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온화한 얼굴로 미소 지으며 앉아 명상하고 있다가, 누군가 가볍게 건드리면 곧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화를 내기도 한다.
그 모습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일깨워준다. 몸은 정화되었을지 몰라도, 마음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것.
수행의 길 위에서는 신비한 능력을 보이거나 깊은 집중에 들어가는 것보다, 윤리와 자비, 그리고 마음의 정화가 더 깊은 뿌리가 된다.
만약 몸 수행만 하고 마친다면, 그것은 썩은 뿌리를 방치한 채 곁가지 치기만 하는 것과 같다.
몸 수행의 집중력은 마음 수행의 정화를 돕는다. 마음이 정화될 때 비로소 가벼워지고, 통찰이 깊어지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몸보다 마음 수행에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몸은 관찰하기 쉽고, 원칙만 지키면 누구나 일정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찰나에 일어났다가 사라지기에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또한 그림자가 에고로 굳어져 마음을 속이고 수행을 방해하기 때문에, 더 큰 끈기와 노력이 요구된다.
그래서 몸 수행은 마음 수행의 버팀목이 된다. 몸을 통해 단련된 인내가 마음 수행을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이 둘은 상호 보완적이어서 함께 닦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그릇된 길로 빠지기 쉽다. 현자들이 몸과 마음을 함께 수행하라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이 몸을 지닌다는 것은 수행에 있어 최적의 조건이다. 천상계는 수명이 길고 즐거움이 커서 수행의 동기가 약하고, 지옥은 고통이 너무 크기에 수행할 여지가 없다.
오직 인간만이 고통과 행복을 함께 경험하며 수행의 뜻을 세울 수 있다.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최고의 경지도 인간이기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성자와 현자들이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몸과 마음을 닦으라."고 한 까닭도 같은 이유 일 것이다.
또한 성자들은 종교를 나누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그들은 바른 가르침에만 집중한다. 정상에서 보면 산 아래의 모든 길이 한 점으로 모이듯, 문화와 언어, 종교의 차이는 길의 모양일 뿐 목적지는 같다.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은 인간다움을 넘어, 각 종교가 말하는 신성에 닿아가는 길이다.
수행은 진실을 향한 여행이다.
고통에서 벗어나 참된 삶으로, 가아에서 진아로, 허상에서 실상으로, 에고에서 본성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것은 결국 사랑과 자비로 귀결된다.
그 여행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몸과 마음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