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활 (4)

by 김재광

내가 1994년에 미국 유학을 가서 2002년에 돌아오니 처음에는 여러가지로 생소했다. 예를들어 유학 가기 전에는 전화 아니면 삐삐로 연락을 했었는데 돌아오니 삼성 애니콜 같은 핸드폰 문화였고, 그 중간에 IMF 로 극심한 사회적 변화를 거쳤고, 또 유학 가기 전에는 강호동이 씨름선수로 천하장사 되는걸 보고 갔는데 돌아와보니 개그맨이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강호동이 너무 오바하는것 같고 적응이 안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 졌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 졌지만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 지기는 커녕 점점 더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건 한국의 교수사회 내에서의 정치 및 패거리 문화였다. 나는 원래 집단주의적 문화에 잘 맞지 않는 편이었는데 미국물을 먹으면서 그런 기질이 더 강화되었고 그래서인지 돌아와서 한국문화에 적응하는게 어려웠다. 게다가 나는 소속이 불분명했다. 석사 지도교수님이 유학중에 돌아가셨기에 한국에 돌아와도 찾아뵐 대학원 지도교수님이 없었다. 몇분의 은사님이 계셨고 가까운 선배 몇분이 전부였다. 한마디로 비빌 언덕이 없는 것이었다.


암튼 2003년 가을에 Annals of Statistics 라는 톱저널에 단독저자의 논문이 accepted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좀더 연구환경이 나은 학교를 찾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Biometrika 에 단독저자로 나온게 있었고 2003년에는 Sinica 에 논문이 실렸으니 편수는 많지 않아도 좋은 저널에 2-3편 있는 것으니 지원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당시 내가 가장 가고 싶은 학교는 고려대였다. 한국의 통계학과 중에서 서울대와 고려대가 가장 괜찮은 편이었는데 서울대는 이론 통계쪽으로 강했고 고려대는 응용 통계쪽으로 강했는데 나는 응용 쪽이니까 나에게 딱 맞는 곳이 고려대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고려대 젊은 교수님들이 내게 호감을 가지고 계셨고 지원을 격려하셨기에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고 지원을 했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지원을 해놓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에 은사님 한분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서울대에서 오프닝이 났으니 지원을 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점잖게 내게는 과분한 곳이라고 겸손을 떨면서 사양의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그 교수님은 아주 집요하셨다. 서울대에서 샘플링으로 박사를 배출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서울대는 사립대가 아니라 국립대이고 그래서 국가의 통계 관련 수요에 호응해야할 의무가 있는데 그걸 위해서는 서울대에 샘플링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김박사가 여기에 적임자이니 꼭 지원하라"는 말씀에 귀가 솔깃해졌다. 서울대에 샘플링하는 교수가 있어야 한다는 명제 자체는 나도 동의했기 때문이다. 엉겹결에 지원하겠노라고 답을 드리고 나니 고민이 생겼다.


서울대 교수 채용에는 친한 선배 교수가 이미 지원을 한 상태였고 고려대는 이미 지원이 끝난 상태였는데 이렇게 지원을 해도 되는건가?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울대에 지원한 선배에게 전화를 해서 허심탄회한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많이 서운한 감정을 드려내셨다. 곧이어는 고려대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엄청 화를 내면서 학과 인사위원회는 통과했지만 서울대를 가겠다는 사람을 뽑을수는 없으니 고려대 지원을 당장 철회하라고 나를 닥달하셨다. 뭔가 일이 꼬인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내가 그토록 욕을 처먹을 일인가 하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고려대학교 교무처에 "일신상의 이유로 교수 채용 지원을 철회합니다"라는 편지를 써서 그날로 보냈다. 그리고는 어차피 이렇게 된거 서울대에 지원을 해보자 하고 서울대에 지원을 했다. 서울대는 무슨 지원 관련 서류가 그리도 많은건지 지원하면서 후회감 같은게 들었다. 지원 서류에 accepted paper 는 기술하지 말라고 해서 Annals of statistics 채택된거는 적지 않았다.


암튼 그렇게 지원서를 제출하고 중간고사 기간을 맞이하여 아이오와에 가서 일주일간 논문을 썼다. 돌아오는 길에 이메일을 체크했는데 내게 전화로 강권하신 그 은사님에게서 온 것이 있었다. 학과 인사 회의에서 아쉽게도 내가 탈락하게 되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내용이었다. 고려대 교수들과는 관계가 악화되었고 서울대는 떨어졌으니 나는 이게 어디 옮기기도 힘들겠다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며칠 후에 연세대에서 연락이 왔다. 교수 채용에 지원하시라는 연락이었다. 연세대는 그동안 연세대 출신만 계속 뽑는 걸로 유명했는데 그때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번에는 타대 출신을 뽑아야겠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암튼 그렇게 해서 엉겹결에 연대에 지원을 하였고 합격 통지를 받아서 연세대에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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