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면 이사가 떠오른다. 외교관인 남편과 결혼하며 일상이 여행으로 바뀌었다. 인생은 나그네란 문구가 관념이 아닌 현실이 되었고 국외자로 사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를 따라다닌 나라들은 중국어와 독일어, 일어를 했다. 그것은 내가 소통하지 못하는 언어였고 그렇기에 발령지에 도착하면 완전히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한국 가고 싶어! 향수병에 걸린 어느 날, 남편을 졸랐다. 그러나 그는 비행기 표 대신 언어학원을 등록해 줬다. 거리의 방황을 멈추고 등원을 시작했다. 세계 각지서 온 젊은이들과 뿨풔뭐퍼~ 중국어 발음부터 익혔다. 일자 무식쟁이가 글을 깨치니 돌연 일상이 즐거워졌다. 거리 한가운데 서서 눈을 들어 어지럽게 펼쳐진 한자 간판들을 하나씩 입 속으로 발음해 본다.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은 길을 찾는 것, 어제까진 소음이었는데 오늘 글들이 살아나 가락이 된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독백을 시작한다. 난 누구고 어디서 살아. 중국어는 아직 잘 못해... 한 손에 수세미를 들고 묻지도 않는 질문을 만들며 원맨쇼를 한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도 개의치 않을 줄 알았는데 산다는 것은 존재를 확인받으려는 몸부림, 이방인 사회에서 의미를 찾아 나섰다.
반 편성을 위해 학원서 간단히 신상 문답을 할 때 새로 온 청년은 선생님의 질문에 ‘몰라요’로 일관했다. 나이가 몇이니? 형제자매는 있어? 모를 수가 없는 질문에도 덩치 큰 총각은 새침데기처럼 ‘몰라요’를 반복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냐는 질문에는 뜬금없이 ‘수요일’ 그러나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선생님은 웃음보를 터뜨리기 일보직전인데 난 웃을 수 없었다. 그에게서 나를 보았다. 타향살이의 슬픈 점은 나이 값을 못하는 것. 머릿속에는 살아온 날들이 전수해준 지혜가 가득한데 외국어로는 표현할 길 없어 가장 유치한 단어로 그마저 불완전하게 전하고 돌아설 때, 그때 느끼던 무력감, 자괴감...
다 내려놓고 로마를 가면 로마법을 따르기로 했다. 미안해요 대신 뚜에이부치, 앤슐디궁, 쓰미마셍... 각국 언어로 그들 문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가운데 편견은 조금씩 자취를 감췄다. 중국선 볶아 먹고 유럽선 구워 먹고 일본선 날로 먹고, 조리 기법의 차이도 알고 보면 대단한 이유라서가 아니라 각 지역의 기후와 재료, 풍습에 따른 부수적 산물일 뿐, 기름에 야채를 볶아 먹든, 야채에 기름을 뿌려 먹든, 깔끔하게 야채를 쪄먹든 결국 인간은 구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온갖 방법으로 활용할 뿐이다. 차도(茶道)도 처음엔 긴장해 무슨 철학이라도 공부하듯 진지하게 접근했는데 시키는 대로 요래조래 마셔보니 결국 잎사귀에 우린 물인데 괜히 유난 떤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차 잎을 우려 마시든, 티백 만들어 편히 마시든,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솔질해 거품 내 먹든 결국은 드링킹인데. 그러니 습관은 무서운 거다. 원칙을 정해 고집부리다 보면 그것은 어느새 전통되고 관습 되어 우리를 옭아매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엄마가 되니 여전사가 되어갔다. 결혼하고 맨손으로 떠났던 새댁은 첫 근무지서 컨테이너 가득 짐을 늘이곤 전전긍긍했지만, 곧 발령 철마다 이삿짐센터에 전화해 박스와 뽁뽁이를 선주문하곤 음악을 들으며 면장갑을 끼고 스스로 짐을 꾸렸다. 버리고 싶은 물건과 갖고 싶은 물건을 자신의 구미대로 조절 가능한 공식 기회를 은근히 즐긴 셈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외지인으로 살며 배척당하는 설움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감정에 몰입하지 않아서다. 어느 날 교차로에서 누구 차가 우선인지 몰라 멈칫거리다, 단지 내 차량 앞머리를 조금 먼저 디밀었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자신의 이마를 과장되게 치는 제스처(욕)를 하며 지나갈 때, 기분은 조금 나빴지만 크게 억울하진 않았다. 그저 또 하나 배운다고 넘겼다. 서로 엉키기도 하며 눈치껏 운전하던 한국과는 달리 비엔나의 골목엔 일방과 우선순위가 확실히 정해져 있고 단지 나는 그 약속을 몰랐던 것이다. 사실 오스트리아에서 감탄했던 것은 교통질서였다. 처음 그곳에 도착해서는 성마른 운전자 비위를 맞춰 주려고 한국에서처럼 파란불에도 종종걸음으로 길을 건넜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빨간불에 건너는 보행자조차 정중히 기다려 주었다. 노약자를 태울 때면 비엔나 시내를 누비던 새빨간 슈트라센 반(전차 버스)의 딱딱한 직육면체는 갑자기 물렁물렁 아코디언처럼 변하여 승강장의 높이를 낮춘다. 노인이나 유모차를 가진 사람의 편리를 위해, 아니 고국서는 시간 끈다고 오히려 눈총 받기도 하던 그들을 위해 납작 엎드린 형국이다. 언제나 인간이 최우선! 무심히 서있던 거리에서 무생물이 생물로 변하는 신기함을 목격한 날, 난 38A 동네 노선버스의 붉은 꽁무니가 길 저편 모퉁이로 사라질 때까지 알 수 없는 감동에 겨워 서있었다. 선진국의 칭호는 추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빛을 발했다.
그렇게 인본주의를 체험하며 우리 가족은 매 삼 년 맨발로 뛰었다. 지난 일을 쓰고자 했을 때 달콤하니 노스탤지어 깃든 추억담을 풀어놓지 못한 것도 애당초 발뒤꿈치 들고 조금이라도 더 세상을 보려 했던 탓에 주어진 시간을 노곤히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달렸다. 잘하지도 못하는 달리기를 계속하였다. 그래서 무엇을 손에 쥐었나? 아직 난 모른다. 많은 게 구겨지고 엉킨 체다. 용량 이상의 것을 접하고 쑤셔 넣기 바빴기에 지난 경험들은 메모리 되었을 뿐 그에 따르는 정서는 실종되었다. 음미하며 살아야 했는데 공부하듯 살아서 감흥보다 교훈이 축적되었다. 구령하며 울린 휘슬에 열심히 따라와 준 아이들, 어느 나라를 가건 세팅된 3년의 모래시계를 의식한 삶은 보람도 많았지만 아픔도 있었을 테지. 모든 정직한 완성은 숙성을 필요로 한다. 긴장하여 얼기설기 짠 스웨터를 이제야 무릎에 펼친다. 숨 가쁘게 달리느라 보았어도 놓친, 혹은 잊어버린 기억들을 다시금 되살려 성성한 스웨터에 곱게 아플리케 해볼 생각이다. 단추도 고르고 제대로 모양 잡아 포근히 몸에 걸치는 날, 그 날은 내 나그네 인생이 별 되어 반짝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