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이 Mar 21. 2022

You are my secret boy’s parent

시부모님 존중 레시피

나는 아직 자녀계획은  없지만 아기를 낳으면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다는 감정이 들 것 같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불면 꺼질까 안으면 날아갈까 애지중지 키울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이 나를 그만큼 사랑해주시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시부모님도 남편을 그렇게 키우셨겠지.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사위에게 딸을 잘 부탁한다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하시는 것처럼 시부모님도 나에게 아들을 잘 부탁하시고 싶으셨을 것이라고 믿자. 우리 부모님께서 사위와 서로 알게 된 기간이 길지는 않는 만큼 딸인 나를 더 많이 믿어주시는 것처럼, 시부모님도 나를 믿어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거라고 믿자.




시어머님께서 나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당신이 아들을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겠지. 그리고 그 의도를 표현하는 방식이 당신에게는 그게 최선이었겠지. 나도 아들이 있었다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나에게 소중한 존재일 것이니까.


시어머님 배 아파서 목숨 걸고 낳은 자식이고,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애지중지 키운 아들인 것도 마찬가지이고, 지금 내가 내 아기에게 느낄 법한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모성애와 희생을 쏟아가며 예쁜 것만 보이고 먹이고 키웠을 텐데.


시어머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던 아들을 정말 정말 사랑하시는구나. 이 세상 누구보다 너무너무너무 사랑하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좀 듣기 수월하려나? 듣기 힘든 건 마찬가지 일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내가 시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상처인 이유는 시어머니가 나에게 잘해주실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남편의 부모님께서 나를 좋아해 주시고 환영해주시면 완벽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일 수 있겠지만, 사실 일평생을 뼈 빠지게 키운 아들과 일평생을 존재조차 몰랐던 며느리와 어떻게 똑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어른스럽고 현명한 시부모님이라면 당신의 눈에 차지 않더라도 며느리를 사랑으로 감싸안는 것이 아들이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아시겠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떻게 항상 뜻대로 되겠는가.


시어머니는 원래 아들을 더 사랑하는 분이라고 생각하면 시어머니의 치사한 행동이 완벽하게 설명된다. 시어머님은 어쩌면 아주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시어머님께 이쁨을 받아야 하거나 점수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나도 맘이 편하다. 시어머님은 며느리가 누가 되었든 싫어할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며느리를 싫어하는데 그게 어쩌다가 내가 되어버렸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기대치를 조정할 수 있다.


시어머니에게는 당연히 남편이 착한 편이고 내가 나쁜 편이다. 그건 당연하다. 우리 가족도 내가 누명을 쓰고 경찰에 잡혀가면, 우리 딸은 그럴 애가 아니에요!!! 하면서 나의 결백을 밝히도록 만반의 일을 해줄 텐데. 남편의 가족도 똑같을 것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세상의 이치이자 자연의 섭리이다.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 가족도 나를 더 위해준다. 그러니 아내가 남편의 행동에 상처받아서 남편을 나쁘게 몰아간다면, 남편 가족도 마찬가지로 우리 아들이 그렇게 나쁜 남편이 아니야 결백해 무죄야, 즉 우리 아들을 나쁜 사람으로 보는 며느리가 잘못이야 라고 생각하시겠지.




우리 부모님을 단순히 ‘부모’로만 보거나 시부모님을 단순히 '시부모'로만 보아서는 이해가 안 된다. 그렇지만 부모님이나 시부모님 또한 그저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날 선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시부모님께서 살아오신 삶을 되돌아보면 어쩌면 그분들께서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갈 수도 있다.


그 당시에는 남아선호 사상도 심했고 남녀차별이나 성평등, 여성의 사회진출 기회도 지금 세대와는 첨예하게 달랐다. 그 당시의 사고방식으로 지금의 며느리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당연히 듣는 젊은 세대에게는 거부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일평생을 가족을 위해 일하고도 더 주고 싶어 하시는 그런 분이시다. 다만 뭘 줘야 할지를 모르셔서 당신이 생각하기에 최고로 좋은 것을 주기 위해 고심하셨을 수도 있다. 다른 세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더라도, 그래도 당신들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바를 다 해주셨다. 그분들께서 알고 있는 한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해 주셨고, 덕분에 나도 남편도 이렇게 컸다.




불과 몇십 년 전 만 해도 찢어지게 가난한 시기도 있었고 경제위기도 있었고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았던 때도 있다. 아이들 밥 먹이는데 만이라도 급급하다 보니 인성교육이나 아동심리, 자아실현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을 수도 있고, 배려나 공감과 위로에 서툴을 수도 있다.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최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 당시에는 좋은 대학을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신분상승의 유일한 길이었어서 그 믿음으로 자녀들에게까지 교육열을 올렸을 수도 있다. 그 시대에는 그게 당연했다. 그렇게만 사는 게 정답이었다. 다만 시대가 많이 변했을 뿐이다.


어쩌면 시부모님은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이뤄야 할지를 모르시니까, 더 좋은 방법을 모르시니까 그러실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 자신이 익숙한 방법으로, 자신에게 행해졌던 방법으로 무의식적으로 행동하실 수도 있다. 그게 틀린 방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면 다른 방법을 모르실 수도 있다. 아들을 조종해서든 며느리를 자극해서든 뭔가 절실하게 원하는 게 있으실 수도 있다.


시대에 맞춰 변화를 배우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고쳐가며 어린 사람들을 수용하는 현명하신 어른도 있을 테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보상받고 싶어서 젊은 세대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고, 당신이 살아오면서 겪은 시행착오나 교훈들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그 방식밖에 몰라서 그러는 걸까? 제대로 된 위로를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은 타인을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서 자신이 알고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은 경험이 없다면, 제대로 된 진심을 표현받은 적이 없다면, 그 새로운 경험에 어색해서 어쩔 줄을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성인이 된 이상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온전히 나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오히려 현재를 사는 우리가 더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넓은 세상을 보며 더 발달한 기술과 발전한 사회 높아진 시민의식을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남 탓을 하는 것이 지금 내 문제를 회피하는 데에 가장 맘이 편하고 단기적으로 나의 죄책감을 덜어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나는 그분들을 이해는 하지만 옳고 그름을 분간하거나 현세대에 맞는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고, 그분들의 의견을 존중은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할 권리와 나의 믿음을 지킬 수 있다.


우리 세대는 부모님 덕분에 더 풍요로운 환경에서 더 나은 교육을 받았으며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큰 세상을 봤다. 접시 하나도 귀했던 그 옛날, 집전화도 귀해서 헝겊으로 덮어놓았던 그 시절과 지금은 다르다. 부모님은 부모님의 삶을 살았고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분명 더 좋은 방법을 찾을 것이고 더 행복할 수 있다.





https://link.inpock.co.kr/loveyourlife ​

이전 19화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도 조금씩은 달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