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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근 Mar 04. 2017

화분,

적당함이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일지 몰라.


저녁 아홉시. CLOSED 팻말이 정면으로 걸려있는 꽃집 문을 슬쩍 밀었다. 분주하던 사장님의 두 손이 잠깐 멈칫, 눈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주말에 이사를 왔어요. 화분을 좀 사려고요. 환영해요. 천천히 골라보세요. 마감 시간이 지난 꽃집의 향기는 보다 더 차분한 느낌이었다.


물은 너무 자주 주지 않아도 되고, 햇볕을 너무 많이 받지 않아도 되는, 신경을 과하게 쓰지 않되 가격은 비싸지 않으면서, 언제나 적당히 예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화분을 두 개 골랐다. 혹여나 깨질까 몸에 꼭 품어 들고 총총걸음으로 집에 오는데 마음 한 쪽이 괜스레 꽉 막힌 느낌으로 퍽 부끄러웠다.


언젠가부터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어느 중간 즈음과 이도 저도 아니어서 어느 것에도 알맞지 않은 애매함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 되었고, 맘대로 정한 적당함에 취해 열심과 책임을 잃어버린 그간의 일과 관계들을 애써 좋은 유연함이라 믿고 지내온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꽂이 위에 놓인, 적당함으로 간택된 두 개의 화분을 마주했다. 내가 나를 타이르듯이, 또 네가 나를 설득하듯이 툭툭 말을 건넸다. 적당함이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일지 몰라. 이젠 정말 최선을 다 해볼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 부탁해. 친구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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