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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Jan 14. 2024

서현의 나날.

43화. 과거. (39)

"저리 비켜!" 서빙을 하던 지구인은 옆의 동료를 거칠게 밀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래! 네가 저리로 돌아서 가면 될 일을. 누구에게 짜증이야!" 밀쳐진 지구인은 그녀를 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음료를 주문한 손님들은 그녀들의 다툼에 당황해하며 슬금슬금 자리를 떠났다.


"어? 손님. 잠시만요. 어디 가세요?" 다투던 그녀들은 떠나는 손님들의 뒷모습을 보며 다급하게 말했지만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문 밖으로 나갔다.


"아씨! 야! 너 때문이잖아! 어쩔 거야!" 조금 전 그녀에게 밀쳐진 직원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네가 밀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어!" 둘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서로의 멱살을 잡은 채 서로의 얼굴에 침을 튀기며 욕설을 뱉었다. 다른 손님을 응대하던 동료들이 달려와 그녀들을 말렸지만 이미 커져버린 다툼을 멈출 수 없었다.


"오늘은 누가 그만둘까?" "나는 B가 그만뒀으면 좋겠어! 나이도 먹을 대로 먹어서 젊고 예쁜 A에게 패악질 부리는 것 좀 봐!" "에이 그래도 B가 더 좋지! 서비스도 매끄럽고 성숙하고.."


로스터리에서 소현이 해고당한 뒤 손님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서비스팀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업무의 경계가 무너졌고 소현에게 눌려 패악질을 부리지 못했던 불량 직원들이 팀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후 실력이 아닌 자신들과 어울리는 지구인들을 감싸고 이끌며 불필요한 조직을 만들어 본인들 마음에 들지 않는 지구인들을 따돌리고 쫓아냈다.


그 뒤로 서비스팀원들은 팀의 왕노릇을 하는 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각자의 실적만을 위해 행동했고 서로 다투는 일이 빈번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 수 없으나, 서비스 팀의 다툼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하는 손님들이 늘어났고 이는 로스터리의 금고를 채워줬다. 하지만 집이라 생각하며 매일 방문하던 정겨운 단골손님들은 더 이상 이곳을 찾아 않았고 주변부에서 로스터리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들이 퍼져나갔다.


더 이상 로스터리는 평온한 안식처가 아니었고 주변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극적이고 천박한 분위기와 음료를 판매하는 흔한 술집이 되어갔다.


"그만! 그만! 조용히 해!"


혜은은 다투고 있는 직원들 앞 책상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이제 그만! 손님들 계시는데 이게 무슨 짓입니까!" 서로 다투던 지구인들은 잠시 주춤거렸지만 다수의 손님들이 자신들의 싸움을 원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 혜은을 무시한 채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그녀들을 구경하는 지구인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며 혜은의 목소리를 삼켰고 그녀는 그들에게 완전히 무시당한 채 그녀들을 지켜봤다.


"이대로 두면 로스터리가 문을 닫게 될 거예요. 어서 서비스팀 팀장을 구해야 돼요." 그녀는 홀에서 무시를 당한채 윤식의 사무실로 돌아와 강하게 말했다.


"흐음.. 꼭 그래야 할까?" 하지만 그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꼭 그래야 하냐고요?" 혜은은 심드렁한 그의 태도에 화가 났다. "아니. 이전보다 수입이 늘어서하는 얘기야. 수입이 늘면 기분 좋잖아." 이제는 그는 책상 위의 서류를 보며 대충 말했다. "단골손님들이 줄고 있어요. 이런 현상은 좋지 않아요." 혜은은 어딘가 쓸쓸한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단골이야 새롭게 만들면 되니까. 그리고 오히려 예전 단골들보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지구인들이 훨씬 많은 돈을 쓰고 가. 얼마나 좋아. 아. 손님들에게 관심을 받으며 다투는 직원에게는 더 많은 급여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말을 할수록 그의 말에서 비아냥 거림을 느낀 혜은은 자신이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 그에게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저기. 여기 좀 도와주세요. 일 손이 부족하잖아요. 아니! 거기 말고요!"


며칠 전부터 혜은은 그의 비서 역할보다 홀의 팀장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미 서비스팀은 예전 같지 않았고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더 이상 그녀와 함께 성실히 일을 하던 동료들은 떠나버리고 오로지 윤식에게 잘 보이려는 이들과 한탕 챙겨서 이곳을 떠날 생각만 하는 자들만 남았다. 그들은 혜은을 눈엣가시였고 그녀를 의도적으로 따돌리거나 무시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 정말." 그녀는 한숨을 쉬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다만 바쁘게 일을 하면서도 윤식이 자신에 대한 집착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이 신경 쓰였고 집에 돌아가면 인상을 구긴 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딸도 신경 쓰였다.


혜은은 점차 자신의 삶이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외면하며 일에 몰입했다. 그녀는 일에 몰입하며 암울했던 현실이 긍정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서비스팀 업무에 집중할수록 매출은 줄어들었고 서로 합의하여 '쇼'를 펼치던 직원들도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되자 그녀를 더욱 원망했다. 아직까지 그녀가 사장과 가장 가까운 지구인이라는 사실이 로스터리 안에서 그녀를 지켜줬다. 하지만 이 역시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니. 왜 이러는 거야!" 윤식은 혜은이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혜은은 그에게 말했다. "로스터리가 예전처럼 정상으로 돌아가는 중이에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옛날? 정상으로 돌아간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그는 화로 인하여 얼굴이 붉어진 채 그녀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며칠 전 수입이 늘어 기분이 좋다는 윤식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다시 로스터리가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돌아오면 그가 기뻐할 것이고 소현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자기. 지금 보니까 예쩐에 촌스럽던 그때로 달아간 것 같아." 그는 혜은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다시 그 팀에서 일을 하니까. 그렇게 되는 거잖아! 당장 그만둬!"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얘기했다. 그녀는 "알겠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멈칫하며 말을 멈췄다.


"뭐야. 갑자기 말을 멈춰? 더 할 말이 있어?" 그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순간 그녀는 자신의 과거 모습이 떠올랐다. 꾸밈없이 단정하고 성실하게 따뜻한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하던 그때의 자신이. 그녀의 마음 한 구석이 뜨거워지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뭐야. 왜 울어? 나 바빠. 나가 봐." 그는 귀찮다는 듯이 그녀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그를 뒤로한 채 나가려는 순간 그가 소리쳤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서비스팀 일은 하지 마. 알았어?" 혜은은 그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대답을 하지 않고 뭄을 닫았다.


그녀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윤식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일 서비스팀 업무에 개입했다. 그녀의 노력 덕분에 로스터리는 다시 평온하고 정겨운 분위기로 돌아가고 있었다.


"저 년 짜증 나."


"어. 일만 잔뜩 시키잖아. 그렇다고 급여가 올라간 것도 아니고."


서비스팀의 일부 직원들은 더 이상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하고 업무만 늘어났다며 혜은을 미워했다. 하지만 그녀는 투덜거리는 직원들을 신경 쓰지 않고 그녀들에게 더욱 일을 몰아줬다. 오히려 그녀들이 퇴사를 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기 정리가 제대로 안 돼있어요. 정리 좀 해주세요. 저기요!" 혜은은 특히 분란을 일으키는 두 명에게 날카롭게 말해고 행동했다.


"저 년 어떻게 하지? 짜증 나 죽겠네. 정말."


"사장의 장난감만 아니면 당장 손 봐주는 건데."


그녀들은 어떻게든 혜은을 쫓아내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가끔 윤식이 홀에 방문했을 때 접근하여 유혹하려 노력했지만 오히려 그는 인상을 쓰며 그녀들을 벌레를 보듯 내려다봤다.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장에게 젊고 예쁜 새로운 장난감이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매출이 줄어든 상황에서 새로운 직원을 채용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이곳에서 버티다 보면 언젠가 혜은이 그에게 버려질 것이라 생각했고 욕을 하면서도 버텼다. 그녀들의 열망이 강렬해서였을까? 며칠 뒤 "로스터리와 함께할 가족을 구합니다."라는 공고문이 입구에 위차 한 게시판에 게시되었다.


그녀들의 눈빛이 반짝이며 마음속에서 희망이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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