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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방인 Apr 19. 2024

뉴질랜드에서 벌어먹고살기 1

좋은 사람도 만나지만, 이상한 사람도 만나는 그곳 = 일터

뉴질랜드에 와서 파트타임부터 풀타임까지 카페에서 3년 반 가까이 일을 했다. 커피를 좋아해서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 (회사는 다니지만)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파트타임을 알아봤지만 한국에서는 적지 않은 나이었어서 나이 제한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뉴질랜드에 와서 학생 비자로 지내면서 파트타임을 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해야 먹고살 수 있어서 구직에 열심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한 카페의 주말 파트타임 구인 공고가 올라왔고, 바로 문자가 와서 면접 날짜를 잡았다. 나에게는 딱인 조건이었다. 나는 평일 저녁에 주 3~4 일을 학교를 가니 가능하면 평일에는 일을 최소화로 하고 주말에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쉬는 날은 없지만 그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사장님과의 면접 후에 트라이얼을 2~3시간 정도 했고, 감사하게도 내가 채용 됐다. 커피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지만 처음부터 잘 가르쳐주셔서 재밌게 배울 수 있었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아주 귀한 시간이었다. (뉴질랜드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만난 인연이지만 지금도 나에겐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먹고 살' 걱정을 하다 보니 내가 '커피쟁이'가 되기에는 나에겐 부족한 점도 많았다. 그리고 풀타임으로 바리스타로 일을 하다 보니 저질인 나의 체력과 이 일이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을 했고, 결국은 경험이 있는 오피스 잡으로 방향을 돌렸다. 한국에서도 6여 년 가까이 오피스 잡을 하다 왔기에 그게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직장 생활까지 하다 왔기에 사실 뉴질랜드에서 이룬 커리어가 부족했다. (공부는 뉴질랜드 와서 1년짜리 Business Diploma 코스가 전부였다.) 더군다나 나는 한국에서도 특수한 분야에서 일을 했기에 뉴질랜드에서 동종 업계의 경력을 살리기에는 취업조차 문턱이 너무 높은 곳이었다. 한마디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뉴질랜드에 오면서 이는 각오하고 온 일이고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왔지만, 현실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더욱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한 가지 분야에만 선택과 집중을 하기에 그 시간은 나에게는 사치였다. 나는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직무에 대해서 쭈-욱 다양하게 고민을 했다. 그리고 Seek이라는 구인 구직 사이트에 접속했다. 정말 다양한 회사들과 리쿠르트먼트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다고 공고를 올렸다. '그래, 설마 이 많은 자리 중에서 내 자리 하나 없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없었다. 카페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구직 활동을 한 지라 집에 있는 시간에는 랩탑을 켜놓고 하루 종일 구인광고만 보고, CV를 수정하고 커버 레터를 수정하는 게 나의 일과였다. 절박했기에 리쿠르트먼트 회사의 헤드 헌터 들한테도 메일을 엄청 보냈다. 그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내가 직접 지원 건수를 다 세어보면 아마 100건은 족히 넘을 것이다. 하지만, 늘 헤드 헌터들에게 연락이 오면 풀타임 바리스타였다. 이 기간이 아마 뉴질랜드 와서 제일 고비가 됐던 시간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지인의 소개로 한 회사에 들어갔다. 사실 내가 원하던 직무의 일은 아니었는데, 소개해 주는 분은 너에게 잘 맞을 것 같다고 면접만이라도 보러 가보라고 해서 갔다가 사장과 2시간 정도 대화 같은 면접을 보고서 취업이 되었다. "그래, 못할 게 뭐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오퍼를 승낙했고, 첫 출근을 하게 됐는데 사장만 한국인이고 다른 직원들은 전부 외국인이어서 영어도 계속 쓸 수 있는 환경이니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곳에 입사한 지 보름도 안돼서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일들이 일어났다. 나는 내 위의 직속 상사 (매니저)가 없이 바로 사장의 직속이었다. 그런 구조로 있으니 사장과 직접 부딪히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거기의 문제점은 사장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성희롱을 일삼았다. 희롱하는 말을 듣고는 당황했을뿐더러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적지 않은 나이인지라 사회생활 경험이 있는데도 그런 말은 처음이었다. 그런 빈도가 너무 잦아지니 나중에는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가 싶어서 친한 친구와 언니에게 설명을 하고 혹시 내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거면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난 '나의 편을 들어줘!'가 아니고 정말로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인지 아닌지 궁금했다. 내 얘기를 모두 들은 친구와 언니는 긴가민가한 나에게 격한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이건 소송감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결국 한동안 나는 고민하고, 스트레스받음의 연속으로 지내다가 몸이 망가지는 일이 생겼다. 거기다가 매일 출근을 해서 대표를 만나는 게 너무 곤욕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석 달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나의 성격이라면 그냥 아무 말 없이 퇴사를 진행했을 텐데, 왜 인지 그때는 꼭 사장에게 내가 왜 퇴사를 하는지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사장이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전달을 했고, 왜 기분이 나빴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했다. 사실 얘기하면서도 사장이 인정하지 않을 것을 예상했고, 실제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거라면서 본인은 이 분야에서 삼십여 년 간 몸 담고 있었지만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아주 진부한 클리셰를 남겨줬다. 정말 여기에 옮기고 싶은, 사장이 한 말이 정말 많지만 좋은 기억이 아니니 오염시키고 싶지 않다.

그렇게 그만두고 (먹고살아야 하기에) 파트타임으로 바리스타를 하다가 지금의 회사를 오게 되었다. 지금의 회사는 일본계 기업으로 한국에서는 시장이 매우 작지만 유럽/아시아/북미 등에 지사가 있는 회사이다. 이곳에 입사하고서 심적으로 안정됐다는 느낌은 부정할 수 없다. 다음 편으로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와 나의 일상에 대해서 끄적여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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