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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랑 Sep 03. 2022

미국에서 친구 사귀기

요즘 MBTI를 해보면 항상 I가 나온다. 학창시절에는 꽤나 외향적이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서 내향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튀는게 싫어서.

그 노력의 결실이랄까, 폐해랄까. 내성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 뭐,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지만, 확실히 새로운 곳에서 적응할 때는 내성적인 사람보다는 외향적인 사람이 조금 더 유리하지 않나 생각한다. 미국에 와서 나는, 나의 내성적인 면모를 깨부수려 매일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학교가 개강하고 첫 주.

내가 공부했던 유전상담학 대학원은 의대캠퍼스에 있어서, 학부생들이 다니는 메인 캠퍼스에는 갈 일이 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월요일, international office에 갈 일이 생겨서 메인 캠퍼스에 갔다. 날씨도 좋고, 꿈에 그리던 곳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한참 들떠 있을 때였다. 한국에 있는 친구와 카톡을 하면서 걷고 있었는데, 뒤에서 싸한 느낌이 들어 돌아보려고 하는 순간!


헙.

?

??

???

으악, 어? 어??

Catch him!


정말 1초도 안되는 순간에 내 손에서 핸드폰이 빠져 나가고, 내 앞에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흑인 남자애가 뛰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해서 소리도 못 질렀다. 정신 차렸을 때쯤엔 그 도둑놈은 이미 저 앞에 도망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책가방에 노트북도 들어 있어서 무거워죽겠는데, 무조건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소리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역부족이었다.

어찌나 빠르던지...

그리고 지나가던 사람들 모두 도와주려는 마음이 1도 없는 것 같았다.

죽을 힘을 다해 뛰고 있는데 학교 경비 아저씨 같은 사람이 있어서 붙들고 도와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배 나온 백인 아저씨.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너무나 여유 있는 모습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가지 말라며 나를 붙잡아 서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같은 편인가? 내가 당한건가?

별 생각이 다 났었다.


그래도 그 아저씨, 지나가던 캠퍼스 경찰을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해줬다. 경찰이 한 번 찾아봐주겠다고는 했지만 이미 찾기 힘들 것이라며 희망을 갖지 말란다. 그리고 절대 쫓아가지 말라고 했다. 총이나 칼을 들고 있을 수도 있고, 지갑이나 노트북을 훔쳐 달아났을 수도 있었고, 나를 헤칠 수도 있었지만, 핸드폰만 들고 달아난 것을 운 좋게 생각하란다.


??????????????

왓????????????


정말 날씨가 찢어지게 좋은 가을 날이었는데, 그 파란 하늘이 노랗게 물드는 순간이었다.

핸드폰만 훔쳐 달아난 것을 운 좋게 생각하라고?

이게 말이야 똥이야...


알고보니 학부 캠퍼스 바로 옆에 중고등학교가 있었는데 거기가 그렇게 좋은 학교는 아니라고 한다. 다운타운은 총기사고도 많이 나는 위험한 지역인데, 그 다운타운과 학교가 꽤나 가깝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데, 핸드폰을 손에 쥐고 주변을 살피지 않고 걸은 내 잘못이라는 투의 말들이 유학생활을 막 시작한 나에게는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아픈 말들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뒤에서 누가 지나가기만 해도 흠칫 놀라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특히 조깅하면서 누가 지나가면 그게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집에 가는 길에 내 가방 그림자에 놀러 주저앉기도 여러번.

의대 캠퍼스는 조금 더 안전한 편이었는데, 거기도 무섭게 느껴지긴 마찬가지였다.

다 무서웠다.


첫 주부터 학교에 대한 이미지도, 신시내티라는 도시에 대한 이미지도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의 진심어린 걱정과 위로 덕분이었던 것 같다. 어떤 친구는 수업이 끝나면 학교 주차장까지 꼭 같이 가주고 틈틈히 잘 있는지 문자로 확인해주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아 역시.

한국이나 미국이나 친구 사귀는 건 크게 다르지 않구나 생각했다. 학기 초반 서로에게 친절하고 살짝씩 간을 보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1학년들은 두 명씩 책상 하나를 셰어하게 되어 있었다. 함께 책상을 쓰게 된 친구가 이렇게 정성스럽게 한국말로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써주고, 베티라는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이렇게 책상을 꾸며주었다.

감동 감동.



하지만.

조금씩 더 친한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룹이 나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그룹 간 알 수 없는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난 중간에 끼었다가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가 흘러 흘러 한 그룹에 정착하게 되었다.

여자들만 12명 모이고 기 싸움이 시작되니 정말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겠다 싶었다.

이렇게 그룹이 정착해가는 과정에서 나처럼 못 끼고 떠돌던 친구들도 있었고, 한 그룹에 정착했다 생각했는데 떠밀려 내쳐진 친구도 있었고, 결국엔 왕따 비슷하게 어느 그룹에도 끼지 못하고 남은 둘이 서로 막 좋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같이 다니게 된 친구도 있었다. 겨우 12명인데, 이 모든 일이 다 가능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미국 고등학생들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딱히 뭔가 서로에게 잘못하지는 않았지만 잘못해서 그룹이 갈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또 신기한건, 다같이 있을 때는 한없이 친절하고 웃음에 관대했다. 그러다 또 그룹끼리 모이면, 그 안에서 다른 그룹을 깎아내리고 행동 하나하나를 평가해내기 시작했다.


물론 나쁜 마음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하나의 문화처럼 느껴졌다. 정말 다른 그룹에 있는 친구가 나쁘다고 생각해서라기보다는, 이 그룹에 껴있고 싶은 마음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사귀어오던 방식이 이랬겠구나 싶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응당 "내 그룹"의 친구들을 사귀려면 해야 하는 행동인 것처럼.


처음에는 어느 그룹에도 끼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이 되었다. 친구 없이 학교 다니는 것도 끔찍했고, 왕따 비슷하게 되는 친구를 보면서 조바심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미국 여자애들이 어떻게 친구를 사귀는지 알게 뭐람.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나에게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공부보다 더 어려웠던 것 같다.


미국인들은 관계에 있어서 얕지만 넓게 관계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길 가다가 눈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하고, 이웃과 small talk를 하며 일상적인 대화들을 굉장히 잘한다. 지나가던 사람들과도 인사하며 농담 주고 받기도 쉽게 한다. 그래서 파티가서도 쉽게 어울리고 놀 수 있는 것 같다. 반면 유럽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하게 지나가다 눈 마주친다고 웃으며 인사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과 시덥지 않은 대화를 하지도 않는다. 관계를 깊지만 좁게 맺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지금 내가 굉장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에서 내가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는 느낌은 그렇다.


학교를 다니면서 모두들 두루두루 얘기도 잘하고 관계도 잘 형성하는 것 같았지만, "내 그룹"이라는 소속감을 갖도록 깊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참 어려웠다. 폭풍 같던 한 학기의 절반을 보내고 나서야 그룹들이 정리가 되었다. 그룹이 나뉘었다고 해서 내가 속하지 않은 그룹의 친구들이 나뻤다는 것은 아니다. 다들 착하고 똑똑하고 마음씨 좋은 친구들이다. 다만,  친구를 사귀는 방식이 이런 것일 뿐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이 공부한 친구들은 나보다 모두 3-4살씩 어렸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온 친구들도 있었고, 1-2년 정도 일하다가 온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학부 때 휴학도 했었고 유학준비가 조금 길었기 때문에 나이가 조금 있는 편이었다. 미국애들이 나이를 많이 따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 혼자 따졌다 ㅎㅎㅎ 역시 한국인!


미국 생활 중 지금까지 제일 후회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학기 초반에 친구 사귀는 것을 힘들어하는 친구를 나 살자고 나몰라라 했던 것이다. 나는 우리 프로그램에서 유일한 유학생이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 이미 달랐고, 나이도 많은 편이었기에 조금 더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었을텐데, 그때는 "다르다"는 것이 무서웠다. 나이가 조금 더 있는 것도 적응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느꼈었다. 같이 대놓고 무시한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때 내가 먼저 말 걸어주고 같이 시간을 보냈다면 내 인생도, 그 친구의 인생도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어쩔  없다"라는 말이  상황에 들어가 있을때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만,  상황에서 나와 시간이 흐르고   보면  노력하지 않으려는 핑계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미국은 다음주 새 학기가 시작된다. 내가 속한 지역의 Parents Facebook Group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밑에 그림). 그 어떤 것도 따돌림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나의 인사 한 번, 미소 한 번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좋은 reminder이다. 


다음주 preschool에 가는 우리 아들. 

엄마처럼 바보같이 후회할 일 만들지 말고, 지혜롭고 친절하게 학교 생활 잘 해나가길 기도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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