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원 인터뷰 후기
“신시내티라는 도시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고, 심지어 스펠링도 몰랐어요.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이 도시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신시내티 대학교 유전 상담학 석사과정에 처음 지원했을 때 프로그램 디렉터와의 인터뷰에서 무슨 생각이었는지 이런 말을 지껄였었다. 신시내티에 와본 소감이 어떠하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왜 저렇게 대답했을까. 그냥 도시가 참 예쁘다, 좋다 이러면 될 것을. 누가 서울 들어본 적 없다고, 어디에 있는 도시냐고 물어보면 나도 기분 나쁜데. 거기다가 “쎄울~” 이렇게 발음하는 것 보면 어떻게 하지? 싶은데, 왜 그때 당시의 나는 상황을 바꿔 생각해보지를 못했을까.
어쨌든 저 대답 때문에 첫 해에 떨어진 것은 아니었겠지만, 떨어지고 나서 괜히 저 답을 탓하고 싶었었다. 신시내티에서 지내보니 신시내티 사람들은 신시내티가 동부에 속한 것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다른 주에 사는 사람들은 동부와 중부 사이에 껴서 동부인 척 하는 동네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지역감정인 건가? 미국에서 동부의 이미지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포진해 있고, 사계절이 뚜렷해 바닷가에서 노니는 서부와는 달리 부지런하고, 빠릿빠릿한 사람들이 모여있고, 많은 기업들의 헤드쿼터가 모여 있어 엘리트들이 많은 그런 느낌이다. 물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차이가 있겠지만, 이게 내가 미국에 살면서 느낀 동부의 이미지이다. 그러다 보니 신시내티 사람들은 신시내티가 제법 규모 있는 동부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좋은 것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신시내티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나도 이 입장을 취한다. 동부 시간(EST)을 쓰니 당연히 동부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는데, 첫 해에 지원했을 때였나, 두 번째 해에 지원했을 때였나, 신시내티 공항에 도착했는데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Bette Young이라는 분이 나를 마중 나와 주셨다. 이메일에서 자신을 petite brunette라고 소개하셨는데, 정말 옆 집에 사는 작고 귀여우신 갈색 머리의 멋진 중년 백인 아주머니 느낌이었다. 신시내티 프로그램은 주로 학생들이 인터뷰 보러 오는 지원자들에게 하룻밤 재워주거나 공항 라이드를 해준다거나, 디저트 나잇이라고 해서 인터뷰 전에 서로 인사하는 파티 같은 것을 주최해주는데, 학생들의 시간이 맞지 않자 프로그램 코디네이터께서 직접 나와주신 것이었다. 이러니, 신시내티는 나에게 첫인상부터 따뜻했고 너무나 오고 싶은 도시가 되어 버렸다.
나를 호스팅 해준 학생 집에서 하룻밤 자고 인터뷰를 보러 학교로 향했다. 신시내티 유전 상담학 석사과정은 Cincinnati Children’s Hospital Medical Center (CCHMC) 안에 있는데, 신시내티 어린이병원을 본 나의 첫인상은 연신 “우와!!”를 불러일으켰다. 어린이 병원인데 규모가 어마어마했고, 의대 캠퍼스도 같이 있어 도서관이며 학교 시설도 너무 좋았다. 유전 상담학 석사과정 학생들은 교수님들과 의사 선생님들, 유전상담사들이 오피스로 쓰는 한 건물의 4층에 있었다. 건물을 들어섰을 때 나는 고유의 냄새가 아직도 생생하다.
회의실 같은 강의실에 앉아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한 명씩 돌아가며 8명의 심사위원과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질문이 다 생각나지는 않지만, 자기소개, 나의 장단점, 어려운 상황을 극복했던 경험담, 스트레스를 푸는 나만의 방식, 유전상담사가 되고 싶은 이유 등과 같이 당연히 물어볼 것 같은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입학해서 보니 인터뷰어들이 가장 신경 써서 보는 부분이 이 지원자가 우리 프로그램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선생님/교수님들과 성향이 맞을지, 프로그램 성격에 맞게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등을 봤다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신기한 기준이었다. 소위 제일 스펙이 좋고 잘난 사람을 뽑는다기 보다는 프로그램과 잘 맞는 사람인지를 본다는 것이 신기했다. 물론, 스펙이 좋으면야 당연히 유리하겠지만 반드시 스펙만으로 뽑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인터뷰를 함께 봤던 지원자들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 가지 확실히 기억에 남은 것은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웃길 줄 알아야 하는구나였다. Ice-breaking 시간이 있었는데, 서로 자기소개를 하면서 본인에 대한 fun fact를 하나씩 말하라는 것이었다.
끄악.
나에 대해 재밌는 점?
그게 뭔데?
나 그렇게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라...
어쩌지?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근데 그 이후로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만 가면 계속 fun fact를 얘기해야 되는 거다... 휴우... 미국에 살려면 재밌는 사람이어야 하는 건가!!
진짜 다들 말을 어쩜 그리 잘하는지...
나는 그때 이야기를 쥐어짜서 한 말이 "아빠 직업 덕분에 지금까지 한국 이외에 총 3개국에서 살아봤다"였다. 말하고 나서도 속으로 그게 뭐야!!! 더 재밌는 말은 없었던 거냐!!!라고 혼자 속으로 소리 질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른 지원자들은 스노클링 하다가 상어밥이 될 뻔한 이야기, 정비공인 아빠를 따라 이것저것 수리하다 보니 웬만한 자동차 수리는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 여행 중 사막에서 조난당한 이야기 등등. 진짜 다들 저런 경험을 하면서 살았다고?? 싶은 이야기들이 수두룩했다. 나도 미국에 살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농담 섞어가며 재미있고 조리 있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들을 되뇌었다. 미국에서 10년 살았는데, 지금도 fun fact 얘기하라는 게 제일 싫은 것을 보면 오래 산다고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나 보다. 그래도 조금은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얘기하는 법은 알게 된 것 같다.
신시내티 프로그램은 총 12명의 학생을 선발하는데, 인터뷰는 3-4배 수로 보는 것 같았다. 지금은 4월 중순쯤에 matching day가 있어서 matching service에 의해 지원자들의 합격 여부가 통보된다고 하던데, 내가 입학하던 2012년에는 발표날로 정해진 날 학교에서 연락이 오는 시스템이었다. 발표날이 되자마자 나는 끊임없이 이메일을 refresh 하면서 기다렸었다. 한국에 있던 나는 언제 연락 올지 몰라 전화기, 노트북 다 켜놓고 밤을 새울 준비를 하며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디렉터로부터 이메일이 왔던 밤 11시 무렵.
Congratulations!
You have been accepted into
the Cincinnati Genetic Counseling Program.
이 문장으로 시작한 이메일을 읽는 순간.
그동안의 맘고생과 드디어 해냈다는 성취감이 물밀듯이 밀려와 눈물이 왈칵 쏟아졌었다.
같이 기다려주시던 부모님은 다음날 일을 가셔야 했기에 먼저 잠자리에 드셨었는데, 깨울까 하다가 그냥 이 기쁨을 잠시만 혼자 누리고 싶은 마음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새벽에 부모님이 일어나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서프라이즈로 말씀드렸었다. 그때 어찌나 울었었는지.
그때는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느라 앞으로 어떤 어려움들이 날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었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합격하면 꽃길이 쫙 펼쳐질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캠퍼스를 거닐던 첫 주.
지금도 생각하면 손끝 발끝까지 온몸이 저릿하게 스산했던 기억을 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