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1월 14일, 릴리우오칼라니 Liliuokalani 여왕은 1892년에 입법한 새로운 헌법을 논의하기 위해 kanaka maoli (하와이 원주민을 부르는 말) 과 함께 궁전으로 향했다. 이 새로운 법안은 하와이의 모든 섬에서 기존의 헌법을 개정해 달라는 청원서를 받아 만들어진 것이었다. 등록된 유권자 9천5백 명 중 6천5백 명, 즉 3분의 2가 이 청원서에 서명했다.
새로운 헌법이 국가의 법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명의 장관이 여왕과 함께 서명해야 했다.
이날 오후 이올라니 궁전 Iolani Palace 의 푸른 방 Blue Room 에서 열린 회의에서 새로 임명된 내각 장관들은 두 차례에 걸쳐 새 헌법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새 헌법은 하와이 국민의 오래된 권리 중 일부를 회복시키고,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포함하였기 때문이다.
릴리우오칼라니 Liliuokalani 여왕은 자서전에서 국민들의 목소리는 전통적으로 신의 목소리와 같은데, 그들의 청원을 들어주지 못하니 귀머거리와 같다며, 진정한 하와이안의 족장이라면 그들의 청원을 재고해보겠다고 약속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슬퍼했다.
오후 4시, 여왕은 궁전 밖에 모인 군중들에게 국민들을 위해 새로운 헌법 재정을 발표하고자 하였지만 장애물에 부딪혔고 계획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평화를 유지해달라고 부탁하였으며 국민들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표현하였다.
1893년 고종 30년 1월 13일, 지석영 (문관, 의생, 정치인, 교육자, 한글학자) 서울 교동에서 유아에게 우두 종법을 실시했다. 개화기에 종두법을 보급하는 등 각종 전염병 퇴치에 앞장선 예방의학자이자 의학 교육자로 근대 서양 의료 도입에 공이 크다.
지석영은 1890년대 후반 독립협회의 주요 회원으로 활약하면서 밀 재배의 경제성을 설파하고 주시경과 함께 한글 가로 쓰기를 주장한 선각자 이기도 하다.
일본 공사관 부속 군의로부터 서양 의학의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일본으로부터 종두술을 들여왔다고 하여 친일파로 몰려 체포령이 내려지고 종두장이 난민에 의해 방화되는가 하면 일본과 손잡은 개화당 박영교와 함께 도당을 만든다 하여 전라도로 유배당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1882년 전라도 어사 박영효의 청으로 전주 성내에 우리나라 처음으로 우두국을 신설, 공식으로 종두를 실시하고 종두법을 가르쳤으며, 1885년 우리나라 사람의 손으로 쓴 최초의 종두서 '우두신설'을 저술하였다.
1892년, 모든 혐의가 풀리어 귀양살이에서 서울로 돌아온 지석영은 서울 교동에서 우두보영당을 설립하였다. 천연두가 유행할 때마다 우두 종법을 실시하여 병에 걸린 이들을 구제하였다.
그는 한성부윤 등 행정의 수장으로 대한제국의 국사에 종사하는 한편 의학 교육에 남달리 관심이 많아 정부에 의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요청하여 이에 따라 대한의원 의육부의 전신인 ‘의학교’가 1899년 설치되었고, 그는 이곳의 초대 교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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