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스토리 (5)

고난의 시작

by 김재광

기독교에서 고난이 축복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거꾸로 이야기하면 축복같아 보이는 것도 고난일 수가 있다로 표현할수 있을 것이다. 논문 자격 시험을 통과하고서의 내 상황이 딱 그랬다. 대가 교수 밑에서 연구를 하니 좋긴한데 그렇다고 그 길이 쉽거나 평탄한 것은 전혀 아니였다. 눈문을 잘 쓰려면 실력이 늘어야 하는데 그게 쉽게 되겠는가? 이는 마치 헬스장에서 근력운동을 할때 고통스러운 순간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근육이 자라지 않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리서치는 코스웍과는 좀더 다른 자세를 요구한다. 코스웍은 예를 들어 90점만 맞으면 되니까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를 얻는 효율적인 공부 방식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리서치는 그보다는 한 분야를 깊이 파서 관련 내용과 맥락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 너머의 새로운 통찰이나 지식을 발견하는 것이니 효율 보다는 성실과 집요함을 요구하는 것이라 결국 나 자신의 학문을 대하는 자세를 바꾸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게 몇달 바짝 공부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몇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니 조급함과 같은 심리적 장벽을 극복하는 것도 필요했다.

풀러 교수님은 미국 사람이라 그런지 문화가 달랐다. 동양 사람 같으면 좀더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할텐데 전혀 그런게 없었다. 내가 교수님을 안찾아오거나 설렁설렁 시간을 보내 연구 진행이 늦어지면 그건 내 손해인 것이고, 그렇지만 내가 연구에 덜 집중하는것 역시 하나의 선택으로 존중한다는 식이었다. 한국보다는 확실하게 자율적인 학습 문화였던 것이다. 다만 간섭을 안하는 스타일이니 특별히 도와주는 것도 없었다. 내가 못해오면 좀더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주면 좋겠는데 그 선생님과 내가 노는 세계가 달라서인지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몰랐다. 선생님이 적어준 1-2페이지 노트를 가져와서 이게 뭐랑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지 논문을 찾아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다.

게다가 선생님 자신이 워낙 바빠서 나랑 많은 시간을 나누지 못했다. 나중에 보니 풀러 선생은 농림부 프로젝트에 주된 시간을 보냈고, 연구는 사이드에 해당되는 것이라 아쉬운 사람(박사과정 학생)이 우물을 파야 했고 풀러 선생은 내가 파는 우물이 방향이 맞는지 아닌지만 알려주셨다. (나중에 보니 막판에는 엄청 구체적으로 아이디어를 주고 도와주셨는데 그걸 이해할 수준이 될때까지는 혼자서 헤매도록 기다리셨던 것이다. ) 또 내 위로 박사과정 선배가 몇명 있어서 그 친구들 졸업시켜야 해야 해서 나는 우선 순위에서 밀렸다.

그래서 나도 조급함을 버리고 장기적으로 생각하고 좀 오래 걸리더라도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가지를 결심했는데 하나는 샘플링 관련 주요 논문을 찾아서 다 읽는 것이었다. 내가 풀러 선생과 대화를 제대로 못하는 것은 내가 배경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그걸 채우기 위해서는 일단 주요 논문을 다 읽어서 내것으로 만들면 나름대로의 식견이 생기고 나중에 구체적인 토픽을 공부할 때에도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목표는 논문 100편이었다. 샘플링 분야의 주요 논문 100편을 읽으면 어느 정도 지식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첫번째로는 논문을 한편 읽는데 드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것이었고 (처음에는 3일씩 걸렸는데 나중에는 1-2시간 정도로 줄었다) 또 논문을 읽다보면 인용된 논문이 궁금해져서 또 그걸 찾아서 읽으면 거기에서 또 인용된 논문이 있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이 되는 것이다. 늪에 빠진 것과 같은 기분도 들었고, 또 처음에는 아무리 읽어도 지식이 늘지 않는것 같아서 이거 빠진 독에 물붇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박사과정을 장기전으로 생각하면서 했던 두번째 결심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나는 딱히 운동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였고 TV나 영화감상을 즐기지도 않아서 아무런 취미생활 없이 하루종일 공부만 하는 생활을 했었는데 (주말에 술마시는게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다) 코스웍 2년까지는 그래도 별다른 잡념없이 했는데 논문자격 시험을 통과하고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니까 이런 생활이 너무 힘들었고 결혼해서 와이프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유학생이 당시 농촌총각 다음으로 인기없는 시절이라 아이오와 유학생의 총각 탈출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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