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문제를 전문가들이 풀어보았다고 합니다. 각계각층의 교수, 소설가 등입니다. 사회에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풀어보고 수능이 너무 어렵다며 수능 폐지론까지 주장합니다.
수능은 꽤 오랜시간 유형을 파악하고 공부해야 풀 수 있는 시험입니다. 물론 유형 파악이 안되면 아무리 전문가라고 해도 풀기 어렵습니다. 전문가란 어떤 분야에서 인정받고 지식과 실력을 갖춘 사람일테지만, 수능의 전문가는 아닐 수 있습니다. 수능은 오래 공부하고 문제 유형 자체에 대해 이해를 한 사람이 잘 풉니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한 학생들이 잘 풉니다. 공부를 안한 학생은 풀 수 없습니다. 공부를 더 오래하고 많이 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을 변별하기 위한 시험이 수능입니다.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수능 시험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못 풀 수가 있지요.
어떤 시험이든 마찬가지입니다. 회계사시험, 행정고시, 리트 등도 오래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잘 봅니다. 공부도 하지 않고 전문시험에서 잘 풀기를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가 아닐까요. 수능은 학생이 푸는 것이니 만만하게 본 것인데, 수능도 공부하지 않으면 풀 수 없고 공부를 해야 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수능 문제를 못 푸는 게 자랑은 아닐 겁니다. 오래 공부하면 학생도 다 맞을 수가 있는 시험이니까요. 이번에 수능 만점자들은 일반고를 나왔고 자기주도학습으로 공부를 해냈다고 했습니다.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파악하고 집중해서 성과를 낸 겁니다.
여러가지 주장을 하는데 수능을 구술 논술시험으로 바꾸자는 것도 있고, 수능 문제 풀면 대학 갈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상한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수능은 공부를 얼마나 성실하게 하고 사고력이 높은지 측정하는 시험이고, 그걸로 대학 입학을 결정하는 것이지 대학공부를 필요없게 만드는 시험이 아닙니다. 대학에서는 수능과는 결이 다른 논술형/구술형 시험을 보며 세부 전공 분야에 대해 다각도로 접근하는 공부를 합니다.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과 고등과정으로 풀어내는 수능의 내용이 다른데 왜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대학에서는 좀 더 무궁무진한 학문의 세계를 배울 수 있습니다. 머리가 똑똑하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인지요.
수능을 구술/논술 시험으로 바꾼다면 40만명 정도 되는 학생들을 어떻게 채점합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면 문제가 더 커지지요. 정량평가가 아니기 때문에 뽑는 사람이 자의적으로 뽑을 수 있고 입시비리는 지금보다 더 처참한 수준으로 심각해질 겁니다.
수능을 왜 없애자고 하는 것인지, 근거를 명확하게 대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어려운 게 이유라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워야 학생들이 변별이 되고 공부를 많이 한 학생을 쉽게 가려낼 수 있습니다. 시험이 너무 쉬우면 하향 평준화가 될 뿐입니다.
수능은 입시 비리를 막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모두가 같은 시간 내에 똑같은 문제를 풀기 때문에 얼마나 공부했는지 외에는 판가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최소한 다른 것들보다는요. 학교 선생님이 알려주고 출제하고 만든 내신 문제야말로 학교마다 전부 달라 객관적 평가가 어렵고, 학교 활동등도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깨끗하고 객관적인 수능 평가가 죽으면 우리나라의 입시는 혼돈에 빠질 겁니다. 자기가 원하는 사람만 뽑으며 비리로 가득해지겠지요.
여기서 사교육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지요. 수능을 없애자는 가장 큰 근거가 사교육이니까요. 회계사 시험/리트/행정고시 등을 보기 위해서도 책을 보고 전문 강사의 강의를 들어야 합니다. 혼자 공부해도 가능하겠지만 개념은 쉽게 설명해주는 강사의 강의를 듣는 게 도움이 되지요. 물론 공부 방식이야 얼마든지 자신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수능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더 쉽고 이해가 되고, 문제를 풀 수 있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공교육이 아니라 사교육에 있는 것 뿐입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제대로 연구하고 설명하고 강사만큼의 실력을 갖춘다면 사교육은 자연스럽게 자멸할 겁니다. 다만 학생들 입장에서 학교 선생님들의 설명이 명쾌하지 않아 강사의 설명을 들으러 가는 거지요.
그렇다고 사교육을 죽여야 합니까? 왜 뭔가를 쉽게 설명해주고 잘 알려주는 사람이 비난받아야 합니까?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강사보다 실력이 좋지 않아 학생들이 외면하는 선생님이 아닙니까? 선생님들이 잘 가르치면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공교육에 의지하고 수능 준비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교사의 실태는 학생들은 잘 알고 있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수업 준비를 대충 하고 시간만 때우고 교과서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교사들은 어디 숨어 있습니까? 수능 준비는 커녕 내신 준비도 제대로 해주지 않아 학생들은 자꾸 학원으로 갑니다. 이게 사교육의 문제입니까, 공교육의 문제입니까.
사교육은 자유 경쟁 시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사들은 강의력을 위해 피나게 노력하지요. 그러나 선생님들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민주자본주의 노선을 택한 이상, 교육마저도 경쟁할 때 잘 되는 것뿐입니다. 수능이 어려워서 사교육이 잘 되는 게 아닙니다. 강사가 교사보다 잘 가르치니까 잘 되는 것뿐입니다. 수능은 변별을 위한 시험일 뿐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교육에 돈을 많이 쓸 수 있는 학생만 대학에 갈 수 있는 시스템은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꼭 돈을 써야 수능을 잘 보는 게 아닙니다. 이번 만점자도 일반고에서 자기주도학습으로 공부했습니다. 성실하게 수능 유형을 파악하면 분명히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잘 볼 수 있습니다. 수능 성적이 좋지 않다면 진심으로 훈련하고 노력했는지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저 역시도 사교육을 고등학생 내내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재수도 독학 학원을 다니면서 혼자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수능 시험에서 5개를 틀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치열한 고등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사교육을 많이 받으며 쉽게 공부할 때, 돈이 없어서 혼자 죽을듯이 노력했고 치열하게 4년을 보낸 결과 남부럽지 않은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저는 제 과거가 자랑스럽고 떳떳합니다.
수능은 잘못이 없고, 아무런 가진 것 없던 제가 덤빌 수 있던 유일한 시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