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쓰는 영화 일기
근래에 본 영화들을 두고 당장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기억에서 잊히는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감각하고 싶었다.
서둘러서 장면을 기억하고 묘사해 버렸다가 영화를 보고 내게 진행되려던 변화가 이성적인 순환 고리 안에 갇혀 버릴까 무서웠다. 기억들이 이후의 여러 생각과 뒤섞여서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렸으면, 조금은 모호하게 남아 있었으면 한다.
1. <모호의 숲>
손을 잡고 달리는 일. 풀숲을 헤치고 누군가의 집으로 침입하는 일. 대의를 무시하지 않는 일. 숲의 일은 언제나 동시에 진행되기에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빨리 그리고 함께 살아 있어야 하니까. 사랑해야 하니까 오히려 서둘러 생존을 말하지 못한다. 망설이는 사이에 나타나는 숲의 침식 작용. 생존의 위협일까 아니면 또 다른 목소리를 부르는 지목일까. 숲의 형체 아래 신의 형상으로, 뒤에선 다른 목소리가 존재해 왔다. 그렇기에 무섭지 않았던 것일까? 더 무섭게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눈앞을 바로 보게 하는 목소리가 왜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지. 그럼에도 같은 곳을 본다는 설정은 살아 있음의 조건이 된다. 자연의 시간 속에서 덧없지만, 그래서 더 희망적인 시간이다. 사라지고 마는 시간일 것이라서, 하얀 꿈으로 바래질 꿈이라서 환상적인 것으로 남아버리는, 아마도 붙잡는 형태의 꿈.
2. <리틀 아멜리>
세 살이 된 나를 담기에는 너무 작은 세상. 아니, 그 이전에 이미 내가 보는 크나큰 세상이 있다. 분명히 나는 내 자신이 누구인지 일찍이 감지했지만, 가족들이 정해진 핏줄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것과 달랐다. 그녀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좋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가 왜 화났냐고 하냐면 나를 좋아하지 못해서다. 나를 좋아하게 되면 행복해질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 때문에 아프게 된 모든 것들이 아프다. 나는 그만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졌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정체성을 이뤄버리고 있는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누군가 때문에 말도 없이 떠나갔으니까. 그것도 나 때문에. 나 때문이라고 할 수 없더라도 나에게서 비롯한 파장이 아픔의 형태로 퍼져나갔으니까, 의문을 피할 수 없다. 내 정체성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는 나는 피해 갈 수가 없다. 나를 비라고 호명해 주었던 사랑의 마음은 다시 세상 속 빗물이 되었다. 나 자신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또르르 떨어지고 또 당도할 것. 아마도 계속해서 기억하는 자들의 마음에 비추어 나는 나로서의 나를 바라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