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순풍

by 샬롬




그는 잘생겼다 보통 키, 보통 체격, 인상 좋은 얼굴에 반짝이는 두 눈, 눈썹은 까맣고 혈색은 온화했다. 단정한 용모라 만일 한국식 이름을 붙인다면 철수나 영식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삽화 소년처럼 건강하고 성실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그는 장사꾼! 고가일 꺼라 평소엔 살 생각도 못하던 중국 카펫을 지인 댁서 보고 와우~ 했을 때 그녀는 내게 청년의 전화번호를 건넸다. "집으로 실어다 줘. 직접 보고 고르면 돼"



자주 해외로 이사 다니며 늘 나그네였기에 가구도 무엇도 제대로 갖추기 어려웠다. 근데 카펫은 다르지 않은가? 착착 접었다가 쓸쓸한 바닥에 좍 펼치면 언제라도 우아한 집을 만들 수 있다. 당시 세 들어 살던 집은 긴 장방형의 공간에 식당 겸 거실이 통으로 연결되어 제법 넓고 반듯한 바닥을 갖추었다. 게다가 벽은 도배지 없이 모두 흰 칠을 해놓아 몇 개 그림을 걸긴 했지만 쓸쓸하니 단조로웠다. "우에이~(여보세요) 저희 집으로 와주세요."



물건을 가져온 날을 기억한다. 동료랑 함께였는데 현관을 들락거리며 여러 장의 카펫을 준비해 왔다. 내 딴엔 큰돈 쓰는 날이고 카펫엔 문외한이라 친구가 샀다는 가격과 사이즈를 기억하며 긴장해서 흥정을 시작했다. 가게가 아닌 내 집서의 쇼핑이라니... 카펫을 들고 내며 땀이 송골송골, 신을 벗고 들어와 양말 바람으로 손님 맘에 들 도안과 색을 찾아주기 위해 군소리 없이 카펫을 펼쳤다 접었다, 난 카펫이 그리 무거운지도 그때 알았다. 내가 손님인지 그들이 손님인지, 음료를 접대하며 희망하던 가격에 기분 좋게 결정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중국서의 쇼핑이다. 번번이 큰돈을 깎아 주는데 나도 만족하고 상인도 만족한다. 중국을 떠나기 전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다. "더 사고 싶어요. 귀국합니다."



이사 준비로 바빴었나? 상인과 약속한 시간을 살짝 넘기며 집에 도착했을 때 살던 단지로 들어가는 정문 앞에 카펫 청년이 리어카를 옆에 두고 서 있었다. 까다로운 보안 경비병은 집주인과 통화가 안 되니 잡상인이라 여기고 출입을 막았다. 당시 1990년대 중반, 아무리 중국이 오지 취급을 받더라도 거리엔 차가 넘치던 시대였다. 그런데 손수레라니! 과일이나 야채를 실어 나를 허름한 수레 안에는 알록달록 카펫들이 실려 있었다. 집으로 들어와 바닥에 카펫을 펼치고 매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나 머리로는 딴생각, 그게 그거인 도안에 거기서 거기인 색깔, 당최 모르겠는 것은 가격이었다. 상인이 웃음기를 거둘 최저가로 사고 싶은 주부의 마음, 방금 전 먼지 날리는 거리에서 그가 날 기다렸다는 사실은 벌써 잊었다.



마음을 정하고 청년에게 물었다. "얼마예요?" 잠시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의 맑은 눈 너머 어떤 생각이 담겼는지 난 읽어내지 못했다. 그저 우위를 선점하고픈 조급함만 있었다. "얼마면 사겠는가? 오늘 난 상인으로 오지 않았다. 친구가 고국으로 떠나는데 선물로 주고 싶다. 원하는 값을 불러라!"


당신 날 시험하는가? 순수한 얼굴, 고달픈 삶의 청년이 내게 무한자유를 준다. 원하는 물건을 고른 후 주고 싶은 만큼 돈을 내면 된단다. 처음 중국어를 익히며 내가 받은 중국어의 인상은 상대를 코너에 몰아가는 느낌, 무슨 말을 하던 문장 끝에선 꼭 가부(可否)를 묻는다. 하오 부하오(好不好, 좋아? 싫어?), 슈 부슈(是不是, 그래? 안 그래?), 커 부 커이(可不可, 할래? 안 할래?)... 생각할 여지없이 자신의 의사를 밝히라고 즉석에서 종용한다. 그런데 갑자기 주관식 문제라니,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생각을 마쳐야 한다. 삼 년의 세월 동안 거리서 다져진 눈치와 배짱, 속모를 중국인을 의뭉하다 말고 나의 단순함은 단수 낮음일 뿐, 현지에 사는 동안 속 깊은 중국인을 배워보자는 것이 솔직한 나의 바람이었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상인이 주저할 야심 찬 가격을 대담하게 던졌다. 그의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내가 너무 심했나, 얼마를 양보하지? 머릿속이 복잡한데, 그 역시 시선을 비끼지 않고 내 눈을 빠끔히 들여다보다 불현듯 중국인 특유의 한 주먹에 다른 손을 덮어 쥐곤 자신의 가슴께에서 양손을 앞뒤로 흔들며 "이루슌훵(一路顺风, 평안히 가십시오)" 고별인사를 건넨다. 세상에, 단 한 번의 줄다리기도 없이 정든 친구 떠나보내듯 따뜻한 축복을 하며 정성껏 카펫을 접어 내게로 건넬 때 휘영청 넓은 거실은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의 정으로 가득 찼다.



당신 너무 멋져요. 그동안 정찰제 없는 중국에 살며 얼마를 바가지 썼다 해도 상관 않겠어요. 궁극엔 고개 끄덕이며 배우곤 하던 중국 최고의 협상이군요. 분명 일정 값을 지불했는데 거저 받은 선물인양 무언가에 들떠서 나 역시 무협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그를 흉내 내 두 주먹을 모아 쥐곤 문간에서 "셰셰(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번져 나는 감동을 여과 없이 표현했다. 그리곤 그가 건네준 명함을 소중히 간직했다. 언젠가 북경을 방문하는 날 그가 차린 점포에서 반가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혹 마법의 카펫을 탄 알라딘처럼 거부가 되어 있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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