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2월 중순, 칼라카우아 Kalakaua 왕이 8주간의 미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는 카와이아하오 Kawaiahao 교회에서 하와이안 언어 Olelo Hawaii 와 영어로 연설을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현명하게 돌봐주어야 합니다. 최선의 방법은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 우리가 현재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강대국들에게 우리가 그들의 도움과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와이가 세계의 독립국가들 사이에서 우리의 위상과 가치를 세계에 증명합시다."
“Let us therefore wisely take care of ourselves; and the best way to do this is to endeavor to make such material and social progress, that the powerful governments whose friendship we now fortunately possess, shall be convinced that we deserve their aid and support. Let us in short, prove to the world, that Hawaii is worthy of her position among the independent nations of the world.”
1875년 고종 12년 9월 20일, 운요호 사건이 발생했다. 통상조약 체결을 위해 영국에서 수입한 근대식 군함인 운요호가 불법으로 강화도에 들어와 측량을 구실로 조선 정부의 동태를 살피다 조선 수비대와 전투를 벌였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안으로 중앙집권화와 근대화를 단행하고, 밖으로는 침략전쟁을 벌여 부국강병을 모색했다. 조선에서는 1873년 통상수교거부정책을 펴던 흥선대원군이 권력에서 물러나면서 일본은 조선을 개항시키기 위해 무력으로 조선을 압박하였다.
1876년 2월 27일, 강화도조약 (=한일수호조약, 병자수호조약) 이 체결되었다. 조선보다 12년 앞서 서양 세력에게 문호를 개방한 일본은 국제법과 국제 정세에 어두운 조선을 상대로 군사력을 앞세워 타율적이며 부당한 조약을 맺었다.
일본과의 조약 체결을 계기로 조선은 1882년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었고, 1883년에는 영국과 독일, 1884년에는 이탈리아와 러시아, 1886년에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과 잇따라 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조선은 본격적인 개항과 개방의 길로 들어선다
1887년 2월 20일, 고 리케리케 Likelike 공주의 두 번째 장례예배가 이올라니 궁전 Iolani Palace 의 왕좌실 Throne Room 에서 열렸다. 고 리케리케 Likelike 공주의 장례예배는 3번에 걸쳐 일요일에 열렸고, 왕실 가족과 정부 관리들이 참석하였다.
Kawaihau Glee Club 의 연주와 4중창단의 노래가 장례식을 채웠고, 고 리케리케 Likelike 공주의 관은 아름다운 꽃, 화환, 레이로 덮여 있었고, 관의 양쪽에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그녀의 정식 장례식은 2월 27일에 진행되었다.
그녀의 친절하고 밝은 성격과 자선활동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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