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경 묵상

고통에 대하여

by 김재광

오늘은 바트 어만 교수의 "고통, 인간의 문제인가 신의 문제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감상을 위주로 말씀을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바트 어만 교수는 휘튼 칼리지에서 학부를 하고,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신학석사와 신약성서 박사학위를 받고 채플 힐에 있는 노스 캐롤리나 대학의 종교학과에서 distinguished professor 타이틀을 갖은 정통 학자입니다. 그의 전공이 신약성경이라고 하니 신약성경에 대한 해석은 누구보다도 정확하다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박사를 받고서 시간강사 시절에는 프린스턴 침례교회에서 목회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이분이 성경공부를 깊이 하면서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열정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 살리라고 결심을 했는데 공부를 깊이 하다보니 성경이 정말 성령의 감동에 쓰여진 것인지에 대해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 와이프도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자기의 대부분의 인적 네트워크도 기독교인 위주여서 성경에 대한 의심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으로 10년 정도 생활하다가 그것도 나중에는 떠났다고 합니다. 지금은 스스로를 불가지론자로 천명하지만 대학에서는 종교 관련하여 강의도 하고 책도 여러권 썼습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은 그의 2008년에 나온 책인데 기본적인 내용은 "성서는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데 왜 이땅에는 사람들은 고통을 받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성경이 어떠한 설명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저는 그 책에서 저자가 주장한 내용 중에서 저자의 생각 자체를 옹호하거나 반박할 생각은 없고요, 다만 그가 성경학자로서 전체적으로 설명하는 내용들이 우리들에게 도움이 될것 같아서 정리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 인간이 고통을 받는가? 사실 심각하지만 불편한 주제이고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기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우리의 자유의지로 인한 죄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하고 만족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성경에 근거한 대답이라면 그게 구체적으로 어느 구절인지 대답할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자유의지로 인한 고통이라는 해석은 성서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유의지로 인해 고통이 생기는 것이라면 왜 천국에서는 똑같이 자유의지가 있어도 고통이 생기지 않는지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한 것중의 하나는 성서가 고통의 문제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어떤 이슈에 대해 단 한가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막상 성경을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한 고통에 대한 시각은 크게 구약과 신약에서 크게 달라집니다. 구약에서는 일단 불순종으로 인한 벌이라는 개념으로 고통이 소개됩니다. 예언서에 이스라엘 민족이 겪는 고통을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설명하는데 구약의 많은 구절에서 이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죄에는 벌이 따른다는 개념은 제사의 중요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고 이는 속죄제물로 오신 예수님을 설명하는 바울의 관점과도 일치합니다. 이렇게 고통이 불순종의 벌이라고 하는 개념은 일종의 인과응보와 같은 개념인데요 그런 개념이 성경전체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 주로 나오는 개념이기에 고전적 개념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고전적 개념은 종종 한계를 드러냅니다. 대표적인 예가 욥기이기도 합니다. 죄가 없어도 고통을 받을수 있는 사례가 욥의 이야기이니까 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고통에 대한 또다른 중요한 해석은 선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고난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그가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면서 엄청난 고난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씨앗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성경 곳곳에 "하나님이 고통을 통해 구원을 이룬다"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그것이 결국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이 하나님의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 제물이라는 바울의 해석과도 연결시켜서 생각할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고통을 하나님의 섭리하에서 선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하기는 무리가 있겠지만 적어도 성경에서는 이러한 고난의 유익을 강조하는것도 사실입니다.


욥의 고난 이야기는 사실 좀 당혹스럽습니다. 욥이 고통이 욥의 죄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의 시험을 위해 욥이 고난을 받은 것인데 과연 그런 하나님을 선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이 두려워할 분이라는 것은 맞지만 과연 선하고 신실하다고 할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저자는 이야기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곤혹스러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전도서에서 찾는듯 합니다. 전도서에서는 고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합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고통 또한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잠시 있다가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하느님이 의로운 자들에게 부와 번영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통은 왜 있는가? 그는 알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고통이 하느님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고통은 우리 삶에 불가피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우리가 통제할수 없는 상황에 의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고통을 최소화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다할 때까지 최대한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은 종말론적 시각입니다. 놀랍게도 종말론적 시각은 구약의 전통적 시각과는 많이 모순되는 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종말론적 시각은 한마디로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원천이 하나님이 아닌 하늘에 권세 잡은 악의 세력이라는 관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을 받는게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악이 지배하는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는건 너무 당연하다는 논리입니다. 이러한 종말론적 시각은 구약에서는 다니엘서에서 기원을 찾을수 있고 (7장) 예수님이 스스로를 인자로 칭한 것도 이러한 종말론적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9장 1절에 보면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라는 표현이 있는데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이 종말론적 시각의 핵심입니다.


유대 종말론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악 이분법으로 이해하고 (선한 세력과 악한 세력이 있고 선학 세력을 관장하시는 분이 하나님, 그리고 악한 세력은 사탄이 지배한다) 그리고 이 세상은 악의 권세로 가득차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은 선과 악이 충돌하는 시대이고 이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는 관점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으로 다가올 심판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시간적 이분법이라고 합니다) 그 심판은 살아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들이 부활해서 심판을 받는다는 개념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는 이러한 유대 종말론자로 볼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닌 이 지상에서 건설되는 실제 왕국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러한 예수의 종말론적 사고를 이어받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대속제물로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부활의 첫 열매로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수의 부활과 더불어 종말이 정말 임박했다고 믿었습니다. 종말론자인 바울은 최종 부활이 이루어지고 이 세상과 우리의 육체가 고통이나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존재로 변화되었을 때,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말세를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고 곧 주님이 오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종말이 바로 일어나지 않자, 이 종말론자들은 메시지를 바꾸어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심판이 이 세상에서 일어날 일이 아니라 미래의 사후 세계에서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 심판은 조만간 이 세상에서 발생할 일대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 죽을 때 이루어지는 사건이고, 그 심판을 통해 천국과 지옥으로 행선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종말론에서 사용된 시간적 이분법이 이제는 공간적 이분법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고통에 대한 종말론적 관점은 현재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만 이 땅에서 우리 삶에서 보다 책임있는 자세를 갖지 않게 될 위험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합니다.


이제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성경을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를 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던 시각에서 보다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는 책으로 바라보면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균형을 잡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고 이해하기 보다는 우리 마음에 드는 구절을 끄집어내서도 자기 원하는 방식으로 아전인수식 해석하기 쉬운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제대로 보는 눈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위에서 다룬 고통에 대한 여러가지 관점 중에서 특별히 어느 한 관점을 더 취하고 나머지를 버리기 보다는 고통이라는 것이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 발생할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그 원인을 알지 못하는 고통이 있다는 것까지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유를 알지 못하는 고통은 더 크게 심리적인 아픔을 느끼는 경향이 있으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이유를 찾고 싶을 것입니다. 이걸 설명본능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런 설명 본능이 지나치다보면 모든 현상에 대해 과도한 설명을 하게 되고 따라서 그 설명이 틀린 것이 될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전도서의 견해가 마음에 듭니다. 우리가 고통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그 또한 지나가리라 믿고 그 가운데에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지내는게 더 지혜롭고 현명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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