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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이 Apr 15. 2024

나보다 나이 많은 동생을 보내던 날

먼저 빛이 된 너에게 보내는 편지 (2)

하얀 솜뭉치에 까만 콩 3개.

눈도 동글, 코도 동글, 아이라인도 진하고 입술도 까매서 이목구비가 또렷하던 너.

두상이 예뻐서 바싹 깎아놓아도 예쁘던 너.

하얀 솜뭉치처럼 와서 하얀 눈 오는 날 긴긴 산책을 간 너.


    추운 겨울이 끝남을 알리던 입춘날 저녁, 가족끼리 외출하고 집에 왔더니 피로가 쌓여 침대에 누웠다. 간간이 들리는 말소리와 네게 맛난 캔을 먹이는 소리,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들었어. 그때 널 한 번이라도 더 볼걸.


다음날 일어나니 네가 세워주어도 걷지 못하더라. 골반을 주물러주어도 도통 걷질 못해. 강아지 휠체어를 주문하고, 근육이 굳을까 봐 지지대를 만들어서 걷게 하다 방석에 너를 뉘어주었어. 평소 같으면 싫다고 뒤집어 일어날 텐데 이상하다. 아침밥을 가져다주었는데 입에 음식을 대지 않더라. 물도 안 마시고.

점점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노견 컨디션 난조] 같은 말을 검색했어. 연관 검색어에 뜬 [노견 임종 전 증상]이 눈에 밟히더라. ‘기운이 없다.’, ‘밥을 잘 안 먹는다.’, ‘입으로 숨을 쉰다.’ 등. 게시자가 한 명인지 같은 글에 사진만 갈아 끼워진 수십 개의 게시글을 봤어. 망가진 카세트테이프 같은 글들 사이를 헤매다 [우리 XX 임종 전 증상]이라 적힌 글을 봤어. 지나치기에도 찝찝하고, 보기에도 찝찝한 글을 클릭했지.


강아지 귀가 평소와 다르게 검붉어져 병원에 갔더니 ‘많이 만져주시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며칠 안 가서 별이 되었다는 이야기 었어. 부정하는 마음 반, 불안한 마음 반으로 거실에 가 본 네 귀에 선명한 핏줄이 서있더라. ‘원래 이랬나?’ 설마 하는 마음으로 핸드폰 갤러리를 뒤져 최근 사진을 찾았어.

왜 최근 사진이 일주일 전이지? 여태 나 좋자고 밖에 나가 논 사진은 이렇게 많은데 네 사진은 일주일 전이더라. 일주일 전 사진은 연분홍색 귀인데, 지금은 검붉은 혈관이 도드라져 보여 혼란스러웠어.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너무 잘 놀고, 밥도 잘 먹고, 똥도 잘 싸고, 물도 잘 마셨잖아. 어떻게 하루 만에 네가 인터넷에서 본 [임종 전 노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아니, 너는 분명 강한 아이니까. 몇 해 전에 도통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했던 네가 고구마를 먹고 살아난 것처럼 이번에도 그럴 것이길 바랐어. 나이가 들면서 맛이 좋고, 소화에 문제가 없는 음식들만 먹였잖아. 고구마, 유아용 치즈, 소량의 츄르, 유당분해 우유, 강아지 죽. 환장하고 먹어대던 것들을 주는데 얼굴을 피하더라. 코 끝에 발라주면 반응이라도 해야 되는데… 혀 끝에 물이 닿았는데 반응이 없더라고. 그래서 기력이 안 좋으니 내일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추자 했지.

이때 병원에 갔으면 뭐가 달랐을까? 낮이고 밤이고 동물병원에 도장 찍기 해대던 내가 왜 그날은 병원에 안 갔을까.


    작년 여름이 지나면서부터 너는 한평생 괜찮던 마룻바닥에 미끄러지더라. 그래서 네가 자주 있는 자리에 도톰한 미끄럼방지 매트를 깔아주었어. 그러다 네가 서클링(같은 자리를 도는 행위)을 하기 시작했어. 서클링을 하면서 딱딱한 가구에 머리를 박아대니까 울타리를 쳐주었지. 새벽마다 같은 자리를 돌아대는 널 보면서 내가 미치는 것 같았어. 무섭고 불안한 마음을 짜증으로 대신했어. 몇십 분을 좁은 공간을 돌면서 울타리에 머리를 박아대는 것보단 넓은 곳에서 미끄러지는 게 나아 보여 울타리를 치웠어.

넌 한 바퀴를 돌더니 집안을 돌아다니더라. 울타리 밖 원래 물을 먹던 자리에서 물을 마시고, 냉장고 앞에 한번 가봤다가 화장실 안까지 들어가서 오줌을 누고 돌아와 자더라. 울타리 안에 물그릇도 있고, 기저귀도 있었는데. 너는 몸이 조금 불편해도 원래 하던 대로 하고 싶었나 봐.

그 뒤로 울타리는 치워두었는데 가족이 모두 집을 비운 날. 늦은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서랍 밑에 들어가 있는 널 봤어. 왜 거기 있을까? 미끄러져도 일어났는데 점점 그마저도 어려워 밀리고 밀려 거기까지 들어갔구나. 그날 울타리를 다시 꺼냈지. 내가 없을 때 찬 바닥에 누워서 배앓이라도 할까 봐 그래서 그랬어.


눕혀준 대로 누워있는 널 보면서 울타리를 치웠어. 울타리를 해놓을 이유가 없더라고. 네 코 앞에 누워 계속 쓰다듬었어. 그러다 잠든 널 바라봤지. 눈이 가물어지다 움직임이 없는 널 보고 놀라 깼다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걸보고 다시 눈을 감았어. 네 코 고는 소리가 시끄러워 귀마개를 끼고 잤는데, 이제 숨소리조차 미세하구나.


    가장 어두운 새벽, 선잠에 드는데 네 얼굴 옆에 있던 내 손을 핥더라. 계속 핥더라. 평생 사람을 핥지 않던 네가 내 손을 핥더라. 이 순간이 마지막일까 봐 작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었어. 어쩌면 다시는 부르지 못할 네 이름을 말이야. 작은 소리로 낑소리를 몇 번 내서 가족을 깨웠어.


    - 엄마, 뚱이한테 인사해 줘야 될 것 같아.


엄마는 무슨 소리냐 말했어. 내가 말하지 못했어. 네 귀가 변하고 있는 게 네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를 증상이라는 것을. 그저 ‘귀 색이 변하는 게 걱정되니 내일 병원에 가보자.’고 돌려 이야기했어. 부정하고 싶었고, 평소같이 시간을 보내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다들 알고 있었을 것 같네.

내 옆으로 돌아와 같은 이불을 덮고 누웠어. 강아지 집이 추워 보여서 온방석도 1단계로 틀어져있었는데, 더 따뜻하게 온도를 올리지 못하겠더라. 물도 한 모금 못 마신 네가 탈수라도 올까 봐. 내 체온으로 올려주는 게 나을 것 같았어. 나 체온 높잖아.

엄마는 10분 정도 더 방에 있었어. 그 10분 동안 조용히 코 삼키는 소리가 들렸어. 엄마도 무섭구나.

덕분에 우리 가족은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하루를 시작했어. 거실에 모여 네 모습을 보다 널 부르다 했잖아. ‘지금 병원에 갈까?’ 하다가 오픈시간에 맞춰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어. 그냥, 찬 병원보단 따뜻한 집이 낫다 생각했다.


체온과 비슷한 온도 물을 혀끝에 조금 적혀주다가 치즈를 조금 찢어주었다가, 욕창 생길까 반대로 뉘어주었다가를 반복했지. 항상 빳빳이 들던 고개가 힘없이 쳐지더라. 찬바람 한점 들지 않게 꽁꽁 싸매고, 싸매서 동물 병원에 갔어. 이미 얼굴이 엉망인 날 보며 수의사가 천천히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더라.


“심장 소리는 좋은데, 장기가 멈추는 소리가 들린다. 장기가 멈출 때 나는 냄새가 조금씩 난다.

수액을 맞춰도 겨우 2시간 정도 연명하는 것이다. 병원 입원실에서 혼자 수액을 맞추기보다는 집에서 이름 불러주고, 만져주시라."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예상했던 일이기도 했어. 네 나이는 17살, 사람나이로는 94세 할아버지잖아.


네 귀를 막으며 천천히 수의사 말을 들었어. 수의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몇 번의 감정을 삼켜내며 이야기하더라. 지금 상황에서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작은 아이가 직전날까지 밥도 잘 먹고, 잘 놀다 하루이틀 아프다 가는 거면 복이 많은 거라고 하더라. ‘다행히 갈 때 그리 고통스럽게 가진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며, ‘발작을 할 수도 있는데 놀라지 마시라며, 강아지는 원래 눈을 뜨고 있는 게 편해서 눈을 뜨고 가는데 그 모습에 너무 속상해하지 마시라.’ 했어. 나는 동물병원에서 처음으로 약이나 완치된 네가 아닌 장례식장 팜플랫을 들고 나왔어.


    - 뚱아, 이제 봄이라 날 따뜻해져서 산책 다닐 수 있는데 벌써 갈 거야? 입춘이 지나도 날이 이렇게 추운데 너 추워서 잘 가겠어? 아직 못가~


끝없이 네게 말을 걸었어. 그래야 될 것 같았거든.


    - 뚱아, 여기 집 올라가는 길. 여기에 꽃 많이 피는데. 여기 우리 차, 오랜만에 보지? 이제 계단 올라간다. 이따 오후쯤에 나와서 산책하자. 지금은 날이 춥다.


체온이 낮아지면 혈압이 떨어진대서 핫팩까지 넣어 포대기로 감싸듯 감쌌지. 이불도 덮어주고 같이 누워서 널 계속 바라봤어. 네가 잠깐 깨면 말을 걸다가 다시 잠들면 코 끝에 손을 갖다 대길 반복했어. 네 숨이 점점 차가워지더라. 오후 해가 뜨고 다른 강아지 동생과 함께 산책 갔잖아. 네 동생은 지금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신났더라.


    - 뚱아, 이럴 거면 눈 오는 날에도 산책하고 겨울에도 산책 나올걸. 감기 걸려서 아플까 봐, 그러다 안 좋아질까 봐. 올 겨울이 무진장 추웠잖아. 무서워서 못 데리고 나왔어. 다른 강아지 동생이랑 산책 나가면서, 너한테 봄 되면 산책 가자 말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산책 다닐걸. 이렇게 시간이 얼마 안 남았던 거면 그냥 더 먹이고, 더 나가 놀고, 더 많이 안아줄걸.


산책 끝에 아이클레이 하나를 사 와 발도장을 찍었어. 보내줄 때는 떠나는 이 발목잡지 않게 깔끔히 보내주어야 한다고 말했으면서 구질구질하게 발도장을 찍었어. 미안해. 이런 거 해서.

점점 네 체온이 떨어지는 게 느껴더라. 장기가 멈추는 냄새가 난다고 하더니,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한테서 나던 냄새가 나더라. 쉰내 같기도 하고 쿰쿰하기도 한 형용할 수 없는 냄새. 근데 또 지금은 조금도 기억 안나는 망각의 냄새.


가족들은 직장에 다니고, 나는 백수여서 너와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었어. 누나 잘했지? 움직이지 못하는 널 안고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잖아.


    - 뚱아, 여기 소파 위. 너 여기 올라오는 거 좋아했는데 계단이 있어도 떨어지는 일이 잦아지면서 못 올라오게 했잖아. 그 자리 기억하지? 뚱아, 여기는 안방. 너 원래 안방 침대에서 잤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없을 때 편히 있으라고 사준 거실 강아지 집에서 자더라. 너 중학교 가서부터 독립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오랜만에 보지? 여기는 화장실. 그렇게 넘어지면서도 꼭 화장실에서 싸더라. 그러다 화장실 문턱을 점점 넘기 힘들어지면서 화장실 앞까지 썼지. 네 오줌은 특히 색이 연해서 레모네이드라고 불렀는데. 네 오줌 밟고 몇 번을 넘어졌었는데. 그때 웃겼다. 그치? 여기는 내방, 내 방 가구 바꾸고 나서 너 이방 잘 안 왔지? 거의 모르는 방이겠네. 예전엔 내방 협탁 밑에 누워있었는데. 여기는 동생방. 얘방은 예나 지금이나 냄새나. 이상해. 와, 이것 봐. 화분에 새눈 틔었다. 식물은 진짜 입춘이 오면 바로 이렇게 잎이 난다. 신기하지. 뚱아, 네가 좋아하는 냉장고다. 내가 냉장고 근처에만 가도 치즈 달라고 귀 팔랑이면서 왔는데 그때 한 장이라도 더 줄걸. 이렇게 못 먹는 거면. 마트에서 너 먹으라고 대용량으로 사뒀는데 그거 동생들이 다 먹게 생겼다. 너 배 아파서 갈 수 있겠어? 냄새라도 맡게 해 줄까?


네 숨이 꺼질까 봐 계속 널 불렀어.


    - 뚱아, 이번에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네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이야기하는 게 너무 이기적인 거 아는데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없을까. 딱 하루만, 딱 한 시간만, 아니 십 분이라도.


네가 다른 가족을 보지 못하고 갈까 봐 이기적 이게도 그런 부탁을 했어. 이른 저녁에 엄마가 왔고, 꽁꽁 싸맨 널 엄마한테 안겨주었어. 엄마는 슬픈 눈을 하고, 애써 웃어 보이며 해학적인 말들을 해댔잖아. 괜히 그런다? 동생도 오고, 동생도 널 안아줬잖아. 계속 안고 있으려고 소파에 앉아서 피자를 시켜 먹었어. 한시라도 놓지 않으려고. 한 손엔 피자를 들고 한 손엔 널 안았지. 피자 치즈가 유아용 치즈보다 더 맛있으니까 은근하게 먹어주길 바랐는데. 택도 없더라.

귀에 검붉은 혈관이 점점 더 진해지더라. 귀 털도 뭉탱이씩 빠지고.

 기운이 점점 떨어질 텐데 너는 우리 목소리에 따라 얼굴을 갸우뚱하며 바라보더라. 새까맣던 눈은 흰 물감이라도 탄 듯 점점 탁해졌고. 그 탁한 눈으로 우리를 보더라. 색은 탁하지만 평소처럼 총명하게 바라보더라.


거실 티와 핸드폰을 연결해서 추억여행을 했잖아. 너도 화면을 볼 수 있도록 안아서 같은 추억을 봤잖아.

가을날 공원에 다 같이 산책 간 날 사진. 네가 밥을 먹던 사진. 추울까 봐 담요를 너무 꽁꽁 감싸놓아서 헥헥대던 네 사진. 시골에서 뛰놀던 네 동영상. 너무나 사소하고 일상적이었던 그 순간을 곱씹어보며 깔깔 웃어댔잖아.


    저녁 9시 35분, 추억여행을 마치고 반대로 뉘어주려 몸을 만졌는데 새카만 똥을 쌌. 기저귀를 갈아주려 드는데 네 혀가 하얀색이었어. 검붉은 귀가 순식간에 노랗게 질리더라. 넌 엄마 품에 안겨 딸꾹질 같은 반응 한두 번에 긴 산책을 떠났어.

순식간에 얼굴을 횟빛이 돌고, 다리는 퍼졌어. 하루종일 보이던 검붉은 핏줄이 다 사라졌어. 아까까지 웃음소리가 나던 집은 울음으로 가득해졌어. 엄마가 울었어. 인생에서 엄마 우는걸 딱 두 번 봤어. 첫 번째는 나를 잃어버렸을 때, 두 번째는 너를 보낼 때.


    너는 우리가 다 같이 모여 평소같이 떠들어다가 웃다가, 추억여행하는 것까지 기다려주었어. 한평생을 기다려놓고선 마지막까지 기다려주다 갔어. 수의사 말대로 정말 눈을 뜨고 가더라. 병원에 전화해 네가 갔다는 사실과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었어. 내일 아침에 장례식에 갈거라 했더니, 병원에서 염처리를 해줄 테니 와줄 수 있나 물어보더라고. 아침과 마찬가지로 널 꽁꽁 감싸서 병원에 갔어. 솜으로 귀가 막힐 널 수의사에게 전하며 말했잖아. 뚱아, 잘 가라고.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사과박스 만한 곳에 네가 담겨 나오더라. 부패할 수 있으니 찬 곳에 널 두래서 베란다에 뒀어. 찬 베란다에 두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 이미 혼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네가 추운데 있는 게 속이 상하더라고. 맨날 따뜻한 곳만 찾아다니던 앤 데. 마지막 날,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게 속이 상해서 네가 좋아하던 음식을 준비했어. 평소 먹던 대로 유당분해 우유에 고구마를 말아 유아용 치즈를 얹어서 말이야. 이렇게 주면 배가 터지도록 먹어댔는데. 이제라도 배불리 먹으라 하며 상자 안에 그릇을 넣어주었잖아. 잘 먹었어?


장례식장에 전화를 하니 몇 가지 준비물을 알려주더라고. 네가 입던 옷가지와 간식, 추모실에 올려둘 수 있는 사진 5장을 갖고 오라 하더라. 밤 10시에 우리 가족은 평소처럼 거실 소파에 앉았어. 외장하드를 가져와 아주 옛날 사진부터 봤다? 아기 때 통통하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통통했는데 지금은 겨우 1킬로 정도밖에 안 된다.'며 울다가도, 웃긴 에피소드가 나온 사진을 보며 웃었어. 그렇게 날이 갈 때까지 네 사진을 고르고 각자 자리로 가서 잤어.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날이 따뜻하더라고. 한참을 달려 장례식장에 가는데 눈이 날린더라. 중간중간 설산도 보이고. 뚱아, 네가 눈을 날려주는 거니?

장례식장에 도착해 잠시 대기하다 상담실에 들어갔어. 참 많은 장례문화가 있더라. 털 목걸이, 크리스털 액자, 미니어처 인형, 미니어처 제사상, 발도장 등 많기도 했어. 우리 가족은 평소 장례문화에 대해 냉소적이었잖아. 이미 혼이 나간 육신을 담은 유골함을 갖고 있는다거나 유골을 보석으로 만들어 가지고 다닌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혼이 나간 몸에 너무 많은 미련을 담아두면 가는 이가 편히 가지 못할 것 같아서 걱정했거든.

 하지만 막상 널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미련이 흘러넘치더라. 널 앞으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모든 게 다 아쉬웠어. 널 묻어주려면, 적어도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널 묻어준 장소가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마땅히 묻을 곳을 못 찾았어. 반려동물 수목장이나 납골당도 있지만 너무 멀리 있으면 네가 우리가 오는 날을 또 기다릴까 봐. 네가 살아있을 때 이걸로 몇십 번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네가 갈 때까지도 결정하지 못했잖아.

이기적이게도 너 없는 삶을 살아낼 자신이 없어서 너를 보석으로 만들기로 했어. 유골을 보석으로 만들어 보관하다 같이 살고 있는 다른 아이들도 다 떠나간 다음에 한 번에 모아 묻어주기로. 적게는 9년, 많게는 13년을 같이 산 형제이기에 끝도 함께해 외롭지 않길 바어.


준비된 추모실에 들어가니 눈물을 안 흘릴 수가 없더라.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곳에 네가 있었어. 미리 골라 보낸 사진은 영상으로 띄워지고, 차가워진 널 만지며 한참을 이야기했잖아. 추모실에는 붉은 실이 있었는데, 윤회(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한다) 뜻을 담고 있으니 발에 작게 묶어주라고 쓰여있더라. 예전에 들은 적 있어.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한평생 자유롭지 못했던 널 다시 만나려 하는 게 이기심인 것 같아 하지 않으려 했지. 하지만 딱 한번 정도는 스쳐 지나가길 바보며 붉은 실을 네 발에 묶었어.


화장을 하는데 ‘간식을 넣어줄 수 있다.’해서 네가 좋아하던 간식을 양껏 넣어주었어. 그러고 화장터에 들어가는 너를 보는데, 내 이 어설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쏟아져내리더라. 화장하는 널 기다리며 우리 가족은 평소같이 오손도손 붙어서 웃어댔어. 너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평소같이 널 놀려대다가 ‘이제는 강아지 신이 되어서 놀리는 거 바로 들을 수도 있다.’는 둥, 이런 이야기들을 해댔어. 화장이 끝나면 유골을 확인해야 하는데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어서 대표자 1명만 확인해도 된다고 하더라. 이미 볼꼴 못볼꼴 다 본 사이에 트라우마가 생겨봤자 얼마나 생기겠어. 차라리 트라우마라도 생겨서 널 계속 기억하고 싶어.


    화장해서 나온 네 유골은 거의 가루가 되어 있었어. 두개골 정도만 오롯이 있었는데 두상이 예뻐서 동그라니 참 귀엽더라. 다리가 길었던 너는 유골로 보니 그 길이가 확실히 보였어. 역시 롱다리야. 간식을 너무 많이 넣어주었나 봐. 분명 다 타사려졌어야 하는데 간식 한 개가 남아 있더라. 배불렀어?


유골을 보석으로 만들려면 6시간이 걸린대서, 대기실에 앉아 너를 기다리다 구경하다 밥도 먹었어. 해가 어둑해질 때 겨우 한 줌으로 돌아온 너를 받았어. 한 줌이 된 널 집에 데려오는데 네가 많이 보고 싶은 걸 알았는지 너를 닮은 하얀 눈이 참 많이도 왔어. 그러다 ‘안전 운전해야 되니까 눈발을 그만 날려달라.’는 말에 눈발을 멈춰주더라. 역시 말을 잘 알아듣는다며 웃어댔어. 이상하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도 너와 연관시켜서 생각하고 싶어. 네가 곁에 있는 것처럼.


    똑똑하고 영리해서 화장실도 알아서 가리고, 말귀도 잘 알아듣고, 손가락으로 어딜 가리키면 가리킨 방향을 볼 줄 아는 만큼 똑똑했는데 ‘손’, ‘앉아’는 안 해주는 고집불통아.

야채, 과일, 고기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모르는 사람한테도 안기던 너. 밑으로 동생이 많아 양보하는 게 익숙했던 너. 예쁘게 생겨서 누구에게나 예쁨 받던 사랑스러운 뚱. 서운한 거, 미운 거, 속상한 거 다 두고 가. 그런 건 남은 사람이 알아서 할게.

기분 좋은 거, 행복한 거, 좋아한 것만 가득 갖고 가. 아프지 말고 신나게 자유롭게 뛰고, 걷고, 놀아.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겨울에도 산책 다니고, 사진도 더 많이 찍고, 간식도 더 많이 먹일걸.

네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을 줄 알았어. 네가 너무 당연했어.

힘든 시기에 우리 가족에게 와줘서 고마워. 너 덕분에 엄마가 살았고, 우리가 살았어.

네가 오고 나서부터 형편도 나아지고, 동생들도 오래 살잖아. 복덩아.

이제 기다리지도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루, 한 시간, 십분 기다려줘서 고마워.

네가 보고 싶어. 너무너무 사랑하는 내 동생 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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