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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과사람 Aug 14. 2019

당신이 행복한 정도를 표시해주세요



반 프리랜서가 된 이후(아직 병원에 풀타임 근무를 하지만), 가장 좋은 점은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까진 병원의 눈치를, 수퍼바이저의 눈치를, 윗년차의 눈치를 봤다면, 이제는 상담소도 직접 운영해보고, 조금은 이상한 찻집도 열어보고, 파트타임 검사도 뛰어볼 수 있게 됐다.



오래전 함께한 인연으로, 그리고 친구의 소개로 지난 토요일 새 연구에 참여하게 됐다. 만성/희귀 난치성 질환을 겪고 있는 환아의 치료 프로그램 효과성에 관한 연구다. 그런데 말이 연구지 내가 하는 일은 그저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사전 사후 설문지를 받아 꼼꼼히 체크하고 코딩하는 일밖에 없다. 대학원에 다닐 때만 해도 아이들을 매주 만났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은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조금은 어색해져 버렸다.



수련생의 신분으로 병원에 있을 때, 희귀 난치성 질환을 겪고 있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항암 치료나 뇌 수술을 받기 전 인지 기능과 정서를 평가할 때 만나거나, 이후 follow up을 하면서 변화는 없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 희귀한 질환이 맞긴 한 건지, 어려서부터 병과 다투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 여린 몸을 휠체어에 기대어 오는 친구들도 많았고, 바짝 깎은 머리를 가리기 위해 모자를 쓰고 오는 친구들도 많았다. 나는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만 싶었다.



조금 전 아이들의 설문지를 코딩하다 보니, 나는 잠시 멈추어 메모장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질문들 중 이런 질문이 있다. "현재 당신이 행복한 정도를 표시해주세요." 1점부터 10점까지 체크하는 10점 리커트 척도다. 아이들은 대체로 8-10점만큼 행복하다고 말했다. 손끝에 힘주어 연필을 잡은 모양새의 필압이었다. 저는 매우 행복한 것이 확실합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 우연히 나는 스스로 행복한가에 대해 질문했다. 행복이란 뭘까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답은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얻어맞았다. 10점만큼 행복하다 말하는 아이들처럼 나도 자신 있게 그만큼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상담을 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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