다.


처음 증언은 남동생부터였다. 남동생은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는 지 떨어져 말하는 바람에 잘 들리지 않았다. 몇 번인가 도중에 마이크에 대고 말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마찬가지라서 나는 동생이 뭐라고 하는 지 듣지 못했다. 사실 들을 생각이 없었는데... 괜히 앞에 사람이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긴장 돼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해야 할 말을 까먹기 때문이다.


법원 호실 바로 뒤에 대기실이 있어서 곤욕스러웠지만 아무튼 듣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잠을 청했다. 잠깐 졸다가 깨니 남동생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열심히 싸우고 나온 동생을 한번 안아주었는데 다음 증인인 나를 부르던 법원 관계자 분이 잡시 시간을 주셨다. 동생은 떨고 있었다. 웃으면서 잘 하고 올게, 하고 달래주며 증언을 하기 위해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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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서를 하고 내게 물어 본 것들에 대해 준비한 내용대로, 그러니까 기억나는 사실 그대로를 증언 했다. 문제는 내가 진술을 시작하기 전 갑자기 모친과 여동생이 들어 오더니 판사가 나가라고 하는데도 "법원 직원이 들어 와도 된다고 하던대요?"라며 싸우던... 도대체 왜 온 것인지 모르겠다. 모쪼록 그 소동 이후 진술은 잘 진행 되었다. 그러던 중 한 사건에 대해 진술하는데 갑자기 방 안에 있던 부친이 한 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모르게 온 몸이 굳어버리고 머리가 새하얗게 질려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다 들려! 당신도 진실을 알잖아!" 라고.


판사님은 다행이 내 편을 들어 주셨다. 부친에게 "피의자, 한 번만 더 그러면 퇴정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자 머리에서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급하게 진정제를 먹고 물을 마시고 호흡을 고른 뒤 짧게 진정할 시간을 가졌다. 이후 진술을 이어나갔는데... 동생의 말에 의하면 내가 지른 비명이 겁에 질려 지른 비명으로,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고 했다.


모든 진술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가자 부친이 법원으로 나와 대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다 자기들 잘 되라고 한 소리를 저렇게 편파적으로 말하면..." 어쩌고 하는 소리였다. 우리를 안내 해 주시던 분이 저 소리를 들을 필요 없을 거 같다며 우리를 우선 1층으로 안내해 주셨고 1층에서 대기하던 우리는 집에 가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 받은 질문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는데.... 기가막혔다. 상대 측 변호사는 남동생이 망상 장애가 있어서 부친에게 폭행 당한 일을 망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닌지를 주요 논점으로 삼았다고 했다.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한 내용을 문제 삼은 것이다. 어쩐지, 나한테도 동생이 언제부터 정신과를 다녔는 지 물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동생이 정신과에 다니게 된 이유와 시기를 구체적으로 답했다. 본 고소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나에 대해서는 내가 먼저 고소를 하고 남동생이 합류하게 된 건에 대해, 내가 남동생을 꼬셔서 본래 고소 할 마음이 없는 남동생을 합류 시킨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려고 했다고 했다. 남동생은 상당히 어처구니 없어했다. 나는 마이크에 가까이 대고 증언해 남동생이 모두 들었다고 해서 "그래서 내가 그때 '죄송한데 질문이 이상하네요. 이 고소가 어떻게 시작 됐는지 아셔야 할 거 같습니다.'하고 이야기 한 거야."라고 이야기 했다.


전국불효자랑에 적었는 지 아닌 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 고소는 24년 추석 때 남동생의 말로부터 시작됐다. 동생이 "누나, 이 정도면 가정폭력 아니야?"라는 말을 했고 "에이, 그건 아니지~"라고 답한 나.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게 마음에 걸려서 1366에 전화를 걸고 '죄송하지만 선생님, 가정폭력이 맞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은 나.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이 내용을 말하고 동생이 자기도 고소를 하겠다는 걸 말린 내용과 함께 이야기 하자 변호사는 이 부분에 대해 추가로 준비한 질문은 생략하고 모두 넘겼다고 하자 동생은 통쾌해 했다. 사실 진술 준비를 하면서 동생에게 스피치의 기술 중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법을 간단히 알려줬는데. "네가 2번 정도 똑같은 답을 했다고 느껴지면 의도가 있는 질문이다. 그러니 그때는 원래 질문이 무엇인지 묻고 시간을 벌고 생각해라."라고 알려줬다. 동생은 이걸 3-4번 정도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동생을 정신병자로 몰기 위해 부친은 부친의 변호사와 합의 했다는 말이다. 아들 타령을 하는 모친도 합의했을 것이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며 정말이지 모든 정이 다 털려서 어처구니 없어하다가 나름대로 축하 할 일을 만들어 기분 좋게 술이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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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속이 후련해지기 위해 이야기를 하는 행동도 뇌에게는 스트레스 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날 뭐를 축하 했더라. 아마 각자 원하는 걸 하나씩 말하고 그걸 무조건 축하했던 것 같다. 난 오늘 눈 온걸 축하해~ 이런 거 했던 거 같고 동생은 오늘 말 절지 않은 걸 축하해~ 이런 식으로. 좋은 걸 이야기하면 원하든 원치 않든 뇌는 그때부터 좋은 걸 생각한다고 하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거짓말로 멋진 주문을 건 셈이다.







다음 기일에는 여동생이 진술을 한다.


여동생이 어떻게 진술 할지 아는데 위증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는 모양이다. 뭐라고 진술 할지 빤히 보여서 너무 웃기고 벌써 기대 된다. 이미 탄원서는 모두 작성 해 두었고 조금씩 보완하면서 다음 기일에 맞춰 제출하고자 한다. 뭐, 거짓말 하다가 걸리면 혼나는 게 아니라 아주 큰 벌을 받는 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응당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