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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백수 Jul 10. 2019

<마음 수련을 위한 다섯 가지 도전>

*이 글은 제주도의 저널 <SEAWEED>에 실었던 글을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사춘기를 얌전하게 보낸 것도 아니면서, 또 방황의 시기가 왔다. 사실 성인이 되고 나서 1년 이상 다닌 직장이 없다. 프로젝트성으로 진행한 일이거나 계약이 만료되어 어쩔 수 없이 퇴사한 경우도 있었지만, 내가 먼저 퇴사결정을 내렸을 때가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일이 괴롭히거나 사람이 괴롭히거나 또는 그냥 나랑 안 맞거나. 도중에 포기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뭘 하든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작년에 고향에서 감사한 분들과 일하며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일로 풀었다’며 잠시 기뻐했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온 나는 똑같은 사람이었다.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하고 있다. 작년부터 스스로 나름의 ‘마음 수련’ 방법을 찾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 보고 있는데, 그 이야기들을 나열해보고자 한다. 출처가 불명확한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 중 한 분에게라도 도움에 되었으면 좋겠다.


‘괜찮다’고 격려해주는 책 읽기

작년, 일이 너무나 힘들었을 때 나를 다독여주는 책에 빠져 살았다. 백세희 작가의 에세이인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을 가장 공감하며 읽었다. 내가 정신과 의사와 직접 상담을 받는 느낌이었다. 특히 나를 갉아먹는 ‘자기검열’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줄었다. 도대체 작가의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는 읽으며 웃기도 하다가 마지막 부분엔 엉엉 울기도 했던 책이었다. 단순히 자신의 직장생활을 비웃는 툰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뼈가 있다. 이 책은 특히 나의 기분이 어떤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히기 때문에 가까이 두고 자주 읽고 있다. 그 외 정신과 치료를 재미있게 풀어낸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와 <인더풀>도 재미있게 읽었다. 이러한 종류의 책들을 읽으며 나에게 무조건 ‘괜찮다’고 해주는 이야기를 접하는 것도 좋지만, 결국 극복해야 하는 것도 나 자신이기에 실질적인 해결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아픔을 객관화하기

<공중그네>의 한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선단 공포증을 앓던 야쿠자 남성이 다른 사람의 공포증을 보자마자 그것이 나아진 것이다. 어떻게 보면 허무함을 느낀 것에 가까울 수도 있는데, 자신의 공포증을 ‘객관화’한 것이다. 얼마 전 팟캐스트의 <지.대.넓.얕.>에서 일레인. N. 아론의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에피소드를 들었다. 세상에는 민감한 사람이 많으며,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상처를 많이 받지만 민감함을 ‘고쳐야 하는 질환’이라는 사회적 통념에 휩쓸리지 않고 장점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방송의 내용이 너무나 공감되어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고 읽었다. 스스로 민감한 사람임을 인정하자 나의 성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직까지 이 성격의 장점은 못 찾았지만 ‘네가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질문에 발끈하진 않게 되었다.


다양한 경험 수집하기

다양한 경험을 수집하는 행위도 하나의 스트레스에 몰입하거나 상황이 끝난 이후 스트레스를 상기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신제품을 맛보거나 새로운 맛집을 찾는 등 새로운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은 주변에 많았다. 궁금한 주제에 대해 강의를 들으러 가기도 했다. 세상은 넓고, 잠깐의 시간만 내면 들을 수 있는 일회성 강의가 너무나 많았다. 강의의 수준은 천차만별이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즐기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국공립 기관(문화센터, 박물관 등), HRD(직업훈련), 모임플랫폼(온오프믹스 등)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짬이 날 때마다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데, 요새는 <지.대.넓.얕.>을 정주행하고 있다.

책, 인터넷,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며 퍼뜩 나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 그때 이런 기분이 드는 이유는 그거였구나’ 또는 ‘앗, 그때 내가 잘못한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부터 내가 했던 행동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작년부터 여러 가지 새로운 취미를 시작했다. 영어 원서를 읽기 시작했고, 고향 친구에게 코바늘 뜨개질을 처음으로 배웠다. 이렇게 시작한 취미는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이어졌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만큼 다양한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나에게 의무적인 일은 없었다. 시간 날 때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 된다. 다만 여기서 괜히 부려본 욕심과 자기검열은 취미의 완성도에 도움이 되었다. 마음 맞는 반가운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잠시나마 힘든 생각을 잊을 수 있었다. 취미의 경험/기록이 축적되고, 결과물을 남기고, 좋은 피드백을 받으며 자존감도 한 층씩 쌓아 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가끔씩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도 있어서 아직 견고하진 못한 것 같다.


교육학 공부하기

교육학을 배우며 ‘어떻게 공부하면 가장 재미있을까?’라는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 평생을 공부해야 하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떻게 공부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했다. 또한 교육학을 통해 학습자를 대하는 방법을 습득하였다. 이는 소중한 사람을 대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물론 나는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데에 이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공부할 때 부모 또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쉽게 가르치는 교육법을 자세히 들여다봤었다. 방법론을 설파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아이가 싫다면 억지로 시키지 마시고 아이가 관심이 생기도록 유도하거나 일단 두세요!’ 이걸 나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수시로 나의 상태에 대해 체크하는 글 쓰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남에게 일일이 하소연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방은 내 마음의 쓰레기통이 아니다. 반대로 남들에게 일일이 하소연할 때마다 같은 아픔이 나를 후벼 파기 때문에 내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려놓는 수련이 필요하다는데, 아직 그런 경지에는 못 올라서 스트레스를 받아 감당이 안 될 때마다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 블로그, 다이어리 등 눈에 보이는 곳에 나의 상태를 솔직히 기록했다. 그래서 사실 내 다이어리엔 기쁜 소식이 거의 없다. 기쁜 소식은 타인과 즐겁게 나누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기쁨은 금방 날아가는데 슬픔과 불안을 왜 이리도 오랫동안 내 안에 머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도전들이 나를 변화시켰는지는 스스로 알 수 없다. 마음이란 게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도 없고 2018년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날 병원을 찾아가 심리치료를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서술한 나의 도전들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는 데에서 의미가 있다. 내가 실수를 하거나 힘들어하는 것에 대해서도 스스로 질책 대신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혹자의 영향을 받은 나의 응원 방식은 이러하다. ‘힘 나지 않을 땐 힘 내지 마. 파이팅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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