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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미 Dec 25. 2018

에디터 _____의 일

매거진 <B> 손현 에디터 인터뷰


아침 10시. 그 날 미팅 장소는 한남동 매거진 <B> 오피스였다. 라운지에 좀처럼 오가는 사람이 없어 의아했는데 미팅 끝나고 12시 즈음에서야 출근하는 직원이 보였다. 드문드문 한 명, 두 명, 세 명... 생경했다.


"어제 다들 늦게 들어갔어요. 마감 주간이어서요."

아, 마감. 매거진 <B>가 월간지였지 참. 얕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갓 입사한 손현 에디터만 마감 지옥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며칠 뒤 70번째 이슈 'PORCSHE' 발행 소식을 접했다. 다시 만난 손현 에디터는 첫 임무로 'DJI'라는 드론 브랜드를 맡았다며 외서를 읽고 있었는데 또 얼마 안 돼 박원순 시장 인터뷰를 하러 간다고 했다. 71번째 이슈 'DJI'를 발행하고 그는 쉴 새 없이 50번째 이슈 'SEOUL' 개정판에 참여한 것이었다.


매거진 <B>(이하 <B>)는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이라는 수식어로 자신을 소개한다. 프라이탁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찾아낸 균형 잡힌 브랜드를 소개한 지 7년째. <B>가 선정하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는 <B>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때문에 <B>를 오래 읽어온 독자로서 2년 전 다뤄진 이슈 'SEOUL'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가 사는 이 도시도 당신이 좋아하는 모 브랜드만큼 균형 잡힌 브랜드입니다, 라는 관점이 허를 찔렀다. 개정판의 첫 대상으로 'SEOUL'을 고른 것도 너무나 <B> 다운 관점이라는 생각에 잠시 느슨해졌던 팬심이 고개 들었다. 그 사이 손현 에디터도 늦게 출근하고 퇴근하는 <B>의 일원이 된 모양이었다. 이제 막 마감 지옥에서 벗어난 그를 빨리 만나고 싶었다.


"뭐 타고 오세요?"

"꽃담황토색 SEOUL TAXI"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에게 아직 마감의 여운이 남아있는 것이리라.


Magazine <B> Editor, 손현




서울 편에서 네 꼭지나 다루셨어요. 그중에 특히 애착이 가는 꼭지가 있나요?

커넥션즈(CONNECTIONS)라고, 서울시 대중교통 체계를 다룬 꼭지요. 다른 꼭지는 제가 입사하기 전부터 이미 정해졌던 기획이 저한테 내려온 케이스였어요. 반면 커넥션즈는 제가 아이템부터 기획해서 완성까지 한 거라 기억에 남아요.


브런치에 올리신 서울 편 제작기를 보니까 아이템 선정 과정이 흥미롭더라고요.

처음에 편집장이 주문했던 건 "알쓸신잡 같은 톤으로"였어요. 서울에 이런 서비스도 있었어? 하는, 살기 좋은 도시 측면에서 서비스 몇 개를 소개해 보면 어떻겠냐, 4페이지짜리로, 그게 다 였어요. 그때 마침 워싱턴 D.C에서 서울로 출장 온 친구를 만나서 코멘트를 땄어요. 외부인 관점에서 서울에 오면 주로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느냐. 그런데 이 친구가 딱 짚어서 교통을 얘기하더라고요.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서울시 교통이 무척 우수한데 서울 시민들이 너무 당연시 여기는 것 같다고, 많은 해외 도시나 정부 관계자들이 서울에 와서 교통체계를 시찰하고 간대요. 근데 놀라운 건 다 보고 갔는데도 서울만큼 구현을 못하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교통 서비스도 엄밀히 말하면 사업 당사자나 이해관계자가 다르기 때문에 그걸 하나로 통합하기 힘든 거죠. 정치적인 관계도 있고. 그런데 티머니 하나로 다 환승되는 건 정말 혁신적인 거라고. 그로 인해서 시민들이 누리는 반사 이익이 연 몇 천억이래요. 거기에 착안해서 교통 아이템 몇 개를 선정했어요.



Magazine <B> - Issue No.50 'SEOUL' Second Edition


이 많은 정보를 정리하고 일러스트로까지 표현하려면 고생이 많았겠어요.

입사 후에 처음 본격적으로 투입된 거라 공을 많이 들이긴 했어요. (웃음)


그래도 <B> 객원 에디터로 오래전부터 호흡을 맞춰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에디터 일은 언제부터 시작하신 건가요?

2013년 초? 14번째 'BIC' 이슈부터 참여했어요.

제 커리어는 2011년부터인데요. 건축학과 졸업해서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첫 직업은 플랜트 엔지니어였어요. LG 도요엔지니어링이라는 신생 합작 법인에서 화학공장 같은 거 설계하는 일을 했어요. 근데 딱 1년 지나자마자 잘못된 판단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회사 일은 하되 늦기 전에 방향을 잡아야겠다 고민하던 중에 JOH라는 회사를 알게 됐어요.


JOH가 한창 주목받기 시작할 즈음이네요.

북디자이너인 지인이 저랑 잘 어울릴 것 같다면서 알려줬는데, 그 회사에서 매거진 <B>라는 걸 만들더라고요. 에디터인 친구가 <B>에서 글 좀 잘 쓰고 이미지 잘 다루는 사람 찾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줘서 그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준비했죠. 매거진 <B> '손현' 버전이라고, 저를 셀프 브랜딩 해서 하나의 브랜드처럼 <B> 포맷에 담았어요. 판형이랑 종이 재질까지 똑같이요.


포트폴리오로 본인만의 매거진을 만든 건가요?

네. <B> 보면 유저 인터뷰가 세 개 정도 있잖아요. 자문자답하는 인터뷰 두 개 싣고, 친구한테 나 좀 인터뷰해줘 해서 그것도 싣고, 학생 때 했던 아카데미 워크 하나 넣고, 글 좀 쓰는 걸 보여줘야 되니까 제가 썼던 에세이도 다섯 편 넣고, 사진 찍었던 것도 넣고 이런 식으로 해서. 그땐 인디자인을 다룰 줄 몰라서 포토샵으로만 만들었어요. 세 달 정도 걸려서. 예전에는 <B> 뒤편에 어디 종이를 썼는지 나와 있었거든요. 두성종이라고 쓰여있길래 거기 찾아가서 <B>에서 어떤 종이 쓰냐고 물어보고. (웃음) 열정이 있었어요.


표지에 쓰인 '소년의 시간은 똑바로 간다'는 어떤 의미인가요?

'소년의 시간은 똑바로 간다'라는 이름으로 2004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보고 제목을 좀 비튼 거죠. 제 이름이 손현이니까 '소년'이라고.



Magazine <B> '손현' 버전


그렇게 만든 포트폴리오를 <B>에 보낸 거예요?

1부를 <B>에 보냈어요. 그리고 운 좋게 인터뷰 기회를 얻었어요. 근데 실무 세계는 냉정하더라고요. 제가 에디터 경력이 전혀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B> 입장에서도 저를 쓰기가 애매했을 거고, 한편으로는 플랜트 엔지니어랑 잡지사 에디터 연봉 테이블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에 갑자기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뛰어들면 열정만으로는 감당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서서히 일을 하면서 같이 합을 맞춰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어요. 그래서 객원 에디터로 참여하게 된 거죠.


현명한 처사였네요.

사실 처음에는 그게 거절의 사인인 줄 알고 약간 상심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되게 좋은 계기였어요.


객원 에디터로, 스팟성 참여가 아니라 매 호 참여하신 건가요?

거의 다 참여했어요. 피겨(FIGURE)라고, 팩트 기반으로 브랜드가 속한 산업군에 대한 여러 가지 수치를 담는 페이지를 계속 맡았어요. 본의 아니게 2년 반 정도 투잡을 했죠. 근데 평일은 평일대로 회사 일하고 주말은 주말대로 계속 마감을 하다 보니까 몸이 너무 힘든 거예요. 이대로 계속 병행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단 다 접고서 싹 비워보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퇴사를 했어요.


퇴사 후에는 어떻게 비우는 시기를 가지셨나요?

6개월 동안 모터사이클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리고 한국 돌아와서 구직 준비를 하는데, 기존 커리어가 장애물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플랜트 엔지니어 출신인데 갑자기 다른 쪽 일을 구하려니까 어렵더라고요. 프라이탁 한국지사 매니저에 지원해서 프라이탁 형제랑 인터뷰까지 했는데 결국 패션/유통 쪽 커리어가 없으니까 떨어졌고, 카카오랑 현대차도 지원했는데 서류 광탈했고, 위워크 커뮤니티 매니저도 최종까지 가서 떨어지고. (웃음)


확실히 첫 구직보다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즈음 퍼블리에 입사하신 건가요?

네. 트위터로 지켜보던 퍼블리에서 에디터 모집한다는 글을 봤어요. 에디터라는 직업은 저한테 최후의 보루 같은 거였거든요. 어쨌든 매거진 <B> 일했던 게 있으니까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때 저만의 실패 이력서를 써 봤어요. 외고 입시에 떨어졌던 중학생 시절부터 대학생, 사회 초년생, 여행자 신분까지 성공과 실패 리스트를 정리해본 거였는데요. 그러면서 느꼈던 게, 예상외의 성취가 나한테는 '글쓰기'였구나. 그래서 이 업에 집중해야겠다는 방향을 잡을 수 있었죠. 그리고는 퍼블리에 합류해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스타트업이니 에디터 본연의 업무만 하는 건 결코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지금의 퍼블리는 디지털 콘텐츠를 유료로 판매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에는 투자 단계로 치면 시리즈 A 펀딩도 받기 전인 스타트업이어서 해야 될 게 되게 많았거든요. 저한테 일을 알려줄 수 있는 선배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계속 실수하면서 배우는 식으로 일했어요. 1년 넘게 거의 혼자 다 했어요. 회사가 성장하면서 업무량을 저 혼자 감당할 수 없게 되다 보니까 객원 에디터 체제로 전환하자, 결정됐고 인하우스로 맡는 걸 줄이면서부터 직무가 바뀌었어요. 객원 에디터를 채용하고 관리하는 쪽으로.


플레이어에서 코치가 된 느낌이네요.

넷플릭스의 표현에 따르면 탤런트 애퀴지션(Talent Acquisition, 인재 개발) 포지션으로 바뀐 건데, 저는 그보다는 플레이어 혹은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었어요. 이미 누군가가 다 취재한 원고를 보내오면 제가 그걸 편집하는 역할이었거든요. 나도 현장을 좀 다니면서 살아있는 목소리를 좀 들어야 되는데, 더 늦기 전에 경험을 쌓아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커졌어요. 그래야 더 오래 일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즈음 <B>에서 오퍼가 왔어요.


<B>에서 먼저 손현 씨에게 손을 내미셨군요?

원래는 제가 <B>를 영업하러 갔었어요. <B> 콘텐츠가 종이로만 발행되잖아요. 그걸 디지털화해서 퍼블리 플랫폼에 들어오지 않으시겠냐, 영업하러 갔다가 제가 팔린 케이스. (웃음)


이제 인하우스 에디터가 되셨잖아요. 객원 에디터로 참여했을 때랑 비교하면 어떤 점이 제일 다르던가요?

일의 성격이나 범위 자체가 커졌다는 점인데요. 예를 들어서 한 호를 만드는데 12개의 꼭지가 있다면 객원 에디터는 1~2개 의뢰받고 원고 넘기면 거기서 끝나는 거예요. 근데 내부 에디터는 객원 에디터한테 일을 맡기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콘셉트를 잡아서 디렉션을 줘야 돼요. 그래야 구체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잖아요. 객원 에디터나 필자가 원고를 보내오면 그걸 다시 한번 보고 약간의 편집도 필요하고요. 그에 앞서 섭외도 해야 되고 몰랐던 사람을 섭외한다면 컨택부터 해야 되고요. 그다음에 외고 관리, 교정교열, 콘텐츠 생산이 끝나면 정산이나 행정적인 업무도 처리해야 되고. 여러 단계의 보이지 않는 일을 내부 에디터가 처리하는 거였더라고요.


<B>에서는 매 호 브랜드 하나를 뾰족하게 다루니까 1개월에 한 번씩 다른 주제에 푹 빠져 있어야 하잖아요. 원래 스위칭이 빠른 편인가요?

해야 되는 일이니까 당연히 그렇게 바뀌어요. 최근 3개월이 좀 이례적으로 마감이 몰려 있긴 했었는데, 에디터가 격월로 투입되도록 시스템을 짜고 있다고 들었어요. 또 막상 일을 하다 보니까 모든 과정이 크리에이티브한 쪽은 아니에요. 단순하게 인터뷰하고 녹취를 풀고 그걸 기사화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질문만 잘 짜 놓으면 돼요. 인터뷰이가 어떤 발언을 하느냐에 따라 기사의 질이 좌우되기 때문에 섭외가 더 중요해질 수도 있고요.


생각해 보면 에디터라는 직업은 결코 퇴근할 수 없는, 퇴근했지만 퇴근하지 않은 직업 같아요. 그런 직업적 특성에 피로를 느끼시나요?

워커홀릭은 아니지만 일 생각을 거의 놓은 적이 없어요. 출근과 퇴근이 불분명한 일이다 보니까 샤워를 하다가도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를 해야 되죠. 근데 그걸 피로하다고 느끼면 스트레스로 다가오겠죠. 그러면 일이 지속 가능하지 못할 것 같고요.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새로운 걸 계속 학습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 있으면 그게 단순한 급여 이외의 보상으로 작용을 하더라고요. 새로운 주제를 접하면서 그에 연관된 사람들을 계속 알게 되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사람한테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열린 마음, 융통성도 필요하고요.


퍼블리 입사 앞두고 쓰신 블로그 글에서 이런 문장을 봤어요. '좋은 에디터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고 있는 중이다'. 3년이 지난 지금, 답을 구하셨나요?

여전히 못 구했지만, 그 답을 구해야 하는 시기가 너무 빨리 왔네요. (웃음) 좋은 에디터십이라... 에디터로서 정식 과정을 밟거나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관련된 책을 찾아본 적이 있어요. 그때 <편집의 정석>에서 어떤 문장을 옮겨 적고 책상 앞에 붙여뒀거든요. 저자가 쓰고자 하는 의도대로 명료한 문장으로 전달되었는가, 를 에디터가 챙겨야 된다는 거예요. 스킬적인 면도 있지만, 에디터의 역할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더 잘 발휘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데 에디터가 저자의 창작물에 개입하는, 좀 거칠게 말하면 수술을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어떻게 수술하느냐에 따라서 그 글이 더 생명력을 가질 수도 있고, 이상하게 죽은 글이 될 수도 있어요.


책을 낸 지인한테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편집되어 나왔다는 얘길 들은 적 있어요.

이를 테면 그런 경우예요. 그만큼 에디터의 역할이 되게 중요한데 그동안 출판시장에서는 늘 저자만 두드러져 있었어요. 저도 예전에는 책을 보면 이 저자가 온전히 다 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제 첫 책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를 출간할 때 저자랑 에디터의 합이 되게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제가 경험한 미메시스의 편집자는 꽤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해줬거든요. 글 쓰는 행위 자체가 고독하고 외로울 수 있는데 에디터가 붙음으로써 저자는 자신의 글을 가지고 같이 소통할 수 있는 친밀한 동료가 생기는 거죠. 에디터는 저자가 쓰고자 하는 얘기를 최대한 독자한테 잘 전달되도록, 배송을 해주는 거죠. 쿠팡맨처럼. 유려한 표현을 찾고 싶은데 어렵네요. (웃음) 그걸 좀 더 심화하면 에디터가 비주얼까지 고려할 수 있게 돼요. 잡지는 글만 전달하는 게 아니고 사진이나 일러스트레이션으로도 전달할 수 있으니까, 수단은 더 다양해질 수 있는 거죠.


지인 중에 에디터 출신이면서 자신만의 매체를 만들어서 직접 콘텐츠 제작/발행까지 하는 분이 많잖아요. 그분들처럼 제작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시나요?

반반인 것 같아요. 제 것을 직접 제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제 선에서 쓸 수 있는 이야기는 한정돼 있을 거라. 그보다는 제 경험을 살려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려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게 디자인 스튜디오가 될 수도 있고, 1인 출판사 같은 게 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제가 잘 다룰 수 있는 매체가 글이라고 생각해서 저는 글 쪽에 집중을 하고, 대신에 다른 유능한 파트너들을 계속 구축하는 중이죠. 브랜딩 잘하는 분, 북디자인 잘하는 분, 그래픽 디자인 잘하는 분, 기획이나 마케팅 잘하는 분이 따로 있으니까 미래를 위해 조금씩 제 선에서 잘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어요.


에디터 최고의 자질은 인맥이라는데, 손현 씨가 그런 훌륭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달까.

착하게 살아야죠. (웃음)


마지막으로, 인터뷰할 때 인터뷰이가 마무리로 이런 말 해주면 좋을 텐데, 하는 게 있었다면 말해주실래요?

아뇨. 그런 거 없어요. 너무 뻔하잖아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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