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짝을 찾아서
1996년 겨울방학, 박사과정 5학기가 지난 겨울방학에 나는 지도교수님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있어서 내가 한국에 가게되면 그걸 다른 학생이 대신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눈치를 보기에는 내 개인 사정이 더 급했다.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고 연구가 진행되면 한국에 다녀올 시간적 여유가 없을테니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주동안 과연 나는 짝을 찾을수 있을까? 예전에도 물론 한국에 가서 소개팅도 하고 그랬지만 그때에도 잘 진행되지는 못했다. 한명이랑은 진도가 제법 나가서 거의 설득이 되었는데 그집 부모가 "통계학을 전공해서 뭐하며 먹고사냐?"고 하면서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고, 또 미국으로 돌아와 멀리 떨어져 있으니 out of sight, out of mind 라는 속담처럼 소식이 점점 뜸해지다가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내가 유학생이니 무조건 속전속결로 갔었어야 하는데 장기전으로 가는 바람에 시간은 시간대로 가고 결국 실패했던 것이다. 전형적인 전략의 부재로 인한 실패였다.
사실 유학생에게 제일 좋은 방법은 유학나온 싱글 여학생과 연예를 해서 결혼하는 것인데 나는 공부를 계속하는 여자를 선호하지 않았다. 모친이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어린 시절부터 일을 하셨는데 나는 집에 엄마가 없다는 것이 항상 어린시절부터 하나의 큰 결핍처럼 느껴졌기에 의도적으로 전업으로 집에서 살림을 할 사람을 찾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본인의 사사로운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피해자 의식을 가짐으로써 본인의 선택의 폭을 상당히 줄인 것이니 그리 현명한 자세는 아닌 것이었다.
어쨌던 그 당시에 나는 한국에 있는 적당히 괜찮은 처자 중에서 나랑 만나서 빨리 결혼을 결심하고 나를 따라 미국으로 따라올 사람을 찾았으니 그게 결코 쉽지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데 소개팅을 하면 할수록 예전만 못한 사람들이 나왔고, 결국 나는 황금같은 첫 2주를 다 까먹고 미국으로 가기 열흘 정도 남은 상태가 되어서 거의 포기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아는 선배와 술이나 마실까하고 그 집에 전화를 했었는데 그 선배 어머니께서 받으셔서 나보고 아직 장가 안갔냐고 물으시는 것이었다. 그 선배는 아이오와 통계학과 선배였는데 논문 자격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서 학교를 옮길까 말까 고민하는 상황이었고 알고보니 그 선배가 가끔 집에서 내 이야기를 해서 내게 호감이 있었던 것이었다.
결국 그 선배 어머니의 권유로 그 분의 막내딸을 급히 만났다. 그 막내딸은 나랑 한살 차이였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4년 정도 다닌 상태였고 이제 직장생활도 지겹고, 혼기도 찬 상태라서 결혼을 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몇번을 만나고 서로가 잘 모르긴 하지만 어차피 인생이라는 것이 모험을 해야 할 상황이 있는 것이고, 내가 모든 불확실성 가운데에서 유학을 결심해야 했던 것처럼, 그렇게 모든 불확실성 가운데에서 결혼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양가 부모 상견례를 하고 결혼을 시키기로 합의를 봤다. 그게 겨울 방학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오기 이틀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