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2월 15일 오전 11시, 칼라카우아 Kalakaua 선왕의 장례식이 이올라니 궁전 Iolani Palace 의 왕좌실 Throne Room 에서 시작되었다.
성공회 Hawaiian Anglican Church 의 Reverend Thomas Nettleship Staley 목사의 “O wau no ke ala hou ana, a me ke ola”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다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라는 연설을 하였고, St. Andrew’s Cathedral 성당 합창단이 부른 “When our heads are bowed with woe” (슬픔에 고개를 숙일 때) 찬송가가 이어졌다.
그 후 Reverend W. H. Barney 목사는 하와이안 언어 Olelo Hawaii 로 신약성서의 고린도서 제15장에서 배운 교훈을 낭독했다. Kawaiahao Church 교회 합창단은 하와이안 언어 Olelo Hawaii 로 “Jesus Lover of My Soul” (예수 내 영혼의 사랑) 찬송가로 예배를 마무리했다.
칼라카우아 Kalakaua 선왕의 관이 이올라니 궁전 Iolani Palace 을 떠날 때, 펀치볼 Punchbowl 정상과, 미군의 두 함대 Charleston 과 Mohican 에서 분전포가 발사되었다.
도시 곳곳에서 구슬프게 종소리가 울리고, 펀치볼 Punchbowl 에서 모닥불이 타올랐다. 그가 오늘날 남아있는 묘까지 천천히 굽이쳐 가는 엄숙한 행렬에 감동을 더했다.
1891년 고종 28년 2월 15일 조선이 북로전선, 즉 서울∼춘천∼원산에 이르는 전선을 가설하기 위하여 청나라와 조선북로전선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선은 1888년 서울로부터 함경도에 이르는 전선을 가설하여 이를 러시아의 전선과 접속시킬 계획을 수립하고 1890년부터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는데, 이 때에는 우선 서울서 원산까지만 개설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1885년 7월조선과 청나라간에 체결된 조청전선조약에 의하여 조선내에서 전선을 가설할 때에는 청나라전신국의 사전승인을 얻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1890년 3월조선은 북로전선 가설계획을 청나라에 통보하였고, 이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의 교섭이 시작되어, 1891년 2월 15일 조약이 체결된 것이다.
전문 9조로 이루어진 조약의 내용은 조선의 북로전선의 가설을 청나라가 양해한다(제1조). 그러나 북로전선을 타국의 전선에 접속시킬 수 없으며(제2조), 북로전선을 가설하고 운영할 조선전신국의 규칙 및 전신요금은 청나라전신국과 상의하여 결정한다는 것(제3조) 등이다.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조선은 즉시 공사에 착수하였고, 1891년 6월 20일 공사를 완공, 6월 25일북로전선의 전신업무는 개시되었다.
내용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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