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거리와 DDP
2025년 12월 7일 일요일에 나는 남자친구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역으로 같이 갔다. 오늘 일정은 중앙아시아 음식을 먹고 DDP에서 하는 울트라백화점 전시에 가보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활동으로 우리는 동대문의 역사를 크게 체감할 수 있었다.
중앙아시아 거리는 80-90년대 한소 수교를 기점으로 구소련 출신 외국인들이 모여들어 생긴 거리라고 한다. 중앙아시아는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부랴트를 포함한다. 동대문은 전통적으로 원단과 옷감등을 판매하던 우리나라의 중심지였다. 그곳에 외국인들이 모여든 것은 보따리 장사나 원단 중개 무역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고급 기술을 갖고 있지 않고, 생산된 물건을 중개하고 판매하는 일을 하는 게 그 당시 중앙아시아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하는 일이었나 보다. 그리고 동대문에 외국인들이 더 많이 들어오게 된 건,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던 1997년 IMF때라고 한다. 환율이 낮아 외국인 입장에서는 호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98년 러시아가 지급 유예인 모라토리엄을 맞게 된다. 러시아 사람들은 철수했지만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남아서 상점과 식당 등을 개업했다고 한다. 한국 상황도 안정적이지 않았는데 고국의 상황은 더 안 좋았던 건지, 중앙아시아 사람들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고향의 음식들을 파는 것뿐이었다. 그게 30-40년이 지났으니 이제 초창기 한국에 들어왔던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후손이 식당 일을 이어갈 것이다. 그런 중앙아시아 식당에 오늘 우리가 방문했다.
주문한 음식들 중에서 가장 먼저 나온 건 미리 진열대에 놓여 있던 나폴레옹 케이크였다. 케이크는 보통 디저트로 먹기에 옆으로 치워두고 다른 음식들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맛을 조금 보았는데 초콜렛 시럽이 뿌려져 있었고 페스츄리처럼 층층이 겹으로 된 조각들이 쌓여 있었다. 그 사이에 꿀이 들어 있어서 달콤한 편이었다. 다만 오래된 건지 부드럽지 않고 퍽퍽했다.
이 빵도 케이크와 함께 같이 나왔다. 2000원어치를 주문하려다 3000원 어치를 시켰는데, 더 큰 빵을 주는 게 아니라 빵 절반을 더 잘라 주었다. 적당히 간이 배어 있어서 먹기 좋았다.
메인 메뉴가 나왔다. 구운 양고기와 토마토, 오이, 감자튀김, 양파, 레몬을 버무린 음식이다. 양고기에서 특유의 냄새가 조금 났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감자튀김하고 잘 어울렸다.
이건 수프였는데 빵을 찍어 먹고 싶어서 주문한 것이다. 나는 향신료 맛이 별로 세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남자친구는 향이 강하다고 했다. 나는 빵을 찍어 먹으니 고소하고 맛이 좋았다. 안에 밥알과 당근 조각도 들어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샤슬릭을 먹었다. 양꼬치 구이인데, 중국식 양꼬치와는 달리 양고기도 큼지막하고 불에 구운 맛이 나서 훨씬 맛이 좋았다. 아까 먹은 채소와 버무린 양고기 구이보다 잡내도 덜 나고 깔끔한 맛이 나서 먹기 좋았다. 특이했던 것은 케찹 소스가 같이 나온 것이다.
김치도 반찬으로 제공되었는데 아무래도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한국인들도 대상으로 장사를 하면서 한국인의 입맛을 익힌 것 같다.
우리에게 서빙을 해준 중앙아시아 사람도 꽤 젊은 사람이었고 한국말도 잘 했다. 아마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학교도 한국에서 다녔겠지. 차별은 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한민족을 강조하는 만큼, 우리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백인한테는 안 그러는데 우리나라보다 조금 못 사는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폐쇄적이다. 쉽게 친구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친구는 커녕 놀리고 괴롭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우리나라는 내집단 문화가 발달되어서 친구,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는 사고방식이 심하다. 어릴 때는 그런 게 더욱 덜 정제되어 거칠고 무자비하게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같은 민족끼리도 따돌리거나 평균이나 보통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척하는 경향이 심한데, 외국인들에게는 얼마나 차별을 많이 할지..
우리에게 서빙해준 사람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주문을 많이 했으니 돈을 좀 더 벌 수 있다는 생각만 할까. 우리가 먹고 나서 떠난 자리를 치우기 힘들다는 생각을 할까. 한국에서 사는 게 얼마나 팍팍하고 힘들까. 한국인들도 살기 어려운 곳인데.
한국인들끼리도 경쟁을 치열하게 해서 순위를 정확하게 매기고 도태된 사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무시해버리는 게 일상인데. 나처럼 좋은 대학을 나와서도 경제생활이 힘들고 어렵다.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실업 청년 인구는 갈수록 늘고 있고 자살률도 너무나 높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외모도 뛰어나야 하고, 공부도 잘 해야 하고, 돈도 잘 벌어야 하고 집안도 좋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모든 걸 갖춰도 자신들과 너무 다르면 은근히 아니면 대놓고 배척하고 따돌려 버린다. 그래도 그런 건 사람이 잘났으니, 경제생활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정말 힘든 건 방구석에서 인터넷 세계에서만 살고 경제활동을 못하는 취준이나 실업 청년들이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자살한 사람의 집을 치우는 사람의 글이었다. 집에는 공무원 시험 준비 책이 가득 꽂혀 있고, 유서로 엄마 미안해라고 써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은 공무원 시험에 몇 년동안 낙방하다가 붙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1000만원 대출을 받고 집에 100만원씩 송금하다가 빚을 갚지 못하자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나는 그 글을 읽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공부해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이 얼마나 컸을까. 공부가 실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수의 몇 사람만 성공할 수 있는 게임이다. 대부분은 십 대 평생을 바쳐도 원하는 대로 결과를 얻지는 못한다. 얼마나 번듯한 삶을 살고 싶었을까. 계속 낙방하는 모습만 보이기 싫어서 대출을 받아 집에 100만원씩 송금하는 기분은 어떤 것이었을까. 부모님은 기뻐했을까?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러다가 생을 마감했다. 젊은 삶인데 젊다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이 한국은 청춘이 방황하는 자리다.
그런 땅에서 외국인들은 얼마나 많은 설움과 차별을 받고 살고 있을지, 아예 그 자리에 머물러버리는 건지. 그래도 살아갈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디디피 전시관으로 갔다. 디디피 전시관은 원래 동대문운동장이었고, 그걸 철거 후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영국의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가 설계하고,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가 시공했다고 한다. 2014년에 개장해서 10년이 조금 넘은 건물인데 여러 전시회를 열며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그 중에서 우리는 울트라 백화점이라는 체험형 전시회에 가보았다. 내용이 적힌 종이 30장을 골라 책을 제작해볼 수 있었다. 예술에 관한 글, 명언들, 좋은 풍경 등의 종이들을 골라 표지까지 고르면 책으로 제작해서 나갈 때 카페에서 받을 수 있다. 고르면서 나의 취향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엄정화나 이효리 등의 연예인들과 관련한 부스가 여럿 있어서 들어가볼 수 있었다. 큰 부스는 아니었고 작은 방이었다. 그 안에 여러 전시물, 연예인과 관련한 물품들이 있어서 보면서 연예인이 만든 브랜드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작품이 많은 편이 아니었고, 아마 저작권 문제로 몇 개만 개런티를 주고 가져오지 않았나 싶다.
그 외에도 특이한 목욕탕 느낌의 방이나 서재 같은 공간도 있어서 물품을 사용해보거나 책을 열어볼 수 있었다. 감상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았다. 조금 빈약한 편이었고 아무래도 아까 생각한 것처럼 개런티 비용이 들다 보니 예산 안에서 움직이다가 뭔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 같았다. 기대에 미치지는 않았고, 종이를 고르는 게 그나마 괜찮았다. 체험형 전시라고 했는데 실제 체험해볼 수 있는게 많지는 않았다. 전화기를 돌려서 엄정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도가 있었다. 아쉬움이 남았다.
디디피 전시 중에 좋았던 건 반클리프 아펠 전시나 디올 전시였다. 그때는 전시품도 굉장히 많고 공을 많이 들여서 큐레이팅하고 제대로 만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명품을 전시하면서 홍보도 같이 해야 하기에, 명품 브랜드 측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것 같고 디디피는 장소 대여만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주최자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야심차게 구상하고 시작해놓고 막상 가보니 보거나 체험할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고 다른 전시들에 비해 부족했다. 한 브랜드를 제대로 탐구하는 건 지금까지 괜찮았는데, 이번 전시는 너무 많은 걸 계획하고 해보려고 하다가 컨셉도 희미하고 뭘 의도한 건지 제대로 알 수 없는 전시가 되었다. 연예인 물품 몇 개 가져다 놓고 전시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에서 한국 연예인의 개런티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연예인 이름만 들어간 것으로 티켓값은 엄청 높은데 막상 가보면 별 게 없었다. 사실 실망스러웠다. 구상한 사람의 실력도 부족했고, 연예인들의 어떤 제품을 컨셉으로 했으면 아이디어나 철학이나 제대로 조사를 하고 그걸 보여줄 수 있게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개런티는 많이 주고 받았을 것 같은데.
제대로 식사 한 번 대접하기 위해서 불 앞에서 끊임없이 요리했을 중앙아시아 사람이 생각나고, 이름 한 번 쓰게 해준걸로 큰 돈을 받았을 누군가의 이름도 떠오른다. 그리고 그런 게 혼재되어 있는게 동대문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