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포닥으로 떠나는 학생들 송별파티겸 우리 집에서 모였다. 와인도 마시고 즐겁게 놀다가 마지막 부분에 포닥으로 떠나는 학생이 마음 속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이 길을 선택해서 떠나지만 과연 학문에서 성공할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고. 교수님은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하다고 질문을 했다.
2. 공부를 하면서 그런 자기 의심이 들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빈센트 반 고호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그림을 그릴려고 시작하면 하얀 캔버스가 너는 결국 못할거야 라고 주문을 거는것 같다고 자신이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을 토로했던 내용이 기억난다.
3. 사실 그런 심리적 저항은 뇌가 나에게 주는 속임수일수 있다. 공부를 하려고 하면 뇌는 처음에 저항을 한다. 너는 어차피 안돼 이런건 중요하지 않아 이런 식으로 속삭인다. 그런 심리적 저항을 무시하고 계속 공부를 하면 어느 순간 뇌는 포기하고 내게 협조를 한다. 아무래도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거 같으니 차라리 도와줘서 빨리 끝내고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4. 내 생각에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가 공부를 하는 동기가 두려움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직업을 갖고 먹고사는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런 현실의 중압감이 공부를 하는 즐거움을 압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은 일종의 종이 호랑이 같은 허상이다. 막상 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 두려움의 크기를 과장하려고 한다. 상대의 힘을 과장함으로써 자신이 그 안에 숨어 자신의 게으름을 변명하고 싶은 것이다.
5. 그래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라는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사랑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으로 연구의 동력을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해보자. 그러면 매일 연습하는건 당연하지만 그게 힘들기 보다는 그걸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번뇌가 더 힘들게 된다. 그런 번뇌를 극복하는 힘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건 음악에 대한 사랑일수 밖에 없다. 내가 이 피아노를 하루종일 쳐서 나중에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음악을 연주하는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기에 그 순간에 올인하는 것이다.
6. 공부 역시 조금도 다르지 않다. 처음부터 탄탄대로가 보장된 그런 공부를 하는 사람은 없다.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마귀의 속삭임은 사실 성장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다 그런 마귀의 유혹을 극복하고 자신의 도를 이루었다. 그걸 극복하는 힘은 결국 사랑이다.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는 순간이 즐겁고 그걸 통해 내가 좀더 똑똑하고 나은 사람이 된다는 느낌과 내가 나의 학문을 통해 사회적 value 를 제공하게 되는 경험이 선순환을 이루면서 나를 한차원 높은 경지로 이끄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여정을 거쳐 지금의 내가 되었고 그런 면에서 나는 두려움이 별로 없다. 그런 두려움을 제법 많이 극복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