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나와 국제학교

by 샬롬




맏딸이 중국으로 전학 가던 때가 떠오른다. 한국서 초등학교 이학년 일 학기를 마치고 북경에 가니 학제가 달라 삼 학년으로 들어갔다. 키나 진도는 무리가 없었는데 언어가 문제였다. 아빠를 따라 해외로 나가면 자연스레 영어를 배우려니 느긋한 마음에 조기 영어를 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중국은 문호를 개방하며 현지의 외국인 수는 급격히 증가했고 더불어 북경의 국제학교 숫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입학 경쟁이 치열했다. 미국 시민, 외교관, 지. 상사의 순으로 입학에 차등을 둔, 소위 제일 잘 나간다는 국제 학교의 웨이팅 리스트에 아이 이름을 올린다 해도 영어가 안 되는 핸디캡이 놓였다. 고민을 하다 집에서 가까운 국제학교를 선택했다. 규모가 작아 교육에 극성인 학부모들 눈에는 별로 내키지 않을, 그러나 저학년인 딸에겐 한국인이 없어 영어를 익히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학교가 작았던 만큼 별다른 부대시설이 없었다. 그렇다고 평이한 수업만을 한 것은 아니다. 체육 시간엔 근처 강당을 빌려 다양한 운동을 했고 수영은 국제 수준의 수영장으로 이동해 수영 기술뿐 아니라 팀을 나누어 수구 시합도 펼쳤다. 한국서 수영 레슨을 하다 귀에 물이 들어가 청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로 수영을 단념했던 아이는 발도 닿지 않는 깊은 물에서 서바이벌 헤엄을 칠 뿐 아니라 남녀 구별 없이 격렬한 게임을 벌여야 했으니 얼마나 긴장됐을까? 체육 수업을 마친 날은 엄마, 힘들어~ 하면서도 외국 친구들과의 경쟁은 체력임을 깨달았는지 밥도 더 잘 먹었고 거친 경기를 해내는 자신이 내심 뿌듯한 듯했다. 키가 190센티미터도 넘어 보이는 건장한 체육교사 외에도 이동 수업에는 안전을 위해 언제나 보조 선생님이 더해졌다.



입학 첫 날을 기억한다. 등교를 앞두고 딸은 자신을 영어로 소개하는 연습을 했었다. 영어 가정교사로부터 상류사회 여자 영어 이름도 추천받아둔 받아둔 터였다. 영어 수업에 뛰어드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뒤늦게야 위기감을 느끼고 부랴부랴 구한 선생님이었다. 당시 인민폐 30원이면 (한국 돈 3000원 정도) 달고 실한 복숭아를 비닐봉지가 찢어지도록 양손에 받아 쥐던 시절이었지만 고기와 유제품만은 출처와 보관이 분명한 매장에서 사야 했기에 값비싼 외국인 전용 슈퍼를 들르곤 했다. 그런 어느 날 계산을 위해 줄을 섰는데 바로 앞에서 고급스러운 브리티시 악센트가 들려왔다. 말은 유창하지 못해도 영어를 감 잡는 정도는 할 수 있었기에 다짜고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절박한 아이 사정을 말하곤 영어 가정교사가 되어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런던서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 북경서 직장을 잡은 중국계 영국 여성이었는데 중국어는 하지 못했다. 우리처럼 북경 온 지 얼마 안 되었고 미혼이라 날이 어두워지면 골목 걷기가 걱정이라며 제의를 망설이기에 수업 후 귀가 길은 운전해 준다는 조건으로 승낙을 받아냈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모성애다. 선생님은 정규 직업이 있었기에 레슨은 저녁녘에 이루어졌다. 수업이 끝나면 밖은 어둑해졌고 난 가로등 없는 북경의 낯선 길을 영어를 하며 운전해야 했으니 내 생애 가장 산만한 시간이었다. 대로를 벗어나면 차선도 없고, 있다 해도 거의 지켜지지 않는... 쉼 없이 끼여 드는 자전거 떼와 뒤섞여 정신 바짝 차리고 운전하는 것만도 벅찬데 밀폐된 공간에서 서먹하지 않도록 미지의 여성과 교양 영어를 자연스럽게 엮어가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그때의 내 심정을 스케치하자면 가슴에 큰 북을 매달고 발과 연결된 북채로는 둥둥 북을 울리며 양손으로는 심벌즈를 챙챙~ 이것만으로도 온몸은 초긴장인데 입으로는 광고 멘트까지.



아이 입학을 앞두고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영어 이름을 지어주려 했다. 결혼 전 다녔던 외국계 회사는 수지나 제니 같은 업무용 영어 이름을 권장했었다. 나도 엉겁결에 린다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종종 일하며 린다는 미국서 어떤 이름일지 궁금했었다. 그래서 국제학교에 아이를 보내며 내 딸은 메리나 헬렌 같은 흔한 이름 대신 분위기 있는 이름을 골라주고 싶었다. 그러나 영어권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는 어느 이름이 말자와 복순이고 어떤 이름이 귀한 이미지인지 그 미묘한 뉘앙스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중인 가정교사가 갑자기 거실로 나오며 "Mrs. #~ Where is the loo?" 독특한 영국식 발음으로 질문을 했는데 '루'란 단어가 생소했던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루가 뭐죠? 되물으니 화장실인데 교양 있는 영국인은 토일렛이나 레스트룸 같은 직설적 단어보다 루(loo)를 사용하고, 아니면 ‘어디서 손 씻죠?’ 에둘러 표현한다고 했다. 어머나! 선생님에 대한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고 내친김에 영국서 통용되는 괜찮은 여자 이름에 대해 조언을 구했던 것이다. 너무 길거나 짧은 음절은 피하고 우리는 최종 후보에 남은 몇 개를 발음해 보다 '멀리나'가 채택되었다. ‘마리아’가 아닌 ‘머얼리나’ 말이다.



등교 첫날 안나란 이름의 여교장은 붉은빛이 강하게 도는 부드러운 밤색 머리칼과 그보다 더 부드러운 미소를 큰 눈에 띄고서 우리를 맞이했다. 학부모인 내게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아이를 향해 정식으로 악수를 청하며 "왓츠 유어 네임?(이름이 뭐지?)" 하셨는데 연습했던 탓일까? 아이는 주저 없이 손을 마주 잡으며 "마이 네임 이즈 멀리나~(제 이름은 멀리나예요)" 하였다. 짧지만 막힘없이 진행되는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순간, 선생님은 눈가에 흥미로움을 더하시며 "왓츠 유어 오리지널 네임?(너의 고유한 이름이 뭐예요?)“ 다시 물으셨는데, 이름을 대고 나이를 말하고, 상투적인 영어를 준비했던 아이는 예기치 않은 질문에 머뭇거려야 했다. 네 한국 이름을 말하렴, 재빨리 옆에서 속삭이니 "My name is Dayea!" 아이는 자신의 원래 이름을 밝혔다. "I truly appreciate your original name!(난 네 본래 이름이 정말 좋구나!)" 선생님은 격려가 담뿍 담긴 표정으로 아이 손을 꽉 잡아 주셨다.



그렇게 아이는 멀리나와 반나절 만에 작별했다. 세월이 흐르고 흐른 후 하고 많은 영어 이름 중 왜 유독 멀리나에 끌렸었는지 그 이유를 잊었고 우리는 스스로가 우스꽝스러웠다. 만일 등교 첫날 사려 깊은 교장 선생님께서 부드럽고 예리하게 지적해주지 않았더라면 아이는 영국 상류층 여성이 선호하는 이름일 거란 기대 속에 자신을 국적 불분명한 경계에 둘 번한 것이다. 인생의 마디마디에서 누구를 만나는 가는 너무도 중요하다. 경험 많고 지혜로운 선생님 덕분에 큰 딸은 아름다운 한국 이름으로 첫 국제 학교생활을 시작했고, 어눌하지만 그렇기에 정확히 발음해 보려 자꾸자꾸 이름을 물어오는 이국 친구들에게 ‘다 예쁘다’는 순 한글의 자기 이름을, 그 소리와 뜻을 분명히 설명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곱게 키워나갈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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