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MH(루이비통) 주식을 좋게 보지 않는 이유

럭셔리 주식은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다.

by 삼십대김씨

과시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수만 년 전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도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만 나는 조개껍데기나, 그 지역에서 나지 않는 특이한 원석으로 만든 장신구가 발견된다.


나는 이런 귀한 걸 소유할 만큼 능력이 있다는 걸 과시하는 신호로서 작용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봐도 "능력"은 이성에게 어필하기에 좋은 수단이고,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은 과시인 것이다.


비교적 최근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교통과 통신, 과학기술이 발전했고 지구의 반대편에만 있는 조개껍질 같은 것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구 전체로 삶의 반경이 넓어지면서 경제규모가 엄청나게 커졌고, 화폐가 늘어났다.


화폐경제로 돌아가는 현대시대에는 경제력이 능력의 가장 흔한 척도가 되었다. 능력을 시각적으로 과시하는 수단은 걸치고 있는 것, 차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러다 보니 걸치는 것들이 비싸지는 명품시대가 왔다.


한편 1971년 닉슨쇼크로 금태환제도가 폐지되고 달러무한풀기 시대에 돌입했다. 빚이 무한정으로 발행되면서 명품이 경제적 능력을 보여줄 수단이라고 하기에 애매해졌다.


무엇보다 주변에 많이 보인다. 샤넬이나, 버버리, 루이비통을 젊은 여성들이 많이 매고 다닌다. 롤렉스를 20대 젊은 청년들이 차고 다닌다. 벤츠, bmw, 포르쉐 같은 차도 길거리에 자주 보인다.


브랜드가 길거리에 많이 보인다는 건 더 많이 팔렸다는 것인데 어째서인지 최대명품회사인 LVMH나 벤츠, 포르쉐 같은 회사의 주가는 계속 어렵다.


왜 그럴까?


명품 기업들은 브랜드의 '과시적 가치'도 지켜야 하고 현실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선' 대중에게 많이 팔기도 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시원하게도 해야 하고 따뜻하게도 해야 한다와 비슷한 말이다. 과시욕을 부추겨 물건을 비싼 가격에 판매했는데 역설적으로 판매하면 할수록 그 물건이 '자랑거리'로서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랑거리가 되려면 그 브랜드가 비싼 건지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 AMG는 자랑거리는 아니다. 벤츠면 벤츠지 AMG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샤넬 마크를 알아야 샤넬 가방을 매고 갔을 때 효과가 있다. 르메르 가방을 매고 길거리를 돌아다녀봐야 그게 비싼 건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러면 그 브랜드의 물건이 안팔리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유니클로나 자라, H&M 같은 스파브랜드와 협업을 한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인지도가 높아져야 자랑거리로서의 가치가 유지되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인지도를 위해 고유한 디자인을 저렴한 스파 브랜드에 풀어버린다.


이는 마치 당장 추위를 피하겠다고 아껴둔 빵을 화로에 던져 넣는 격이다. 당장 따뜻해질 순 있겠지만, 내일의 배고픔은 어찌할 것인가?


럭셔리 산업은 지금 그런 모순적인 일들을 하고 있다. 동네 싸구려 미용실에는 '보그 잡지'가 꽂혀 있다.


더구나 유니클로나 H&M 같은 스파브랜드의 품질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특히 유니클로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과 맞물려 거대한 자본으로 엄청난 하이테크 기술을 결합한 저렴한 옷들을 선보이고 있다.


계속해서 LVMH 주식이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의 추이 역시 좋지 않다. 누군가 그랬더랬다.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주식을 사라고...

혁신소재가 개발되고 생산공정이 발전할수록 소비재의 가격은 내려간다. 구조적으로 더 좋은 소재로 만든 옷을 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면티의 소재는 과거에 왕들이 잆었던 옷들보다 좋다.


에르메스의 버킨백은? 파텍필립은?


그러나 애초에 "능력이 돼서" 버킨백을 매거나 노틸러스를 찰 수 있는 사람은 그걸 차지 않아도 된다. 1억이 넘는 시계를 살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능력이 있다는 걸 그의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과시제로서의 효과가 희석된다. 애초에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물건은 큰 의미가 되지 않는다.


명품을 경험하고 자신을 그 명품에 맞추라는 식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순진한 젊은이들에게 그저 허영과 과시욕을 부추기는 것밖에는 안된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명품이나 보면서 낭비할 시간이 없다.


한번 사는 것 제대로된 걸 사서 오래 물려쓰는 것도 멋있지 않나?


내 자식이 나만큼 컸을 때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지도 알 수 없지만, 그때가 되면 기능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나 훨씬 좋은 물건을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합리화를 해서 갖고 싶은 걸 사는 것보단 차라리 지금 아끼고 미래에 유망한 자산을 사서 물려주는 것이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대로 쓰는 물건의 감성?나를 표현하는 수단?


감성도 돈이 있고 나서 있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감성도 없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50년된 롤렉스는 내가 돈이 많은 후에야 가끔 차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돈이 없으면 받자마자 당근행이다. 그리고 롤렉스가 아니더라도 물려줄 수 있는 것들은 많다.


자기과시라는 본능을 내가 입고 있는 것과 차고 있는 것으로 채우는 시대는 저물어간다. 대부분의 소비재는 AI와 로봇혁명으로 생산성이 올라가 가격이 떨어질 것이며, 허영과 과시욕만 있으면 오늘 당장에라도 할부를 긁거나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명품산업은 끝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LVMH 주가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품질로서 굳건한 경쟁력을 갖춘다면 수요가 있다. 브랜드가 품질에 대한 확실한 신호로서 작용하면 소비자로 하여금 탐색비용을 줄여줄 수 있다.


탐색비용이란 더 좋은 물건을 찾기 위한 시간과 노력이다. 최근에 침대를 사려는데, 브랜드가 너무 많아 고민이되었다. 결국 비싼 돈을 주고 시몬스침대의 스테디셀러를 구입했다. 내가 모든 침대를 다 가서 누워보고 만져볼 수 없으니 가격을 많이 지불하더라도 확실한 것을 고르게 되는 것이다. 즉, 확실한 품질을 철저히 유지하면 된다.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물건, 본질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생산성이 폭발하는 시점에 모든 물건이 희소성을 잃는다면 과시욕을 채울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물리적 실체가 있는 물건은 생산성이 올라가면 언제든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운명이다. 따라서 물건을 자기 자신의 자존심에 투영해서 생각하면 안된다. 물리적 실체가 없는 것이 가치가 있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 희소한 것, 대체될 수 없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신념이나 신념을 구체화한 나만의 콘텐츠, 그리고 가족, 신앙, 사랑, 우정, 양심, 관계 같은 것이다.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른 바닷물처럼 물건으로 채우는 과시욕 또한 사고 사고 또 사도 채워지지 않는다.

실체가 없는 것에 집중을 한다면 과시하려 하지 않아도 욕구가 충족된다. 어차피 내가 느끼는 신은, 사랑은, 자존감은, 진실한 관계는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 자체로 이미 희소한 상태이다.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관념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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