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와 함께 걷다

by 마음농부
빛이 밝아지면 그림자는 사라질 줄 알았다.

마음공부를 통해 마음이 정화되면 내면의 어둠이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숨겨져 있던 그림자가 더 또렷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빛이 커질수록 그림자도 길어진다는 이치. 이때 비로소 도고마성(道高魔盛) "도가 높아질수록 마(魔)도 성해진다는 뜻"의 의미가 몸으로 이해되었다.


흔들림을 멈추기

물에 흙을 넣고 흔들면 흙탕물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흔들리고 복잡할수록 문제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물을 가만히 두면 흙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맑은 물과 침전물이 분리되어 또렷이 보인다.


판단을 내려놓기

명상은 마음을 그런 ‘가만히 둠’의 상태로 이끈다.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판단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 꾸준히 지켜보면 마음은 고요해지고, 그 고요 속에서 내면에 숨어 있던 그림자들이 하나둘 윤곽을 드러낸다.


그림자와 마주보기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마음 정화가 시작된다. 그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인정하고, 지켜보며 왜 그것이 내면에 자리 잡았고 마음을 흔들었는지 알게된다. 실체를 알아차리게 된 그림자는 조용히 연기처럼 흩어진다.

하지만 하나의 그림자가 물러나면, 그 아래 더 깊은 그림자가 뱀이 똬리를 틀고 있던 것처럼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래서 ‘도고마성’이라 하는 것이다. 내 마음의 그릇만큼, 그늘도 드러난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듯한데, 오히려 어두운 면이 더 또렷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하나하나 직면했다. 마음 깊숙이 숨겨 두었던 슬픔,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을 왜곡 없이 인정하고 수용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다시 찾아갔다. 이것이 마음공부를 통한 정화다.


타인을 품기

자신의 마음이 정화되는 만큼, 타인의 아픔도 자연스레 이해되고 품을 수 있게 된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는 마음, 자비심이 자라난다.


청정심 그리고 오늘, 작은 청소

양파를 까듯 그림자가 하나씩 벗겨지다가, 더 이상 정화할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청정한 마음 상태, 청정심(淸淨心)의 자리는 마음공부의 끝이자, 마음의 진실을 비추는 시작이다. 그래서 몸보다 마음공부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사람마다 그림자의 크기도, 업(業)의 결도 다르기에 그 시간을 재단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시작하는 만큼 마음은 가벼워진다는 사실이다. 마음을 방치하지 말고 오늘, 아주 작은 청소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나는 이렇게 속삭인다.



〈그림자와 함께 걷다〉


나는 이제,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림자는 나보다 먼저 길 위에 있었고,
내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언제나 조용히 따라왔다.


한때는 도망치려 했다.
내 안의 빛이 밝아지면
내 안의 그림자는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안의 빛이 밝아질수록
내 안의 그림자도 깊어지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림자와 함께 앉았다.
말 없이,
그저 곁에 머물렀다.


처음엔 낯설었고,
무거웠고,
때로는
다시 끌려갈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림자는
그저 나의 슬픔이었고,
두려움이었고,
버려진 채 남겨진 ‘나’였다.


나는 이제
그림자의 손을 잡고 걷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같은 방향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고요할 때도,
흔들릴 때도,
그림자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안다.
이 그림자가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괜찮다.

함께 걷는 길 위에


나는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씩
자비로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조금씩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간다.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