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뭘까
나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없을 때 눌린다.
내가 원해서 양보를 하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선택했다면,
또는 내가 자발적으로 상대의 결정에 동의했다면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결정을 대신하려 한다면
나는 자기 결정권이 침해당했다고 생각되어
상당한 박탈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인지 설명하는데,
"아니야, 그 정도는 별 거 아니야. 그렇게 느낄 필요 없어. 네 감정은 이래야 해" 라면서
나의 감정을 상대가 정의 내릴 때.
내가 어떤 것을 원한다고,
"아니야, 네가 몰라서 그래.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으니까 저렇게 해야지" 라면서
나의 선택을 상대가 대신할 때.
내가 가장 원하는 방법으로 이렇게 할 것이라고 결정했는데,
"아니야, 네가 잘못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 다른 사람들은 안 그래" 라면서
내가 아닌 상대의 이익을 추구할 때.
후회를 해도 내가 하고
손해를 봐도 내가 보고
책임을 져도 내가 지는데?
왜 그걸 당신이 판단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기 결정권에 대한 침해가
'나를 위해서' 그런 거였다고 정당화시키면
그 발작버튼에 나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정작, 내가 원한다고 분명히 말했던 일들은 다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나에게 강요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는
그런 이기적인 심보에
나는 치를 떤다.
여러 번 확인했음에도 뻔뻔하게 거짓말을 해놓고도 "네가 이렇게 화낼까 봐 그랬어!"
나에게 상처인 행동인 걸 알면서도 "너에게 상처 줄까 봐 너를 위해서 말 못 했어!"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는데도 "그것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하니까 그랬지!"
자기가 무시당한다고 느껴지면 눌린다.
아내를 위해
아내가 원할 것 같아
아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아내에게 필요할 것 같아 했던 행동들
자신은 호의를 베풀었는데
나는 내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라며 바로 거절할 때
그냥 그 성의를 봐서 고맙다고 한마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며
굉장히 실망한다.
나는 원하지 않는 호의는 폭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그게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발작버튼을 누르는 패턴이다.
머나먼 타국에서 서로 의지할 사람 우리 둘밖에 없다며 전우애를 다지던 것도 잠시,
어제 아침, 또 이 말도 안 되는 악순환으로 한바탕 다퉜다.
남편이 갑자기 2016년에 있었던 일을 끄집어내면서 시작된다.
그때 자신이 나를 '도와주려고' 했던 행동이었는데
내가 나중에 '후회할까 봐' 나의 거절을 거절했는데
내가 공개적으로 화를 내서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것.
그래서 그 상황에서 자리를 피해
내 거절을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는 주장이었다...
10년도 전의 일이지만
나는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고
그 도움을 거절한 것을 후회하지도 않고
왜 나에 관한 결정을 자신이 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남편은 적어도 자신의 호의에 대해 고맙다고 예의라도 차렸어야 하지 않냐
네가 친절하게 거절했으면 자기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라는 입장이고
나는 내가 이미 몇 번이나 거절했는데도 계속 강요하지 않았냐
왜 나에 대한 결정을 내가 내릴 수 없게 만드냐
너의 '도움'은 나를 통제하려는 수단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라는 입장으로
한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남편은 지금도 자신이 무시당한다며
문 닫고 나가버리면서 상황이 일단락 됐다.
남편이 왜 그렇게 사고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딱 시어머님께서 남편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 초 한 2년 간 시댁과 연락을 끊고 지냈던 이유이기도 하다.
꼭 나에게만 그렇게 하신 건 아니고
시동생에게도 그렇게 하시는 모습을 보고
고부갈등(?)의 오해는 풀렸달까...
그랬던 시어머님께서 불과 지난달, 영상통화에서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신께서 시동생을 대하던 태도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었는지 깨달았다고 하셨다.
칠순의 연세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인정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남편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자신은 거절을 처음부터 받아들였어야 했고
나는 호의에 고마워할 수 있었어야 했다고
여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
남편은 그렇게 결론 내린 듯하다.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덮였다.
백지처럼 말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눈도 언젠간 녹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