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1.
휴가다. 아이들은 학교로, 아내 또한 직장으로.
오롯이 나만의 휴가다.
걸어서 5분 거리인 작은 아이에 비해 대중교통으로 50분이 걸리는 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를 데려다주는 것으로 나의 휴가를 시작했다. 이후의 시간은 나만을 위한 것이다. 멋진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폼나는(이라 쓰고 허세라 읽는다) 소설 – 오늘은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골랐다 – 을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낼 생각에 마음이 설래였다.
지난밤 아내와 함께 오늘 하루의 계획을 나누면서 나는 아내로부터 몇 번이고 확답을 종용받았다. 제발 계획대로 당신만의 시간을 보내라고. 그동안 집안 대청소에, 빨래에, 분리수거에 휴가다운 휴가를 보낸 적이나 있었냐고. 정말로 비싸고 근사한 카페에 가서 맛있는 브런치 먹고 푹 쉬기만 하라고. 말만 들어도 참 좋았다. 여행 또한 그렇지 않은가. 계획할 때가 실제 여행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이다. 게다가, 그처럼 나를 인정해주는 아내가 있으니 말이다.
어느덧 큰아이의 학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며 아이는 말했다. “아빠, 나 5시에 끝나요.” 순간 고민이 교차한다. 일단, 할 일이 있어 못 데리러 간다고 대답하고는 들여보냈다. 돌아오는 길 아내와의 통화. “애가 5시에 데리러 오라는데?” 아내, “걔는 만날 아빠 이용해 먹으려고 해, 그냥 지하철 타고 혼자 오라 그래”.
문득 떠오르는 『어린왕자』 속 사막여우의 말.
“네가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할 거야”.
그렇다. 아이가 5시에 마친다면 나는 4시부터 데리러 갈 준비를 할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5시에 정말로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날 아이는 정말로 행복했다. 간식으로 가져간 아빠표 유기농 햄버거에 그 행복은 두 배가 되었다.
이쯤에서 내 브런치가 궁금하지 않은가?
아침 설거지랑 빨래만 돌리고 나오려고 했던 것이 진공청소에 걸레질에 유리창, 방충망 청소에 욕실 청소까지. 왜 나는 한번 시작하면 끊지 못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