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 남편과 회피형 아내가 결혼하면

결혼 7년 차 부부가 말하는 결혼

by 홍이

한때는

남편이 개인주의라고 치를 떨었던 때가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지밖에 모르지?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다 할 거면 대체 왜 결혼한 거야?

어차피 자기 맘대로 할 거면서 왜 물어보는 거야?


남편은 언제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오직 본인 입장에서만 타당한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거나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선을 넘어 나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감으로 번져갔다.


나는 저 사람의 뭘 보고 결혼까지 해버린 거지?

앞으로 평생 외롭게 혼자 남겨지는 걸까?

이렇게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


회피형인 나는

우리가 다툴 때마다 매번 최악의 경우에 대비했다.

한 발을 저 멀리 빼고

여차하면 이혼이라는 생각으로




우리의

부부싸움에는 패턴이 보인다.

맞지 않는 부분에서 각자의 의견만 날 세워 변호하다 보면

남편은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며 대화를 피해버리고

나는 문제해결보다 본인의 자존심이 우선인 남편에게 실망해서 바로 손절각을 재버린다.


여기서 손절이라는 건 나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다.

남편의 나라에 이민 와서

남편의 언어로 소통하며

남편의 배우자로서 거주비자를 받은 나에게는.


우리가 말다툼을 할 때마다

나는 내가 안전한 지의 여부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신체적 물리적 안전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서적 안전이 무너질 때,

반사적으로 나는 남편에게서 나를 멀리 떨어뜨려야 했다.


그 어떤 논리도, 이유도, 타당성이나 합리성도

설사 그것이 아주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더라도

나의 안전을 담보할 수는 없었다.


버려지는 것.

머나먼 타국에서 혼자라는 것.

결국은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생활에서 희생을 하고 배려를 한 건 나뿐이라고 믿었는데

우리의 관계를 지켜낸 건 남편이었다.


부부싸움 끝에 나는 이혼을 검색하고 있었다면

남편은 매번 나에게 다시 다가와 말을 걸어줬다.


깜깜한 방 속에서 혼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나에게

물 한잔을 건넨다거나

밥은 먹었냐고 물어본다거나

기분이 괜찮아졌는지 확인해 주었다.


내 감정을 세심하게 돌봐주지는 못하더라도

나에 대한 사랑과 결혼에 대한 충성심은

오히려 남편이 지켜준 것이다.




신혼 초

남편에 나에게 쏘아댔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거주허가를 위한 비자 준비를 하면서

너희 나라 비자인데 왜 다른 남편들처럼 적극적으로 도와주질 않냐고 남편을 탓했을 때

남편이 한 말은

"네 비자잖아. 네가 해야 하는 일이잖아." 였고


풀타임으로 일하고 와서 나도 피곤한데

집안일은 너의 책임이기도 하지 않냐며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남편을 탓했을 때

"결혼 안 했어도 어차피 일은 할 거 아니었냐. 혼자 살았어도 집안일은 하지 않냐"


하루 온종일 외국어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데

남편의 나라에 사는 나의 희생을 당연시한다며 남편을 탓했을 때
"너는 외국인 학교 졸업했다면서, 영어 쓰는 직장이 뭐가 힘드냐" 고 했었다.


남편의 말은 간결했고 그것 또한 사실이긴 했다.




개인주의

남편이 말다툼 후 나에게 다시 다가온다는 사실 자체가

관계회복에 대한 노력을 보여준다고 믿고

그 노력에 굉장히 고맙게 생각한다.


이번에도 결국은 남편 덕분에 우리가 화해하게 됐으니까...

우리가 아무리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더라도

관계가 회복되는 경험으로 마무리한다면

우리도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매번 남편이 화해의 손길을 내밀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고

나도 남편을 탓하지 않고 대화로 풀어갈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상처로 무장한 나의 태도가 더 이기적인가 싶기도 하다.

내가 남편의 사고방식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듯이

남편에게 나의 모든 감정을 받아들이라는 건 무리한 요구이기도 하니까...


역설적이게도,

내가 남편을 믿고 있는 이유는 남편의 개인주의 때문이다.


남편은 다른 사람이 좋아졌다거나

이혼이 하고 싶어 진다면

억지로 결혼생활을 이어갈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나도 우리 관계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남편을 믿는다.


이혼은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결혼생활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은 바로 지금밖에 못 하니까.




개인주의 남편과도 행복할 수 있을까.jpg <남편이 미워질 때 보는 책> 중


https://brunch.co.kr/brunchbook/kim12064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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