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끝나는 마당에 뭘 이렇게 같이 하라는지.
끔찍하게도 많은 비가 내리던 날.
떨면서 법원 서류접수.
미성년자녀가 있으면 먼저 영상시청.
그다음 서류, 서류, 도장
미리 다 적어놓고
내가 서명만 되게 해 둔 남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토악질이 목까지 차올랐다.
역시 경력은 무시 못하나
뭘 이렇게 잘 알고 잘하는지?
'다음번엔 오늘보다 덜 흔들리겠지'
스스로 다독이며 잘 참았던 그날.
그리고 또 비.
두 번째 확인 기일.
왜 이곳에 올 때마다 비가 올까.
바닥은 젖었고
마음도 무너졌으며
내 결혼생활이 진창 속에 처박히듯 끝나는 시간.
법정에서 나와 같은 여럿의 사람들과
주의사항을 같이 듣고
아직은 부부라는 이름으로
같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둘이 나란히 일어나
눈도 안 마주친 채
각자의 서류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어색한 시간.
더없이 웃기고, 더없이 비참했다.
또다시 이름이 같이 불리고
이혼을 인정합니다 소리에
정말 [끝]
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드시 구청에 같이 가라니...
이걸 안 하면 이혼이 무효가 된다니..
법은 친절한 척 잔인하네.
배우자가 바람 펴서 꼴도 보기 싫어 이혼하는 사람들한테는
각자가 가서 등록하는 법은 절대 만들어지지 않겠지?
번호표를 같이 뽑고
설명도 같이 듣고
다시 함께 이름이 불리고.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쓰고
그는 반대편에서 내가 다 쓰기를 기다리고.
사람들 시선이 다 나에게 꽂히는 것만 같고,
누군가는 내 사정을 상상하진 않을까..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다음 번호를 기다리고.
우리는 커플처럼 다시 이름이 불리고
끝났다는 말과 동시에
서로 다른 방향의 계단으로
서로 다른 주차장으로..
머릿속을 스치는 나쁜 생각 하나.
차라리 그가 죽었으면..
이혼보다는 사별이 더 나았겠지 싶은..
뭐... 둘 다 슬픔의 이름표만 바뀌었을 뿐.
그 생각이 나를 더 상하게 한다는 것
나는 안다.
현실에서도
서류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배우자의 이름.
비는 여전히 내렸고
더 이상
함께 이름은 불리지 않을 것이고
같이 줄을 서야 하는 상황도 이제 없을 것이다.
끝은 이렇게 생겼고
시작도 이렇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