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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성 Mar 03. 2020

설레임에 관하여

우리는 어른이 돼가면서 설레임이 점점 사라진다, 챗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처럼 반복된 일상 속에서 생기가 점점 사라지고 무료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어린시절 설레임을 추억하며 설레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존 카밧진 박사와 함께 건포도 먹기명상을 실습할 때였다. 한 지도자가 질문을 하였다. "박사님은 전 세계를 다니면서 먹기명상을 진행하시는데  매번 먹는 건포도가 지겹지 않으세요?"


이에 대화여 존 카밧진 박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제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먹은 건포도가 몇만 개는 되겠네요, 하지만 한 번도 지겹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는 같은 건포도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같은  건포도가 있다면 그것은 미라클(기적)입니다. 왜냐하면  생각해보세요, 동일한 땅과 나뭇가지에서 동일한 일조량과 비를 맞고 자란 건포도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존 카밧진 박사의 말처럼 이 세상에 같은 것이 있다면 바로 기적인 것이다. 우리가 건포도 맛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건포도를 하나하나 알아차림 하면서 먹는 게 아닌 건포도란 개념을 먹기 때문에 맛이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딸기는 어떤 맛, 사과는 어떤 맛, 포도는 어떤 맛이라고 개념을 정해놓고 그다음부터는 딸기 개개의 맛이 아닌 딸기의 개념적인 맛을 먹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오감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오감을 사용하지 않고 초기에 세팅된 정보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실제 세계가 아닌 가상세계에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아기들을 보면 오감을 다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하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까르르 웃으면서 즐거워한다. 하지만 점점 성장해가면서 오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세상을 언어와 개념으로 배우고 체험하면서 설레임은 점점 사라지고 반복된 일상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설레임이 사라진 이유는 아이들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닌, 판단하고 분별하는 개념적인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릴적 친구들이 오래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살면서 유일하게 경쟁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순수하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인정해준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잘났거나 못났거나 상관없이 만나면 그 시절 코 찌질이 동심으로 바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로 사는 차가운 삶이 아닌 가슴으로 사는 따뜻한 삶이 설레이는 삶이 아닐까?


아이처럼 모든 것에 가슴을 열고 오감을 머리가 아닌 있는 그대로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면 잠깐 멈춰서 보이는 풍경에만, 아름다운 음악소리나 새소리가 들린다면 들리는 소리에만, 향기로운 냄새가 코속으로 들어오면 냄새에만, 혀끝에 맛있는 맛이 느껴지면 미각에만, 사랑하는 사람의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지면 촉감에만 머물 수 있다면 당신은 설레이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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