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암의 추억 (1)

금도암을 만남

by 김재광

때는 바야흐로 1991년 가을, 대학원 석사과정 2학기차의 청년 김재광은 고민이 많았다. 과연 이 석사과정을 밟는게 맞는건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군대를 가고 빨리 취직을 하는게 답인건지 알수가 없었다. 이전 학기에서 받은 성적이 C 두개에 B 하나였는데 대학원에서 C 를 받는다는건 사실상 학부의 F 학점과 같았기 때문이다. 석사병역 특례때문에 내가 대학원을 억지로 온 것이지 학문을 하러 온게 아니였고 대학원 면접에서도 분명 그렇게 말씀 드렸었는데 교수님들이 이해심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정말 문제가 있는건지 첫학기를 마치고 방학을 지나 2학기를 접어드니 분위기가 썰렁한게 뭔가 낯선 곳에 온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그때는 대학원생 연구실에 석사 1년차가 같이 모였는데 그 방에는 인물들이 많았다. 그 방에서 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대략 13-14명 정도였는데 그중에서 나중에 서울대 교수가 2명 배출되었고 미국에서 교수생활 하는 사람도 나 포함 2명이 되었으니 제법 물이 좋은 셈이다. 그런데 그때에 내가 공부를 계속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나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


하지만 충격적인 학점을 받으니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싶었다. 대학원 동기들이 나를 쳐다보는 눈길도 무슨 개그맨 보듯이 하면서 있었고 일단 내가 그 젊은 날에 그러고 사는게 맞는지 모르겠었다. 나는 석사병역 특례를 위해 진학을 했고 그래서 최소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기대하며 석사 졸업만 하려고 하는건데 왜 사람들은 나의 진심을 몰라주고 내가 아주 무능한 사람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일까?


그러다가 호기심반 재미반으로 9월 중순 정도에 우연히 들린 곳이 있었다. 강남 신사동 4거리에서 잠원동 쪽으로 가다가 어느 건물 2층에 있는 "금도암"이라는 점집이었다. 그때 같이 놀던 어떤 친구가 거기 용하다는 소리를 해 주어서, 복채 3만원을 들고 상담을 하러 갔었다. 대충 기억나는 내용이 내가 관운이 좋기에 직업군인이 되었으면 별을 달았을 것이고, 아니면 공무원을 했어도 높이 출세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면 공부를 해도 좋다. 공부를 하면 박사 두개는 딸수 있는 사주이다. 이러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공부"를 계속한다는게 내 인생의 하나의 가능성이 될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었던것 같다. 그 당시의 나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상상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학부 학점이 2.6인데 내가 무슨 박사 공부를 한단 말인가? 말도 안돼. 이렇게 혼자말을 하다가도 다시 드는 생각은 어차피 석사 졸업하면 갈 직장은 정해져 있으니 그럼 밑져야 본전 식으로 공부를 해보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 그러면 이왕 여기 왔으니 딱 1년만 열심히 공부해 보자. 그리고 안되면 깨끗이 포기하자. 이렇게 결심을 했는데 그게 아마 1991년 9월 말 정도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