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 Seoul <브런치, 쓰기의 재발견> 콘퍼런스 대담 전문
2019년 5월 2일, 코엑스에서 <브런치, 쓰기의 재발견>이라는 주제의 콘퍼런스가 있었습니다.
브런치팀에 합류한 지 1년 3개월째. 지적인 플랫폼에서 일하다 보니 회사에서 나누는 일상 대화도 내겐 너무 지적이라 매일이 지식 포화인데, 더 고차원의 지식 폭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하는 일, 내가 해야 되는 고민을 회사 밖 인물에게서 듣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패널로 참석한 션(오성진 파트장)이 말하는 '브런치스러운 답'을 함께 찾아갈 멤버여서 뿌듯했고요.
한 마디 한 마디 주옥같았던 시간이 휘발되는 게 아까워 기록합니다. 긴 글입니다. 브런치, 콘텐츠 시장,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이 시대의 창작 환경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기꺼이 읽어주시리라 믿습니다.
- 모더레이터: 신기주(에스콰이어 편집장)
- 패널: 오성진(카카오 브런치 파트장), 임희정(아나운서, 브런치 작가), 김민섭(출판사 정미소 대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훈의 시대> 저자)
신기주
저는 지난 20년 동안 여러 미디어 기업에 속해 있는 기자였습니다. 10년 동안 <에스콰이어>라는 패션 매거진의 에디터였고, 지난 3년 동안은 편집장을 맡아 왔습니다. 조직에 속해 있는 기자로서 지난 세월 동안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거듭하게 됐습니다. 지금이 과연 개인의 시대인가, 아니면 조직의 시대인가, 기업/미디어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시대인가. 기업 취재를 많이 했고 관련 방송도 진행하다 보니 기업 조직에 이런 정의를 하게 됩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다수가 모여서 함께 이룬다'
20세기는 대량 생산되고 대량 소비되는 시대였죠. 미디어나 콘텐츠, 오늘의 주제인 브런치로 비유하면 '글'이라는 것 자체가 대량 생산되었고 주류 매체를 통해서 유통되는 방식에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콘텐츠 대부분은 개인 미디어들이 생산하고 있죠. 주류 미디어들은 그들의 일부, One of Them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에 적응하지 못해서 몹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정의가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모였지만 실제로는 구성원 개개인이 각자의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상황. 그게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사무실 풍경이죠.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어떤 분들은 '옳지 못하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비유하자면 이 시대는 20세기의 캡틴 아메리카 시대가 아니고, 21세기의 캡틴 마블의 시대죠. 개인의 시대고요. 개개인이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는 건 절대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당연한 일입니다.
개인의 시대에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바로 개인이 자신을 표현하고 글을 쓰고 유통시킬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기술 발전, 기술 혁신과 시장 시대정신의 변화가 동반되었을 때 세상은 바뀝니다. 지금 우리는 그 시대의 변화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고요. 대표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예로 들 수 있겠죠. 예전에는 방송국에서 불러줘야만 방송을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구태어 방송국에서 불러주지 않아도 개인 방송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여기, '글'이라고 하는 아주 익숙한 미디어를 유통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이 우리 눈 앞에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브런치입니다. 글이라는 걸 독자에게 전달해 주고 감동을 이끌어내는, 매거진이 10년 전에 했던 역할을 이제는 브런치가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시장을 바라보는 올바른 눈이겠죠. 브런치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의 세례를 받은 개인 미디어들은 오직 콘텐츠 자체에만 집중하면서 특유의 자유성과 개방성을 담아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오늘 여기 계신 세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해 주실 분들입니다. 이제 오성진 카카오 브런치 파트장님께서 '뉴 플랫폼' 브런치는 어떻게 기획됐고 어떻게 발전됐는가라는 주제로 요약정리를 해 드리고, 저희 네 명이서 재밌는 토크를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성진
오늘 여러분에게 브런치에 대해서 잘 소개해 드리고 싶어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는데, 팀원 한 분이 "이 글 어때요?" 하면서 보여주더라고요. 제가 자료를 준비하는 것보다 이 글을 소개하는 게 브런치를 더 잘 소개할 수 있겠다 싶어서 가져와 봤습니다. '스테르담'이라는 필명을 쓰고 계신 작가님의 브런치를 열면 지금도 설렌다라는 글입니다.
브런치 페이지를 열 때마다, 지금도 나는 설렌다.
나의 생각과 마음이 담긴 보물단지 같아서다. 이 안엔 지금의 나도 있고, 몇 년 전의 나도 있으며 이런 생각을 한 내가 있고 저런 생각을 한 나도 있다. 나의 이러한 무형의 자산을 모아 놓은 곳이 바로 이곳 브런치다. 나는 더 바빠졌다. 브런치를 하고 난 뒤다. 정확히는 글을 쓰고 난 후다. 브런치는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용기와 동기를 주었다. 나 말고도 브런치를 통해서 비상한 사람들이 많다. 브런치가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의 꿈을 이루어주는 건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기에.
- 스테르담
이 글을 두 개 문장으로 요약하면, 첫 번째는 '나의 생각과 마음이 담긴 보물단지'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저희가 '브런치'라는 서비스명을 만들 때 생각했던 맥락과 같습니다. 카페에서 브런치를 주문하면 빵 한 조각도 굉장히 먹음직스럽게 플레이팅 해 주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희는 작가님들의 생각과 상상과 경험을 브런치 안에 아름답게 담아드리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용기와 동기를 주었다'입니다. 브런치에서 글쓰기 권한이 있는 유저를 저희는 '작가님'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저희만의 응원법인 셈입니다. 그리고 지속적인 창작을 지원하는 동기부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뒤에서 하나씩 소개드려 볼게요.
작가가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세상에 감동과 영감을 줄 수 있도록 기여한다
이것이 브런치만의 철학이고 브런치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저희의 미션입니다. 브런치는 2015년도에 론칭했는데요, 그에 앞선 2014년부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브런치에 글을 써야 할까?' 그에 대한 답변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 본질적인 문제를 정의하고 최적의 방법으로 해결하기
시작은 본질적인 문제 찾기입니다. 관찰하고 질문하고 경청하고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얻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온라인에서 글을 쓰시는 분들의 패턴을 일곱 가지로 나눴고, 그분들을 찾아갔죠. 왜 글을 쓰시는지, 글쓰기의 과정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좋았던 기억, 안 좋았던 기억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결과 저희가 정의한 문제는 이것이었습니다.
작가는 글에 집중해야 한다
작가님들은 글 쓸 때 행복하다고 말씀하세요. 작가님들에게는 글쓰기 외의 행동. 즉, 글을 담는 공간을 꾸미고, 모바일에서는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고, 가독성을 높이려면 어떤 폰트를 쓸지, 줄 간격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하는 것이 스트레스라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었습니다.
우선 꾸미는 공간을 없앴습니다. 글만 잘 보이면 되도록, 글에 이미지가 없어도 아름답게 보이도록, 이미지를 넣더라도 원 버튼 클릭만으로 잡지에 내 글이 실린 것 같은 룩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불필요한 기능을 제거했습니다. 글쓰기 플랫폼을 살펴보면 '있으면 좋을 법한 기능'이 굉장히 많이 있어요. 하지만 그게 다 필요한가? 하면 아닐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꼭 필요한 기능만 남겨 우측으로 밀었어요. 글을 쓸 때 왼쪽부터 시선을 두고 쓰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모바일 호환성을 확보해 어떤 디바이스에서도 글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요.
작가님들이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길 바랐습니다. 저희가 드리는 흰 종이에 검은 펜만 들고 글을 쓰실 수 있도록, 그런 바람을 담아 에디터를 만들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작가는 글에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해 주신 작가님들이 많았어요. 대표적으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쓰신 정문정 작가님을 들 수 있습니다. 정문정 작가님은 서비스 론칭 초기부터 브런치를 사용하셨는데요, 인터뷰할 때 여쭤봤죠. "왜 브런치를 쓰게 되셨나요?" 했더니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글쓰기의 본질에 집중하겠다는 메시지가 좋았고요. 다른 글쓰기 플랫폼은 글 외의 것에 에너지를 더 많이 써야 하는 경향이 있는데 브런치는 그렇지 않았어요. 콘텐츠와 작가를 귀하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정문정 (브런치 작가 인터뷰 중)
- 지속적인 창작을 위해 동기부여하기
다음은 지속 가능한 가치입니다. 앞서 인터뷰한 작가님들에게 최종 목적을 물으면 열에 아홉 분이 '출간'이라고 답하셨어요. "서점에 제 이름으로 된 책이 꽂혀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그리고 그 책을 누군가 읽고 감동 혹은 인사이트를 얻는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브런치가 '작가님들에게 어떤 동기부여를 드릴 것인가'에 내놓은 첫 번째 답은 출간 공모전이었습니다. 오픈 3개월 만에 가장 큰 카드를 꺼낸 셈이었죠.
'이번 크리스마스에 당신의 글이 책으로 출간됩니다'라는 콘셉트로 '제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열었어요. 최근 6회에는 베스트셀러를 배출하셨던 10인의 에디터 분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꾸렸습니다. 정미소 김민섭 대표님도 참여해 주셨는데, 무려 고등학생의 글을 대상으로 선정하셨어요. 오늘 그 이야기도 들어보면 굉장히 재밌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위클리 매거진'이라는 연재 프로그램을 시도했습니다. 쉽게는 웹툰을 떠올리시면 될 것 같은데요, 특정 요일을 지정해서 글을 발행하면 브런치의 주요 구좌와 다음과 카카오 채널에서 글이 소개되어 많은 분들에게 글을 알릴 기회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브런치와 파트너십을 맺은 40여 개 출판사에 자동으로 원고가 전달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출간 계약까지 연결될 수 있었고요.
세 번째는 매거진 기고 콜라보레이션입니다. 빅이슈, 어라운드, 론리플래닛 등의 매거진에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기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네 번째는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무대입니다. 29CM 이유미 에디터님, 배달의민족 이승희 마케터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하완 작가님 등이 브런치를 통해 독자님들과 만났습니다. 이 무대, 씨-페스티벌에도 작년에 스무 명의 브런치 작가님들이 릴레이로 강연을 해 주셨고요. 그리고 최근에는 트레바리 독서모임의 클럽장으로 브런치 작가님들이 데뷔하시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브랜드, 기업들에 브런치 작가님들이 이야기를 해 주시러 가는 기회가 생길 것 같습니다.
브런치에 쓰이던 글이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탄생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저희 슬로건이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인 이유입니다. 항상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로 작품이 들어갈 마지막 칸을 비워두었습니다. 오늘 이야기를 듣고 '나도 브런치에 글을 써 봐야지'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바로 시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기주
잘 들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들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건 글 쓰는 사람 시각에서 인터페이스를 세심하게 만들어 주셨다는 거예요. 심지어 그건 미디어들도 잘 못하는 일이거든요. 기자들이 기사를 디지털로 쓰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는지 알면 좀 놀라실 겁니다. 그렇지만 브런치는 다릅니다. 브런치는 유저 입장에서 글 쓰는 것 외에는 다른 건 생각할 필요 없을 만큼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거예요. 저는 콘텐츠가 유통 비용에 제로로 수렴하고 있는 시대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요, 특히 글의 경우 그 유통 비용이라는 게 비용이 아닌 노력인 경우가 많아요. 글을 올리고 편집하는 시간 자체가 비용인데 브런치는 그걸 줄여주는 거죠.
신기주
이제 예비 초보 브런치 작가 입장에서, 쓰기 전에 걱정되는 부분을 하나 물어보고 싶어요. '글'이라고 하는 텍스트보다 우리를 더 휘어잡고 있는 건 영상이고 소리인 시대입니다. 그런 화려한 것들이 우리의 시간을 다 잡아먹고 있는데 브런치는 '글'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 도대체 누가 글을 읽기는 합니까? (웃음)
김민섭
저는 전업작가로 살아간 지 3년이 조금 넘어갑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쓰고 나서 글로 한번 먹고살아봐야겠다 결심을 했었는데요,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인지 두 달 만에 알게 됐습니다. 정말 책이라는 건 잘 팔리지 않는 물건이고, 글이라는 게 잘 읽히지 않는 시대구나. 근데 그 역시 좀 오만한 생각이었던 것 같은 게, 저는 아무래도 글이라는 단어를 책이라는 단어와 바로 치환해서 읽었던 것 같아요. 글이 읽히지 않는 시대는 언어가 발명되고 단 한 번도 없었을 겁니다. 지금 책을 잃지 않는 시대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를 하지만 글이라는 건 여전히 읽히고 있거든요. 어디서 읽히는가 하면 기존 문단이라든지 대형 출판사에서 자본을 들여 만든 전통적인 책이 아니라 여러 플랫폼들이 생겼다는 것이죠. 일 년에 인세로 오천 만원을 못 버는 유명 작가들이 많지만 지금 여러 플랫폼에서 웹소설을 써서 한 달에 혹은 일 년에 일억 원 이상을 버는 작가들이 많이 생겼거든요. 그러니까 글을 읽는 방식의 변화이고 플랫폼의 변화이지, 글을 읽지 않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더욱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역할도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신기주
너무 예단을 하는 거겠죠. 고백하자면, 가끔 매거진 편집장들 중에서도 그런 말씀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요즘 누가 글을 읽어?'라며 텍스트 양을 줄이고 비주얼 양을 늘린다거나, 연예인 이야기를 더 많이 넣는 등의 선택을 합니다. 사실은 자신감이 없어서겠죠. 자신감 있게, 뚝심 있게 기다리면 되는데. 브런치같은 플랫폼도 있는데.
임희정 작가님의 경우 최근에 좋은 글 한 편 때문에 실검 1위까지 오르셨어요. 여기 계신 여러분 중에도 아마 기사를 보고 글을 읽은 분들도 있을 텐데요.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저는 유명 배우 인터뷰해도 실검 1위 안 올라가던데요. (웃음)
임희정
저한테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었죠. 2월 중순쯤이었는데요. 저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라는 글을 썼고요, 그 글로 인해서 모든 포털사이트에서 실검 1위를 차지하는 진귀한 경험을 했어요. 저도 글 한 편으로 실검까지 오르리라는 예상을 결코 하지 못했는데요,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많이 고민해 봤어요. 일단 단순하게 접근하자면, 클릭해 본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 아나운서 아버지가 막노동을 해?'라는 궁금증이었을 것 같아요. 더 나아가 보면 우리 사회가 가진 암묵적인 보통의 인식을 드러내 주는 사례였다고 봐요. 사실 저조차도 저의 배경 때문에 스스로 마음을 닫고 부끄러워하거나 감추는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그게 아니다'라는 걸 글로 표현해 보자는 마음에서 그 글을 쓴 거였어요. 아마 보시는 분들도 그런 맥락에서 공감해 주셨던 게 아닐까 싶어요.
신기주
임작가님이 고백, 진심, 공감, 이런 키워드를 던져 주셨는데요. 브런치에서 그런 글을 쓰면 더 많이 읽힐까요?
임희정
네. 저는 글을 쓸 때 가장 솔직해지거든요. 글 앞에서는 늘 솔직해지려고 노력해요. 우리는 살면서 외부의 시선을 너무 많이 신경 쓰잖아요. 그러면서 스스로를 검열하고 억제하죠. 하지만 글 앞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글을 쓰면서 제일 좋았던 부분은, 삶이 정리가 되고 정의가 된다는 거였어요. 저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주로 쓰는데, 부모님이라는 주제가 저에게 있어서 30년 넘게 골몰했던 주제인데도 지난 감정들이 정리가 잘 안 됐었거든요. 그런데 글을 쓰니까 퇴고의 과정을 거쳐서 더 적절한 단어나 표현을 고민하게 되고 그러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이 '정리'됐어요. 그러면서 삶까지 확대가 되어 '정의'가 된 것 같아요. 너무 거창한가요? (웃음)
신기주
굉장히 공감하게 되는데요. 저도 사실 글은 거짓말을 못하는 미디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본질을 숨기기가 매우 어렵죠. 인스타그램의 경우, 내 어떤 모습만 포장해서 보여주기에 매우 적합한 플랫폼이에요. 흔히 '사각형 안에 들어 있는 거짓말'이라고 하잖아요. 하루 종일 엉망진창이었어도 '오후에 커피 한 잔' 같은 걸 딱 써서 올리면 되는 거죠. 하지만 글은 좀 다르죠. 글은 포장이 잘 안돼요. 인스타그램이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보고 그 삶처럼 살고 싶거나 닮고 싶기도 한 선망의 비즈니스라면, 선망도 역시 우리가 갖고 있는 욕망의 일부일 텐데요. 인간 내면에 욕망보다 높은 본질은 공감이고, 그 공감이란 글에서 작동되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파트장님, 그런 이유에서 브런치를 설계하신 거죠?
오성진
그렇다고 해야 될 것 같네요. (웃음) 저희는 독자님들도 인터뷰하고, 자주 쓰이는 검색어를 살펴보곤 해요. 브런치에서 많이 읽히는 글은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더라고요. 하나는 임희정 작가님이 쓰시는 글과 같은 에세이 류입니다. 사랑, 고민, 인간관계에 관한 글을 주로 소비하는 분들이 계시고요. 또 다른 부류는 '업'에 관한 글입니다. 마케터, 기획자, 스타트업 등의 키워드예요. 에세이를 즐겨 보시는 분들은 공감 그리고 작가님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을 흡수하고 싶어서 글을 읽는다고 표현하시고요. '업'을 찾는 분들은 일에 대한 갈증과 호기심이 있는 것 같아요. 저만해도 '다른 10년 차 기획자들은 어떻게 일하고 있지?'가 궁금해서 찾아 읽거든요.
신기주
정보조차도 예전에는 미디어가 일방통행으로 전달해 줬다면, 지금은 나와 비슷한 사람. 마케팅하는 사람이든 작가든 또 제조하는 사람이든 수평적으로 공감되는 사람의 정보여야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브런치에는 어떤 카테고리의 Writer가 가장 인기 있나요?
오성진
근래 트위터에서 되게 많이 리트윗 된 글이 있었어요. '퇴사한 사람들은 모두 브런치에 글을 쓴다'였어요. 정말 퇴사 직후나 퇴사 준비를 하면서의 경험을 써 주시는 분들이 많고요, 심지어 퇴사학교라는 창업을 하신 분도 계세요. 한편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써 주시는 분도 많아요. 둘의 공통점은 본인이 경험한 걸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브런치에서 어떤 카테고리가 인기 있고 경쟁력 있느냐보다도 본인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면 저희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전달해 드리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너무 고민하지 말고 본인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주시면 됩니다.
신기주
'글을 쓰면 기회가 온다'는 말이 현실화되면 참 좋겠습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가지고 있는 가치사슬은 '작가에게 얼마만큼의 베네핏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글만 쓰고 끝나는 것이냐, 아니면 글을 쓰면 뭔가 수익이 나오는 것이냐를 누구나 궁금해할 텐데요.
김민섭
'콘텐츠를 만든다'라고 할 때 영상, 음악, 글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도 글이라는 콘텐츠는 그 가치가 대단히 보수적으로 매겨지고 시장에 진입하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모든 콘텐츠가 제 가치를 제대로 판단받기 어렵겠습니다만, 영상의 경우에는 유튜브나 그에 준하는 채널이 생기면서 구독자 수, 조회 수에 따라서 콘텐츠 창작자가 정당한 대우나 대가를 받습니다. 때로는 '이 사람 이렇게 많이 받아도 돼?' 싶을 만큼 창작에 따른 대가를 가져가기도 하는 데, 그에 비해 글은 대단히 유명해지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에서 글로 먹고살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그 누구도 쉽게 답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어째서 글이라는 콘텐츠는 영상 콘텐츠와 같은 보수를 책정받을 수 없는 걸까요. 유튜브의 경우 구독자가 십만 명 이상이 되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전업 유튜버의 길로 들어섭니다. 거기서 나오는 돈이 웬만한 대기업 종사자의 연봉보다 많기 때문이죠. 그런데 브런치에서는 구독자가 많은 작가여도 그로 인해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출판사와 연결됐을 때 전통적인 방식의 출판을 해서 약간의 인세를 받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인지도를 올리고 강의를 다니는 식의 물리적인 방법으로만, 자신이 계속 애쓰고 연결이 되어야만 가능한 시스템입니다. 브런치뿐만 아니라 많은 글 쓰는 플랫폼들이 글이라는 콘텐츠에 대해서 조금 더 보수를 책정해야 되지 않는가. 그러니까 꼭 돈을 줘야 한다는 의미보다도, 그 자체로 재화를 생산해낼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되지 않는가, 그런 고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작가든 출판사든 유튜브에 채널을 만들어서 나를 알리고 구독자를 늘려서 돈을 벌 궁리하는데 답이 잘 안 나오거든요.
오성진
'브런치의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입니까?'는 저희가 이런 자리에 나오면 항상 받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브런치는 땅 파서 장하시나요? 플랫폼이 지속 가능하려면 브런치도 뭔가 모델이 있어야 하지 않나요?'라고 질문해 주시는 분이 많아요. 하지만 저희는 홀로 싸우는 스타트업이 아니라 카카오라는 공동체 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마다의 역할이 있어요. 브런치의 역할은 지금 당장 수익을 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작가님들에게 더 많은 가치를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브런치의 미션에도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저희는 작가님들이 지속적인 창작활동을 펼칠 수 있게 도와야 하기 때문에 말씀하신 부분의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텍스트 기반의 많은 비즈니스들이 있어요. 여러 사례를 계속 연구하고 있고, 이런 모델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상상도 해보고, 사실 몇몇 작가 분들을 모셔서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라는 이야기도 나눠봤어요. 현재로서는 명쾌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계속 두드리고 있습니다만, 언젠가는 답을 찾아야만 하는 과제임에 분명합니다. 브런치는 아직 3년 차, 다음 달에 4년이 되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서비스예요. 스타트업 CEO 분들이 말씀하시는 데스밸리를 이제 막 뗀 걸음마 단계죠.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저희만의, 브런치스러운 답으로 공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기주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만든 것만으로도 저는 카카오가 많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그것도 안 만들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왜 더 잘하지 못해?'라고 얘기하는 건, 더 잘했으면 싶은 마음과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냥 브런치 입장에서는 어떤 게 어려웠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지금 하신 말씀은 카카오라는 큰 생태계 안에서 라이언 전무님의 영업력에 기대고 있는 거라고도 볼 수 있어요. (웃음) 카카오라는 큰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니까 그 안에서 브런치라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브런치 자체도 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이걸 계속해야 돼? 데스밸리를 건너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는 것들.
오성진
어려웠던 게 너무 많이 스치네요. (웃음) '수익 모델을 찾아야 되지 않아?'라는 과제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게 개인적으로 아쉬워요. 하지만 꼭 수익이 아닌, 원하는 상을 가진 작가님들도 있었어요. 브런치에서 작품을 만든 대표적인 작가님들은 대부분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출간하신 케이스였거든요. 그렇다 보니 브런치를 수익 관점에서 보시는 게 아니라 어쩌면 조금 더 크거나 다른 가치, '자아실현'으로 보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어요. 저희가 그러한 니즈를 충분히 충족해 드렸기 때문에 지금까지 잘 넘어왔다, 다만 앞으로는 조금 더 넓고 크게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신기주
임작가님은 라디오 DJ도 하시고 방송을 오래 하셨어요. 만약에 글과 방송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면 어떨까요?
임희정
10년 정도 아나운서 생활을 했는데요, 저는 브런치 작가 소개에 이렇게 썼어요. '말은 업이고 글은 업이었으면 합니다.' 이건 저의 마음 그대로를 표현한 문장이에요. 여태까지는 말을 업으로 하면서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글을 업으로 하면서 살고 싶어요. 말보다는 글에 더 많은 마음을 쏟고 있고 글 앞에서 애쓰고 있어요. 근데 결코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수익이라든지 여러 가지 미디어나 경로가 다양해지는 상황이라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이것이 사라진다거나 줄어드는 가치는 절대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 저변을 확대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면 글도 충분히 미래에 가장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싶어요.
신기주
저도 동의합니다. 예전 음악 산업에서 음원의 가치가 제로로 수렴되었던 시대가 있었잖아요. 그때 음악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어떻게 살아남았느냐? 콘서트로 살아남았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콘서트는 아무리 비싸도 가요. 최근에 에이셉 라키(A$AP Rocky) 공연이 있었는데 미어터졌죠. 음악 플랫폼 안에서 에이셉 라키의 음악을 듣는 데는 거의 돈을 내지 않지만 직접 가서 듣는 데는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 많은 거죠.
디지털 시대에는 오프라인에 대한 경험이 상당히 줄고 있기 때문에 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게 가치 있다고 믿는다면 마다하지 않는 거죠. 아까 잠깐 사례로 들었던 트레바리같은 모델도 그렇습니다. 작가님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저자를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글로 읽을 수 없었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설득만 된다면 모델이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토크 콘서트의 형태든, 무엇이 되었든. 저도 임작가님 팬이었는데 이런 자리에서 뵙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글로, 브런치로만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잖아요. 파트장님께서도 그런 고민을 하고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성진
굉장히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저희가 브런치 작가님들에게 가장 선호하는 모델을 물었을 때 사실 토크 콘서트 형태를 1순위로 꼽아주셨어요. 하지만 저희한테는 딜레마였죠. 온라인 플랫폼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자인데 과연 우리가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게 맞는가. 그래서 우선 저희가 선택한 건 트레바리와의 콜라보였어요. '이미 잘하고 있는 플레이어와 연결해 드리면 되지 않아?'라는 생각이었어요. 브랜드 콜라보의 1번으로 트레바리를 꼽았던 이유는, 트레바리가 유료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님들이 독자를 만나는 경험과 더불어 그 안에서 수익도 창출하실 수 있으니까요. 그러한 연결 모델을 우선순위로 두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신기주
김민섭 작가님은 방앗간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정미소'라는 출판사를 만드셨던데, 어떤 회사인가요? 특별한 작가님들도 발굴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김민섭
작년 가을에 정미소라는 출판사를 만들었습니다. '젊은 작가들의 첫 책을 내고 싶다'를 원칙으로 삼았어요. 글이라는 것은 사람을 새로운 세계로 나오게 해 줍니다. 저의 출판사에서 책을 낸 작가님들도 정미소에서 쌀이 껍질을 벗고 나오듯이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대단히 영광스럽게도 제6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공모전에서 제가 심사를 맡게 됐습니다. 3천 편 가까운 글을 읽으면서 '누구를 뽑아야 되나' 하면서 쭉 읽어가는 중에 어떤 고등학생의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라디안이라는 닉네임을 썼고, 구독자가 3명이었습니다. 구독자는 단 3명이었지만 그분의 문장을 읽는 순간 '아, 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뽑아야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에 대한 고백이었는데, 그 고백이 자신을 포장하고 자의식을 내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학교 현장과 교사들과 친구들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본인에 대한 물음표뿐만 아니라 주변에 대한 물음표를 관조하는 문장으로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거든요. 제가 서른일곱이 되어서 간신히 하게 된 것을 그 고등학생이 하고 있더라고요. 물론 그 고등학생의 글이 3천 편 중 최고였다는 건 아니지만 고등학생의 미래에 투자한다면 우리는 몇 년 뒤에 정말 대단한 작가와 만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저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되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기존 문단에서 작가로 인증한 사람들이 소설을 쓰고 시를 썼습니다. 대형 출판사나 언론사에서 공모전을 엽니다. 그러면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소설이나 시를 투고하고, 대학 교수라든지 평론가라든지 하는 소수의 심사위원이 모여서 한 편을 대상으로 뽑습니다. 그 대상을 받은 작품을 출판사는 '올해의 작가'라고 자본을 들여서 광고를 합니다. 우리가 아는 작가들이 그렇게 탄생하지요. 그런데 이제 작가를 만드는 사람은 소수의 심사위원이 아닙니다. 작가를 만드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인 거죠. 대단히 무수한 타인들이, 나를 닮은 개인들이 평범한 사람을 이 시대의 작가로서 끌어올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작가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신기주
많은 얘길 나눴으니 이제 약간 가벼운 얘기를 해볼게요. 브런치도 일단 시작하면 꾸준히 글을 써야 되거든요. 한번 올리고 나서 일 년 뒤에 또 하나 올리면 독자들과 만나기가 매우 어려워요. 작가님은 마감을 즐기시나요?
김민섭
죽겠습니다. 이번 주에 마감해야 될 글이 다섯 개 있는데, 다섯 개의 벽돌을 얹은 기분으로 지금 여기에 있어요. 그래도 평범한 많은 사람들에겐 마감이 필요합니다. 마감이 없으면 '조금 쉬고 싶다' 하면서 일 년이 지나 있더라고요. 저도 대단히 평범하고 나약한 사람이라 마감 때문에 간신히 단행본을 쓰고 신문 칼럼을 쓰면서 지내고 있어요.
근데 저는 글쓰기의 힘은 고백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는 누구입니다'라는 고백. 그런 고백은 누가 마감으로 닦달하지 않아도 글이 즐겁게 나오는 것 같아요. 간단한 사례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김동식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년 정도 된 작가이고 <회색 인간>이라는 소설을 냈어요. 사실 제가 2년 전에 어떤 게시판에서 소설을 하나 읽고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1년 4개월 동안 이 분이 몇 편을 썼나 봤더니 300편을 썼더라고요. 우연한 기회에 요청을 드려서 만나 뵙고 혹시 책을 내실 생각이 있으면 제가 돕고 싶다고 했어요. 그렇게 책을 기획하게 됐는데, 지난 1년 동안 김동식 작가의 책은 작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3등 안에 계속 들어 있을 만큼 많이 팔리게 됐어요. 그분은 이제 전업 작가로 살아가면서 지난주에 500편 창작 기념 파티를 했습니다.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를 하면서 살아가고 계신데, 지금도 여전히 3일에 한 편씩을 쓰고 계세요. 물어봤더니,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들의 댓글을 받기 위함이었는데 3일이 넘어가면 게시판에서 글이 넘어가서 댓글이 안 달리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3일에 한 편씩 글을 쓰는 게 버릇이 됐고, 이건 천 편을 쓸 때까지 계속 지키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마 그분은 고백의 힘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마감에 대해 말하다가 조금 말이 길어졌는데요. 저처럼 나약한 사람들에겐 마감이 대단히 괴롭지만 필요한 일입니다. 그게 필요하지 않을 만큼 글쓰기가 즐겁다면 그때는 글을 써야만 해요. 브런치든 어느 플랫폼이든.
신기주
오죽하면 마감을 데드라인이라고 하겠어요. 죽겠다는 거죠. (웃음)
임희정
저도 격하게 공감하고요. 뭐든 다 마지노선이 있어야 된다고 봐요. 저도 브런치에 금요일마다 오전에 글을 올리고 있고 오마이뉴스에는 2주에 한 번씩 글을 연재하고 있어요. 사실 자기가 가장 많이 사유하고 골몰한 주제에 대해서는 저절로 써지기 마련인 것 같아요. 저는 부모님의 이야기가 그랬어요. 그게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아요. 거의 매일 글을 씁니다. 완벽한 글이 아니더라도 메모나 단편, 짤막한 문장이라도 항상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오성진
강원국 작가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욕심 때문이고, 그 욕심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간을 제한하거나 분량을 제한하라고요. 그 말에 굉장히 공감했어요. 브런치는 위클리 매거진에서 작가님들이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마감일을 지정해서 동기부여를 드렸어요. 그랬더니 작가님들이 '요일마다 쓰면 자연스럽게 글이 쌓이고 출간으로도 이어진다'는 포인트를 알아주시더라고요.
신기주
이제 정리할 시간이 되었는데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해 주시죠.
임희정
브런치는 '글을 잘 읽어 봐야지' 그리고 '잘 써봐야지'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글 앞에서 애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요. 그걸 알기 때문에 저도 매주 한 번 더 생각하고 퇴고해서 글을 올리려고 하고 있고요. 글쓰기는 너무나 많은 효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마음 같아서는 누구에게나 다 공적 글쓰기를 권하고 싶어요. 일단은 공개를 하셔야 돼요. 왜냐면 익명 속에서는 누구나 다 비겁해지기 마련이고 나약해질 수 있는데, 나라는 사람의 이름을 공개하면서 공적 글쓰기를 한다면 누구나 다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돈이 들지 않잖아요. 어딘가에 취직을 해야 되는 일도 아니고요. 그래서 너무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민섭
작가들이 글을 썼을 때 가장 바라는 게 있습니다. 관심입니다. 관심이라는 게 별 게 아니라 하트 하나 누르거나 댓글 하나 다는 게 대단히 힘이 됩니다. 김동식이라는 평범한 노동자를 시대의 작가로 끌어올린 것도 그의 글에 댓글을 달아준 많은 독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말씀드리기 민망하지만 제가 아는 작가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게 포털에서 자기 이름을 검색하는 겁니다. 누군가 내 서평을 써주지 않았을까.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크게 상관이 없는 거예요. 여러분이 어떤 책이든 읽고 블로그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나 그 어디라도 책 제목과 작가의 이름과 간단한 감상을 남겨주시면 24시간 내에 작가가 무조건 그것을 보게 됩니다. 제가 장담드릴 수 있어요. (웃음) 제가 아는 어떤 작가는 인스타그램에 자기 책이 태그 되면 제일 먼저 하트를 누르는 걸로 유명해요. 그래서 저는 일부러 뭔가를 읽으면 댓글까진 달지 못해도 하트라든지 뭔가 표시를 꼭 남기는 편이에요. 그게 글 콘텐츠라는 시장을 풍성하게 만들 거라고 믿고 있고요. 여러분도 그런 적극적인 독자로서 작가와 소통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독자가 될 수 있고,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성진
저도 100% 공감하고 있어요. 브런치 독자 분들은 브런치가 좋아서 글을 읽는 분도 있지만 주로 특정 작가님의 글을 좋아해서 읽으시더라고요. 쓱 보고 넘어가시기보다는 라이킷 한번 눌러 주시고 댓글도 남겨 주시면 작가님들에게 정말 큰 응원이 될 것 같습니다.
신기주
네. 긴 시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요. 마무리 말씀드리자면, 지금 기존에 있었던 매거진을 포함해서 신문/방송이 못했던 걸 브런치가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텍스트를 기반으로 성장했던 매거진들이 그 텍스트의 중요성을 지키지 못하고 거의 잃어가고 있어요. 브런치가 그걸 대신해주고 있어서 저널리스트 한 사람으로 저도 감사하고, 글을 쓰는 한 사람의 입장으로서 브런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큽니다.
<브런치, 쓰기의 재발견>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좋은 시간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끝)
오늘, 브런치를 시작하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 Lewis -
C-FESTIVAL 2019 - Insight Concert x Startup 360' Seoul <브런치, 쓰기의 재발견>, 2019. 5. 2.
모더레이터: 신기주 / 패널: 오성진, 임희정, 김민섭
사진 제공: 코엑스, 브런치
정리: 김키미(김혜민)
* 대화를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부 표현은 삭제하거나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