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남자친구와 수원 행궁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햇살이 피부를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따사롭고 밝은 거리를 함께 걸으니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고 봄 나들이를 가는 느낌이 제대로 들었다. 봄의 분위기가 물씬 살아서 생동감 있고 신선한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화성에서 수원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래서 우리는 갈아타는 곳에서 중식을 먹고 가기로 했다. 중식집에서는 탕수육과 고추잡채, 짜장면 1인 세트가 2만원이었다. 두 명이서 먹으니 4만원이었는데 모든 메뉴가 조금씩 나왔다. 세 개를 다 먹고 나니까 배가 부르기는 했지만 양이 풍족하지는 않았다.
남자친구가 탕수육을 먹으면서 찹쌀 탕수육에는 찹쌀이 안 들어간다는 걸 알려주었다. 감자 전분으로 쫀득하게 할 뿐이라고 했다. 하얗고 쫀득한 탕수육 껍질을 보면서 나는 항상 찹쌀을 생각하며 먹었는데, 아니라는 걸 알고 나니 놀라웠다. 남자친구 뒤쪽에는 중국 왕실 그림이 있었는데, 매끄러운 금색 벽을 깎아서 무늬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사람과 가마, 신하와 전통 궁궐이 보였다. 고추 잡채에는 꽃빵이 두 개밖에 안 나왔다. 내가 꽃빵을 반으로 쪼개서 먹자 남자친구가 겹겹이 찢어서 먹는 것이라고 했다. 하얀 꽃빵 위에 고기, 파프리카, 양파를 볶아 만든 잡채를 올려서 먹자 짭쪼름한 양념이 심심한 꽃빵 위로 뒤섞여 조화를 이뤘다.
버스를 타고 30분 넘게 이동하면서 졸음이 와서 남자친구에게 기대 잠을 잤다. 어깨가 아플 텐데도 한 번도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도착해보니 날이 연하게 맑았다. 새파랗고 진한 하늘이라기보다는 희미하게 느껴졌지만, 색이 적당히 가벼우니까 밝고 산뜻했다. 그 아래로 행궁의 돌담이 보였다. 우리는 돌로 지어진 담벼락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반원형으로 입구를 감싸는 길이 있었다. 남자친구가 이렇게 되어 있는 길은 적들이 입구로 들어갈 때 사방에서 공격하기에 좋다고 말해주었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잔디밭이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걸 보고, 아이들이 그 아래로 시원하게 달려가는 걸 보았다. 나는 영어 말하기 연습도 해 보고, 남자친구도 장단을 맞춰 주었다.
우리는 행궁 안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디데이 하우스라는 곳이었다. 딸기가 잔뜩 올라간 프렌치 토스트와, 따뜻한 초콜릿 음료와 딸기 우유청을 주문했다. 프렌치 토스트는 계란물에 잔뜩 절여져서 부드러우면서도 수플레보다는 꾸덕했다. 그 위에 딸기 잼이 잔뜩 올라갔다. 초콜릿 음료도 진하고 부드러웠다. 우리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이동하는 길에 소품샵도 보고 가방 가게도 구경했다. 행궁 안으로 들어가보니 경복궁처럼 되어 있었다. 투호를 해 보았는데 아무것도 넣지 못했다. 땅따먹기 하는 법을 남자친구에게 알려주고 마루에 앉아서 공기놀이를 했다. 손이 점점 풀려가는 느낌이었다. 공기를 잡을 때 손맛이 있었다. 공기 안에 들어있는 철들이 움직이는 게 가볍게 느껴지고 촤락 하고 잡을 때 손 안에 감기는 느낌이 좋았다. 남자친구에게 바보 공기와 천재 공기 하는 법도 알려주었다. 행궁 안을 충분히 산책하고, 행궁 만드는 과정 영상도 보았다. 왕비의 생일상을 차린 형태도 보고 왕이 왔을 때 쓰던 방도 구경했다. 양반집 내부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쓰던 방은 꽤 비슷하게 생겼다는 걸 알았다. 가장 좋은 형태가 한옥으로 지어진 이런 집이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제는 우리가 현대에 살고 있으니 얼마든지 이 당시 왕이 살던 집보다도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면서 바나나 카스테라와 아몬드 쿠키, 누네띠네와 하얀 크림 카스테라를 샀다. 푸라닥을 주문해서 안성재 셰프의 레시피로 만든 치킨과 깐풍기처럼 만든 치킨 반반을 먹었다.
3/22: 요리를 했다. 식자재 마트에 가서 더덕과 대패삼겹살, 계란을 사고 양념 재료와 후라이팬까지 구매한 뒤 돌아와서 더덕구이, 숙주 대패 삼겹살 볶음, 치즈 계란 말이를 만들었다. 남자친구가 옆에서 계속 도와주고 치워줘서 빠르고 쉽게 요리할 수 있었다. 셋 다 아주 맛있게 요리되었다. 더덕구이는 적당히 달짝지근하고, 대패 삼겹살은 간장 베이스의 소스에서 나는 향이 좋았다. 계란말이에는 치즈가 많이 들어서 부드럽고 달콤했다. 케찹과 잘 어울렸다.
우리는 산길을 넘어서 공원까지 걸어갔다. 산길을 걸으니 익숙하고 편안했다. 바닥에 닿는 돌의 느낌까지 좋아서 남자친구에게 이런 친숙한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살이 너무 많이 쪄서 걱정하는 나를 이해해주고 같이 해결책을 찾아주었다. 공원은 아주 넓었다.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고 테니스나 배드민턴을 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롤러스케이트장도 있었다. 한가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밝은 공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