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스토리 (8)

배수진을 치다

by 김재광

결혼을 하고나서 돌아오니 교수님이 박사 논문 토픽을 주셨다. Rao and Shao (1992) 의 Biometrika 논문을 던져주시고는 이거 읽어보고 몇군데 증명해보고 나서 다시 만나자고 하셨다. 드디어 졸업 논문을 쓰는구나 싶어서 그 다음부터는 정기적으로 만나서 진도를 나갔다. 샘플링에서 missing data 가 있을때 hot deck imputation 이 많이 사용되는데 그러한 경우 추정량의 분산을 어떻게 표본으로 부터 추정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걸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Rubin 교수의 multiple imputation 을 공부하게 되었고 관련하여 베이지안 방법론에 대하여도 공부를 해야 했었다.


박사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동의할텐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고 아는게 늘어가는게 아니라, 공부를 할수록 모르는게 많아지고 자신감이 더 없어진다. 내가 여태껏 이런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동안 잘난척 하고 다녔구나 하는 생각에 한없이 부끄러워 질때가 많았다.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던 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임을 깨달았다. 서울대에서 내가 한것이라고는 공부를 안하면서 동기들끼리 모여서 서로 자부심만 키운 것이었는데 돌이켜 보면 참으로 한심한 짓이었다. 성경의 빌립보서에 보면 사도바울이 자신의 학벌과 가문을 배설물처럼 여긴다는 표현이 나왔는데 어느 순간 내가 그걸 이해하게 되었다. 학벌은 내가 성장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방해가 되는 것이기에 이를 아주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게 맞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절대 학벌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학벌을 들먹이는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의 학벌을 자랑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현재가 내세울게 없다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당시 낮아질대로 낮아졌는데 그러면서 약간 슬럼프 같은것도 느꼈던것 같다. 그렇게 나 자신이 monotone 하게 낮아지는걸 경험하면서 정신적 바닥을 치는 시기가 1998년 겨울이었던것 같다. 그때는 박사과정 4년반이니 어느 정도 논문도 완성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나는 nobody이고 아는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

물론 4년반에는 남들처럼 나도 job 시장에 나가서 여기 저기 지원을 했지만 한군데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아이는 태어났고, 어깨는 무거운데, 졸업의 기약은 보이지 않았고, 게다가 한국은 그 당시 IMF 가 터져서 부모님도 경제적인 타격을 받았다. 월 500불 정도 우리집 생활비를 보내 주시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와이프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이제 논문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집에서 잠을 자지 말겠다고. 그냥 학교 연구실에서 쪽잠을 자고 학교에서 하루종일 공부를 하기로 한 것이다. 집사람에게는 이제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것 같으니 집에 늦게 들어오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진용이(아들)랑 잘 있으라고 이야기를 했다. 임진왜란 당시에 신립 장군이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쳤던것 처럼 나 역시 Snedecor Hall 2층 연구실에서 논문의 배수진을 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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