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
그렇게 굳게 결심을 한 나는 완전 변신 로보트처럼 새로운 삶을 살았다. 성경에서 사울이 바울되는 장면을 생각하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연구실에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밤 10시에 집에 가기를 매일 반복했는데 그렇게 내 자신이 폐인과 같은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게 나름 뿌듯하고 즐거웠다. 갑자기 왜그러냐? 여자한테 차였냐. 점쟁이 말듣고 공부하는게 말이 되냐 등등 동기들의 여러가지 농담과 조롱이 있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에서의 정상적인 대학원 생활을 즐겼다. 아마도 방황을 너무 오래하다 보니 이런 목표를 갖는 삶 자체가 좋았고 그래서 공부에 굶주린 사람처럼 잡념없이 지냈다.
하지만 공부는 쉽지 않았다. 나는 겨우 학부 수리통계학 지식만 희미하게 달랑 있는 수준이었고 당시 대학원 이론통계 교재는 Lehman 책이었는데 그건 Casella and Berger 책보다도 한단계가 더 위인 책이니 나는 두 단계를 따라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책을 읽는데 한줄을 읽고 그 다음 문장이 So 로 시작되는데 도대체 그게 왜 So 인지 이해가 안되었다. 다행히 연구실 옆 책상에 서XX 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우리 대학원 동기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하는 성실하고 뛰어난 친구라서 그 친구에게 많이 물어볼수 있었다. (그 친구는 다음 해에 예일 대학에서 전액 장학금 오퍼를 받고 유학을 갔다)
그 친구로부터 이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그 설명이 왜 이해가 되야 하는건지를 몰라서 다시 물어야 했다. 결국 묻고 답하고 다시 묻는걸 다섯번 정도 반복해서 모든 과정을 다 대답을 얻어냈고 그래서 그걸 하나씩 다 정리해서 노트를 만들었다. 책의 한페이지를 이해하기 위한 10페이지 노트를 만드는 식이었다. 그렇게 공부를 했는데에도 성적은 쉽사리 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 학기는 올 B 를 받았고 대신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다시 밀린 공부를 했다.
겨울 방학에 다시 한번 Lehman 책을 읽었고, 3학기에 이론 통계를 재수강 하면서 교수님의 설명을 다시 들으니 그제서야 뭔가 캄캄한 어둠속에서 희미한 빛을 발견하는 것처럼 조금씩 이해를 하게 되었고, 논문자격 시험공부한 것까지치면 그 책을 총 4번 읽었다. 재수강 할때에는 그 과목을 A+ 를 받게 되었고 논문자격 시험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게 되었는데 그때에서야 학과 교수님들이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시고 나를 부드러운 눈길로 보시는것 같았다.
결국 공부를 1년간 정말 열심히 했더니 그나마 유학 나가는 다른 친구들과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도 유학을 준비하는 걸 보면서 나도 진학의 꿈을 꾸기 시작했고 어쩌면 금도암의 예언이 아주 틀리지는 않을것 같다고 스스로 희망섞인 위안을 하기도 했다. 내 석사 지도교수님은 통계학의 샘플링이라는 분야 쪽으로 아주 독보적인 교수님이셨는데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분이셨다. 그분께 샘플링을 전공하기 위해 유학을 가는 것에 대해 여쭤 보았더니 아이오와 주립대학을 가보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아이오와 주립대학이라는 학교 이름을 그때 처음 들어보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