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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이 Nov 11. 2021

다름에 대한 망상

11/10/21

드디어! 오늘 쓰는 오늘 일기 ㅋㅋㅋ 어우, 요새 자꾸 잡생각에 딴짓이 늘었다. 재밌기는 한데 피곤하고 ㅠㅠ 자꾸 쓸데없는 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에 불안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뭔가를 해나가다 보면 내년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겠지? 사실 목표 설정이 제대로 안돼서 그런가, 시간을 내서 휴식을 갖고 여유를 찾으려고 해도 자꾸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하다 보니 더 정신 없어지는 것 같다. 다시 차분하게 정신일도 하사불성으로 다시 시작!!! 까지는 아니고 일단은 계속해본다!




예전에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부정적인 성격의 사람이 몇 년 정도 긍정적인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성향이 바뀔 수 있다는 이론이 있었다. 요즘 내가 그런 경험을 하고 나도 의식적으로 노력하다 보니 진심으로 긍정적인 마음이 들어 정말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방어심이 먼저 들지 않고 베베 꼬이지 않고 정말 순수하게 상대를 받아들이고 응원할 수 있는 기분이라는 게...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내 뇌가 맑아지고 성격도 밝아지는 게 나에게도 보이고 아무튼 그랬던 경험이었다.


긍정적이지만 이게 무분별한 낙관이 아니라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긍정적인 면을 보기로 '선택'하였기 때문에 그 변화가 더욱 의미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엄청나게 대단한 발견을 했는 줄 알았는데 이미 행복한 결혼생활을 애초부터 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ㅋㅋ 멋있는 사람들, 사랑받은 티가 나는 사람들,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들,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




어제는 오랜만에 평일에 휴가를 내고 이것저것 일정을 잡아 알차게 보내겠다고 계획했지만... 결국 꼭 해야 하는 것만 어찌어찌 겨우 해냈다. 아무리 잘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맞춰도 사실 잘 안될 때도 있다. 그냥 내 욕심이었다. 천천히 해야 하는데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충분히 둬야 하는데 휴가 하루 안에 다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ㅠㅠ. 


3개월 전부터 예약하고 어떤 서류를 처리하러 갔다. 한국이었으면 당일 처리될 수 있는 일들이겠지만 이곳은 원래 느리니까, 일찍 일찍 준비해서 잘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황이 닥치면 당황스러운 건 여전했다. 


예약 시간보다 여유 있게 15분 일찍 도착해서 갔는데 사람들이 건물 밖에 엄청나게 줄을 서있는 게 아닌가! 다들 예약한 사람들이고 언제 입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 채 주구장창 대기만 하고 있으라니? 접수도 안 해주고 예상 대기시간이 얼마인지도 안 알려주고 예약한 시간대로 순서대로 처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무질서함이 이해가 안 됐다. 게다가 평일에 일부러 시간 내서 온 건데ㅜㅜ 나는 오늘 꼭 일을 처리하고 싶었다.


그런 조급한 마음이 들어 직원에게도 문의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 어떤 상황인지 물어보며 대화하면서 나는 또 배웠다. 이곳 사람들은 정말 마음도 넓고 친절하고 날씨 좋은 곳에서 햇볕 많이 받고 자란 화사한 사람들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에 반해 나의 밴댕이 소갈딱지가 더더욱 작게 느껴져 깨달음을 얻었다 ㅠㅠ. 


직원들은 그냥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들의 일은 우리를 도와주는 업무이다. 그리고 예약 시간이 있더라도 업무가 지연될 수도 있고 뭐 그렇다 하더라도 사실 어떻게 해결책은 없으니 화를 내는 것도 무의미하다. 물론... 대기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고 생각되지만 사실 그 사무실의 업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다 알 수는 없으니 그 사람들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나름의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것이다. 불평불만보다 인내심으로 진상 손님이 되는 것보다 그들의 노고에 공감해줄 줄 아는 그런 고객으로 내가 나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날 내가 겪었던 가장 긍정적인 경험은 따로 있었다. 나는 꼼꼼하고 정리 잘하는 성격이지만 정말 간혹 가다 아주 중요한 순간에 정신줄을 놓아버릴 때가 있다. 어제도 나는 내가 필요한 서류를 다 챙겨서 갔다고 생각했는데 서류 하나를 빠뜨린 것 같다는 불안감에 남편에게 연락했다. 남편은 바로 그 서류를 챙겨서 와줬고 남편의 그 행동에 감명받았다.


왜냐하면 그날은 남편이 일이 많아서 함께 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까지 했던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바쁜 날, 내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주저 없이 바로 나에게로 와주다니! 남편은 이렇게 자신의 진심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국에 그 서류는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 초조해했던 나를 만나러 와서 집까지 함께 갔다.


만약 반대의 경우에 남편이 내 도움이 필요한데 내가 당황하지 않고 또는 남편 탓을 하지 않고 남편처럼 차분하게 바로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 있었을까? ㅠㅠ 나는 어쩌면 어이구 이것도 못 챙기냐, 아니 내가 이렇게 바쁜데 거기까지 또 언제 가라고 그러냐 하는 아주 조금의 원망스러운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그리고 내가 남편을 도와줬다고 다음부터는 잘 챙겨! 하며 생색을 내지 않았을까? ㅠㅠ 물론 부부 사이에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고 그게 문제가 될 이유도 없지만, 나는 그런 작디작은 그릇이 아니라 더 큰 마음가짐을 원하기 때문에 아무 말도 없었던 남편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내가 그렇게 답답해했던 남편의 모습이 이곳에서 살려면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남편의 느릿느릿한 행동, 여유로운 사고방식 모두 그냥 이곳에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참고 살지?! 했다가도 이렇게 해도 돌아가니까 문제 삼지 않는 것 같다. 원래 그랬으니까. 다만 한국에서 온 빨리빨리의 민족인 내가 이곳에 맞춰가다 보니 잡음이 생겼던 것이다. 그 잡음을 내가 만들었었던 것이다. 물론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곳은 한국이 아니니까. 누가 틀린 것이 아니라 그냥 입장이 달랐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남편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면이 사실은 엄청난 장점이었다. 자잘하게 수 쓰지 않는 사람. 항상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 인내심이 많은 사람. 자존감이 높은 사람. 그에 반해 나의 장점이라고 느꼈던 면이 어쩔 땐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효율성을 따지다 보면 감정적 교류를 놓칠 수도 있고 신속 정확을 따지다 보면 여유를 놓칠 수도 있다. 


나는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것도 일방적인 생각이다. 진심이 통한다는 것은 상대가 받아들임을 포함하는데 그게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냥 진심으로 대했고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에 만족할 줄 알아야 했다. 이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상대의 진심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진심이 내가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얕은수를 쓰는 게 눈에 보일 수도 있고 상대든 나든 다른 주변 사람들이든 간에 사람이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우리가 용인해주기 때문이다. 그것 또한 그 사람이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고 싶은데 그 방식이 그 사람에게는 최선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그런 진심도 재빨리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남편은 정말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내가 혼자서 머릿속으로 일련의 사고 과정을 거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존중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다. 나는 결혼의 좋은 점만 기대하며 둥둥 떠있었다면 남편은 결혼을 통해 겪게 될 온갖 희로애락에 벌써 모든 준비가 된 사람처럼 보였다. 무던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요리를 귀찮아하는 나를 위해 영양소를 챙기고 장을 봐서 매일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해주고, 과일을 깎아서 턱 밑까지 가져다주고, 생과일 스무디도 만들어주고. 내가 결혼 초 내조(?)하는 아내의 역할에 나 스스로를 가두어 힘들게 요리하고 청소까지 하면서 남편보고 왜 나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해주냐고 화를 내는 것보다 남편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내가 받을 준비가 되어있었어야 했다!


남편은 우리 사이에 조금 어색한 기류가 있으면 나에게 먼저 다가와주거나 음악을 틀어놓고 춤추자고 제안해준다. 이 닦기 귀찮다고 버티고 있으면 양치하라고 나를 안아서 화장실 앞까지 데려다논다. 내가 원하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그럴 때면 불과 작년까지도 남편에게 삐져서 찬바람 쌩쌩 날리고 있었던 과거의 나의 행동이 참 부끄러워진다. 남편이 나를 무시한 게 아니라, 가시 돋친 나를 포용해주고 나에게 서운함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남편이 준 것이었다. 갈등을 대처하는 나의 방식이 아주 유치했고 미숙했다. 그런 나에게 긍정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경험을 반복해서 준 것이 남편이었다.




남편은 참 좋은 사람인데... 게임도 안 하고 헬스도 안 하고 술 담배 약도 안 하고 도박도 안 하고 카페나 맛집도 안 가고 대체 무슨 재미로 살지? 스트레스 해소는 뭘로 하고 살지?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남편은 자신에게 집중해서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그게 가능한 것 같다. 자신에게 원하는 모습이 뚜렷하고, 자신의 기준에서 중심을 잘 잡고,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스스로 존중하며 살아서 스트레스를 받아도 건전하게 해소하고 갈등이 생겨도 대화로 풀어가며 만약 문제 해결이 안돼도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


무언가 새로운, 특별한, 재미있는 일들이 없을 땐 일상이 지겨워 죽겠다가도 뭔가 일이 많으면 그 일상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해진다. 남편은 이미 그 모든 걸 깨달은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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