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언니로부터 카톡이 왔다. 지금 비엔나인데 너무 좋아 내 생각이 났다고, 아~ 비엔나! 정말 좋았지. 우리 가족은 2000년 여름 비엔나로 떠났다. 남편이 유럽 발령을 받고서 내게 비엔나 괜찮냐고 물었을 때 아뉘 이 사람, 넘흐 좋다규~
대학교 때 외국서 살다온 친구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은 신기하게도 그들이 머물렀던 땅을 반영했다. 미국서 온 친구들은 대체로 검소했다. 옷도 전형적인 학생 차림에 외모에 그다지 공들이지 않았다. 머리를 길게 기르거나 단발, 쇼트커트, 종류만 달랐지 파마나 헤어드라이어를 이용하지 않은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만일 그들이 복도서 영어만 쓰지 않는다면 한국 토종 친구들보다 더 소박할 지경이었다. 일본서 온 친구들은 머리 스타일이 돋보였는데 정성껏 쉐기 커트를 하고 복장 어딘가 꾸민 티가 있었다. 나이보다 앳된 멋을 부렸는데 얼굴엔 의외로 화장을 했다. 유럽은 어땠을까? 사실 딱히 유럽으로 묶을 만한 무리는 없었다. 우리들이 필수과목인 교양 국어를 들을 때 그들끼리는 재외국민 국어를 들어야 했는데 우리들이 외국인 국어라 부르던 그 수업이 끝난 후 복도 여기저기에서는 자신들의 편한 언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도드라졌다. 그렇게 실용적인 미국파와 아기자기 일본파가 있구나 할 때, 겨울이었나 보다. 단순한 검은 모직 롱 코트를 입고 화장 안 한 얼굴에 세련된 단발머리의 학생이 눈에 뜨였다. 멋을 부린 듯 안 부린 듯 고상한 분위기였다. 누구지? 유럽서 살다 왔단다. 그때 우리는 뭘 입고 있었나? 롱 코트는 번거롭고 나이 들어 보이고, 따뜻하고 활동 편한 파카 스타일을 선호했는데 교정서 겨울 차림의 정석을 보여준 그녀 모습은 너무도 단아해 뇌리에 콕 박혔었다.
유우~럽! 그러니까 유럽행에 열광했던 이유는 나이들은 나는 차치하고 아이들에게 격조 있는 삶을, 그들의 사고와 행동 어딘가에 시크한 무엇을 첨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아이들이 너무 어려 아무것도 자각 못할 때가 아니고, 이미 성년 되어 부모 품을 떠나버린 시기도 아닌, 스스로 걷고 뛰며 감수성이 오롯이 살아있는 청소년기를 유럽서 맞게 된다니 정말 기뻤다. 이제 우리는 눈과 귀와 마음을 활짝 열고 유럽을 흡수하기로 한다. 쨘 쨔자잔~
그러나 삶은 일상이다. 아이들은 학교로 가고 나에게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나날이 시작됐다. 삼 년을 살 거니까 밤까지 거리를 쏘다닐 필요는 없다. 시간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주어졌으니 침착히 즐기면 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리에 누우면 온 동네가 고요했다. 우리는 살기 좋은 주거지역에 집을 얻었는데 그래서인지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거의 없었다. 골목의 가로등이 없었나 싶을 정도로 밤 되면 완전히 깜깜해져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으스스 무서울 정도였다. 그동안 수선스러움에 익숙했던 거다. 집은 창이 많아 좋았는데 그래서인지 실내가 노출되는 감도 있었다. 평소 아름다운 헝겊을 좋아해 넉넉히 갖고 있던 얇은 감들을 적당히 주름잡아 때운 커튼만으로는 어쩐지 안전치 못했던 느낌, 그렇게 비엔나의 겨울은 칠흑 같았다. 참 비엔나서 집을 구할 때 부동산에서 제일 처음 보여줬던 집은 옆이 공동묘지였다. 근처가 아니라 바로 옆집! 도시가 작아 옛 부터 동네와 묘지가 어우러져 왔다고, 그래서 비에니즈는 그곳을 특별히 무서운 곳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부동산 여자는 설명을 덧붙였지만 난 어이가 없었다. 집 내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먼저 창밖을 휘둘러 본 것은 다행이었다. 우리는 집 볼 생각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꺼리는 집을 성사시키면 리얼터에게 더 많은 사례가 돌아간다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골라 들어온 집은 어디가 좋았나? 메인 스트리트에서 빨간 전차를 내려 아주 완만한 경사를 오르는데 골목이, 골목이라기엔 작은 거리라 표현해도 좋을 2차선의 길은 넓고 반듯했다. 방과 후 딸들끼리 걷더라도 환해서 무섭지 않을. 그리고 좌우의 집들은 하나같이 예뻤다. 집까지 들어오는 길이 200미터는 되려나? 처음엔 자동차로 슝 달려 잘 몰랐는데 나중에 혼자 걸어보니 꽤 긴 거리였다. 그런데 중간쯤에 나무 벤치가 놓인 작은 쉼터가 있었다. 특별히 정성을 기울였기보다는 큰 나무 몇 그루에 야생화와 갈대 비슷한 풀들이 적당히 어우러져 약간 황량한 듯, 그렇기에 더 자연다웠던 공간, 걷기 지루하다 싶으면 그곳에 잠시 앉아 바람에 머리카락 날리며 동네 관찰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이윽고 우리 집이 보일 때 그 창문 넉넉한 연노랑 벽과 놀랍게도 연보라, 내 나라 꽃 무궁화가 피어있던 아담한 카키색 담장은 당장에 사운드 오브 뮤직의 아이들이라도 뛰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무덤에 데려갔던 여인이 이 동네를 안내했을 때 난 그녀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져 설마 이 집은 아니겠지? 가슴만 콩닥거렸는데 어느새 그녀는 고객 취향을 파악했나 보다. 방도 마루도 널찍하고 특히 부엌 옆 둥근 곡선의 창문으로 밝은 해가 듬뿍 쏟아져 들어와 그 귀여운 코너에 하얀 나무 식탁을 놓고는 블랙퍼스트 룸이라 좋아했던, 조그만 하늘색 라디오를 창가에 올려놓고 클래식 FM에 주파수를 맞추고는 묵직한 정통 고전 음악 사이사이 내레이터의 독어 멘트는 또 얼마나 이국적 정취를 더했던가? 말은 못 알아 들었지만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식의 명언을 소개하는 것 같던 지적인 아나운서의 톤 낮은 목소리, 그러던 어느 날 '헤르만 헤쎄' 그 발음 하나 인지해 내곤 혼자서 막 흐뭇해했던, 그런 서정을 제공한 집이었다.
살면서 가장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집 위쪽의 성당이다. 실제로 성당을 자주 가진 않았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은은한 종소리가 울렸다. 스피커를 통하지 않은 경건한 종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았다. 동네를 동네답게 하는, 오늘 하루가 또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삶을 점검케 하는 은밀한 깨우침이 그 속에 있었다. 일상을 감사하게 말이다. 교회는 아름답고 사이즈도 알맞았던지 토요일엔 결혼식이 자주 열렸다. 현지인들에게 인기 있는 성당이었다. 어느 날 바삐 집에서 일하고 있는데 너무도 멋진 브라스 밴드 연주가 들렸다. 웬만하면 무시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려는데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쩌렁쩌렁, 지나치게 큰 소리에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해져 근원지를 찾아 창가로 달려가니, 따란~ 길 건너 집 대문이 활짝 열려져 있고 어딘가 특별 복장을 한 남자 열댓이 금관악기를 들고 연주하며 서있는 거다. 그 집의 누군가가 동네 성당서 결혼식을 하고 웨딩을 빛낼 어너(honor) 밴드로서 거리서 리허설 중이었다. 클래식하면 한국서는 블랙으로 차려입은 다소 도도한 여성이 떠오르는데, 밖에 서있는 사람들은 둥글둥글 중년 아저씨들, 각자의 직업으로 땀 흘리다 음악이 좋아 입문해 취미 이상의 실력을 연마한 뮤직 마니아 같은, 그러나 웅장하고 안정된 소리는 음악 전공자가 아닌 내 귀에도 친목 이상의 실력이었다. 난 그만 금관악기만의 축제 같은 소리에 매료당하고 말았다. 멋지고 부럽고...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비엔나는 음악의 도시 아니던가? 음악 전공자가 수두룩한. 눈만 돌리면 음악 재능자가 도처에 잠복한 도시가 비엔나였다. 어쩌면 저 구수해 보이는 아저씨들 중에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주자라도 끼여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 매주 토요일 오후 나는 잠시 창가에 서있어야 했다. 오늘의 웨딩카는 무엇이고 하객은 얼마일지, 굳이 밖으로 나가 성당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길가에 면한 이층 우리 집 거실에 서면 결혼식 풍경을 추측할 수 있었다. 예식이 끝난 후 신랑 신부를 태울 벤츠나 BMW는 오히려 평범해 인상에 남지 않았고 많은 신선한 아이디어들을 보았다. 날이 좋으면 오픈카가 대기했고 흰 장갑을 낀 마부가 이끄는 마차도 동원되었다. 나는 보는 내내 미소를 띠며 축복했다. 어쩌면 나도 하객이었을까? 우리 집 바로 앞에 운치 있는 마차를 세우고 입장을 대기하던 고운 신부는 집안일 팽개치고 커튼에 기대 엿보던 나와 눈 마주쳤다. 그녀는 윙크를 보내줬다. 그만 내가 수줍어졌다. 한 무리의 나들이 복장을 한 하객들이 인도를 따라 올라가고, 빤딱빤딱 평소보다 많은 차들이 위로 씽씽 사라지면 얼마 안 있어 성당에선 땡그렁 땅~ 땡그렁 땅~ 경쾌한 종소리가 울린다. 성혼을 알리는 종소리리라. 그러면 또다시 난 창가로 뛰어간다. 임무를 마친 하객들이 그제야 여유를 갖고 동네를 살피며 내려온다. 그리고 의젓한 길 저 꼭대기에 드디어 선두 차량이 등장한다. 신랑 신부를 실은 차다. 그들은 서둘러 출발하지 않는다. 일종의 퍼레이드라 줄을 맞춘다. 차량에도 순서가 있는 듯했다. 꽃과 풍선으로 장식한 화사한 웨딩 카엔 언제나 찌그러진 깡통들이 색줄에 매달려 있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깡통들은 일제히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내며 'Just Married(방금 결혼 했시유)' 기쁜 날을 공표하는 거다. 그 뒤로 하객들 차가 마구 클랙슨을 누르며 뒤따른다. 평화롭던 동네가 화들짝 놀라도록 무절제하게 빵빵거려도 그들의 만행은 모두 용서된다. 복된 결혼식 날, 누구도 시비 걸 마음이 없다. 무의식 중에 나는 줄지어 내려오는 차량들을 세기 시작한다. 그 날의 결혼이 얼마나 성대했는지는 차량 수가 말해준다. 길수록 괜히 기분이 좋았다. 사실 조촐한 결혼식도 의미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거의 매 주말 젊은이들의 그림 같은 새 출발을 지켜보며 그들의 유쾌함이 영원하길 소망하면서 동네 사는 즐거움을 더했더랬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의 행복한 결혼도 함께 그리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