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봉인 해제
-회의실로 와.
메인 언니의 짤막한 문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프로그램이 폐지되나?’ 아니면 ‘진행중인 아이템이 엎어졌나?’ 그것도 아니면 ‘설마, 지은 언니가 그만두나?’ 메인 언니가 지속적으로 문자를 보내는 걸 보면 마지막 가설이 유력했다.
현재, 우리 팀은 작가가 부족한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제작 중이다. 열악한 처우와 박봉으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이 떨어져 나가니, 만성적인 인력 부족은 뉴노멀이 되었다. 만일, 내 예측이 맞다면, 지은 언니는 평생 나에게 속죄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혼자만 이 지옥에서 탈출하는 것은 반칙이다.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극단적인 경우의 수를 모두 떠올리며, 회의실 문을 열었다. 과연, 응급상황 답게 모든 팀원들이 모여 있었다. 지은 언니만 빼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라는 유행가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눈치를 보며 조용히 테이블 끝자리에 앉았다. 순간, 이 PD가 머리를 쥐어뜯다 고개를 들었다. 그의 면상을 보니,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럴 땐, 눈조차 마주치지 말아야 한다. 이 PD의 시선을 피하며 숙제 안 해온 학생 마냥 몸을 사리고 있는데, 하필, 그가 나를 지목한다.
“허 작가, 그간 취재한 내용 읊어 봐.”
팀원들의 시선이 온전히 나를 향했다. 마치 인민 재판을 받는 것 같았다. 어서 잘못을 실토하라는 듯 매섭고 예리한 눈빛에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이럴 때, 지은 언니라도 옆에 있었으면 좀 안심이 되었을텐데, 그녀의 부재가 원망스러웠다.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더듬더듬 취재 내용을 시간 순으로 브리핑했다.
취재한 내용을 풀어낼수록 사람들의 굳은 얼굴이 다양하게 변했다. 누군가는 의심과 경계를 하는 것 같았고, 누군가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추미영의 비극적인 과거사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안타까운 듯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브리핑을 마치자, 한 동안 회의실이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 찼다. 그런 분위기를 깨뜨린 것은 제작팀 차량 운전 기사님과 함께 등장한 지은 언니였다.
“일용할 양식이 왔습니다.”
메인 언니가 응급이라고 한 게 지은 언니의 저 괴상한 모습 때문일까? 양팔 모두에 깁스를 한 지은 언니는 목에 빵 봉지를 걸고 나타났다. 어떻게 하면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시간 안에 남은 한 팔마저 아작 날수 있을까?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나와 달리, 지은 언니는 혼자 룰루랄라였다.
“빵집 사장님이 제 팔 보시더니 고생한다면서 샌드위치 공짜로 하나 더 주셨어용.”
지은 언니가 내 옆에 앉더니, 눈썹을 움직이며 무언의 지시를 했다. 샌드위치 세팅하고 커피에 빨대도 꽂아 달라는 뜻 같았다. 쌍깁스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녀의 지시를 이행했다. 반으로 잘린 샌드위치를 언니의 입 앞에 대령하자, 우적우적 잘도 먹는다. 어떻게 된 거냐고 조연출에게 묻자, 남기현이 이마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하아~, 장비 드는 거 도와주겠다고 하다가…”
깊은 한숨과 더불어 끝맺지 못한 말로 미루어 보건대, 무슨 상황인지 빤히 보였다. 분명, 조연출은 괜찮다고, 아니, 오히려 지은 언니를 만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은 언니는 평소처럼 최선을 다해 상대를 도우려 했을 것이다. 그러다, 팔이 부러졌고,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피해자는 있으되 가해자는 없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조금 눈치를 볼 법도 한데, 지은 언니는 잘도 먹어 댔다. 그럴 리 없지만, 설마, 여름휴가를 쓰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결국, 모든 일이 쓰나미처럼 나에게 몰리는 예정된 수순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역시, 슬픈 예감은 다른 쪽으로 들어맞았다. 메인 언니가 난감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보다시피, 지은이 상태가 이래서 당분간 진희 네가 일을 도맡아서 해야 될 것 같다. 들어보니까, 추미영 취재는 이 정도면 그럭저럭 된 것 같아. 고생 많았어.”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메인 언니의 칭찬도 듣는 둥 마는 둥 억지 웃음을 지었다. 살짝 위로 올라간 광대가 억울함과 절망감에 미세하게 떨렸다. 그런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은 언니가 아이스커피를 한 번에 쭉 들이켜며 갈증을 해소 중이다. 그러면 안 되지만, 솔직히, 얄밉다.
‘그냥 이번 기회에 확 그만 둘까?’
속으로 퇴사 각오를 다지고 있는데, 지은 언니가 이 PD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이번 아이템 고에요? 스탑이에요?”
절반가량 진행한 아이템이 엎어질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PD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내가 취재만 나가면 왜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는 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 PD는 테이블 위에 두 손을 깍지 낀 채, 고심하듯 얼굴을 묻었다. 대답 없는 이 PD 대신 지은 언니에게 뭐냐고 속삭이듯 물었다. 그러자, 언니는 귀엣말로 지난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속성으로 알려주었다.
“국장이 이번 아이템 엎으라고 지랄하고 갔어. 이유는 말 안 하는데, 외압이 있었던 것 같아.”
“무슨 외압이요? 정치 관련 아이템도 아닌데.”
“왜 없어? 조하대 형, 조귀언. 그 인간이 힘 좀 썼나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구설에 오르는 일이 달갑지 않겠지만, 가해자도 아닌 피해자 유족이다. 선거에 나간다 하더라도, 동정표를 얻을지 언정 표를 깎아먹지는 않을 터. 국장을 메신저로 해서 프로그램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 이런 식의 무리한 개입은 의구심만 키울 뿐, 사건을 덮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니, 혹시, 경이동 보건소에서 추미영 관련 의료기록 보내줬어요?”
“아니, 그것도 조귀언이 손쓴 것 같아. 담당 직원 살짝 찔러봤더니, 윗선에서 안 된다고 그랬데. 그래서, 이 PD가 인맥 총동원해서 똥줄 빠지게 알아봤더니, 이름은 알려줄 수 없고 국회의원이 막았다고 그러네? 누구겠어?”
“그럼 경이동 지구대에서도 연락 못 받았겠네요?”
“어. 다른 매체도 그쪽에 취재 들어갔는지 골치 아픈 것 같아. 그 동안 추미영 관련해서 여러 차례 신고가 있었던 모양인데 사전에 예방 가능한 사건 아니었냐고 물고 뜯고 난리도 아닌 모양이야.”
이제, 모든 이목은 이 PD에게 향했다. 계속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순간이다. 지금까지 해 온 취재는 아깝지만, 아이템을 갈아타는 것도 타이밍이다. 지금이 아니면, 결방이라는 재앙을 맞닥뜨려야 한다. 회의실을 침묵으로 가득 채운 고민의 순간이 지나고 이 PD가 욕을 하며 내질렀다.
“씨발, 몰라! 못 먹어도 고!”
이 PD의 결정에 팀원들 모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계속 가기로 한 이상, 취재대상이 하나 더 늘었다. 바로 조귀언. 단순히, 유가족이라고 하기에는 구린내가 너무 났다. 그래서인지, 메인 언니가 의견을 냈다.
“조귀언 파묘 한번 해 봅시다. 뭔가 구린 게 있으니까 우리 프로그램에 감 놔라, 배 놔라 하겠죠? 특히나, 추미영 관련해서 너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 보건소 자료 건도 그렇고, 그죠? 일단, 추미영과 연관성이 있는 지도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지은아! 아…. 아니다. 내가 알아 볼게.”
쌍깁스를 한 지은 언니가 두 팔을 들어 보이며 안타깝다는 듯 울상을 하는데, 이러면 안 되지 싶으면서도 참 꼴 보기 싫었다. 나와 같은 생각인지 이 PD가 얼굴을 구기면서 말했다.
“그래,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니까, 각자 맡을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잘 해결해 봅시다. 그럼, 나는 조하대 수사자료 최대한 확보해 올 테니까, 허 작가는 추미영 면회 가능한지 관계당국에 한 번 알아보고. 그… 숙모라는 분이 가족으로 면회 가능하댔나?”
“네. 그런데, 현재, 남편 간병을 도맡고 계셔서, 부재 시, 간병인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지원해 드리고, 면회 같이 가서 추미영 상태 본 다음에 인터뷰 가능한지도 한 번 알아봐.”
“알겠습니다.”
장시간의 회의가 끝나니, 역시나, 산더미 같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압도적인 것은 프리뷰. 편집실에는 사건 현장 스케치 영상, 경이동 주변이웃들 인터뷰, 푸른 언덕 보육원 촬영분 그리고 전문가 인터뷰 등등… 촬영 테이프만 수십 개였다. 이틀 밤을 새워 돌려봐도 다 끝내지 못할 양이다.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망연자실의 끝은 자아성찰이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질려 버려 멍하니 앉아 있는데, 뒤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출입문 간이창으로 지은 언니가 보였다. ‘왜 안들어오지?’ 라고 생각하다가, 언니가 쌍깁스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곤 재빨리 문을 열었다.
“힘들겠다. 먹으면서 하라고.”
언니의 목에는 김밥, 샌드위치, 피로회복제, 커피, 물 등을 담은 비밀 봉지가 걸려있었다. 일단, 프리뷰를 위해 편집실에 들어오면, 용변을 보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을 제외하고, 끝날 때까지 결코 나갈 수 없다. 그렇기에, 죄수에게 사식을 넣어주듯 나를 챙겨주는 언니가 고맙기도 했지만, 결국, 혼자 탈옥하는 언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깁스 언제 풀어요?”
“한 2주 정도?”
“그럼, 언니 휴가 가는 거에요?”
“프리랜서가 휴가는 무슨… 굳이 따지자면 병가라고 해야 하나?”
병가 쓰는 사람 치고 표정이 너무 밝아 한 대 칠 뻔했다. 가까스로 인내를 발휘하는 중에 그나마 언니를 통해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하루만 고생해. 메인 언니가 프리뷰 아르바이트 바로 구해 주신데.”
“그럼 다행이고요.”
“고생해.”
“예, 잘 쉬세요. 빨리 낫고요.”
저만치 멀어져 가는 언니를 붙잡고 싶었지만 현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최대한 빨리, 이 감옥을 벗어나는 길은 소처럼 일하는 것밖에 없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두 눈을 부릅떴다.
00분 01초-경이 초등학교 운동장 풀 샷.
00분 03초-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모습
00분 05초-경이 초등학교 정문 앞 상가 건물.
00분 06초-조하대가 사는 살림집 2층.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가 경찰의 출입금지 선으로 막혀 있는 것이 보임.
00분 07초-상가 건물 1층 미래 문방구 간판.
00분 08초-문방구 통유리 너머로 문구용품이 빼곡히 들어찬 내부가 보임.
00분 10초-제작진이 문구점 출입문을 가볍게 흔들어 봄. 열리지 않음.
그 동안 전화로 인터뷰하며 상상만 했던 동네를 실제 화면으로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2층 짜리 오래된 건물의 1층은 조하대의 문방구, 2층은 그의 살림집이었다. 살림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는 노란띠로 출입금지선이 쳐져 있어 진입이 불가능했다. 그나마, 문방구는 출입제한이 없었지만, 통유리 앞을 상품들이 가리고 있어 내부를 자세히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PD와 조연출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어딘가로 걸어갔다. 도착한 곳은 문방구에서 도보로 2분 거리에 있는 성원 부동산. 추미영의 부동산 중개를 담당했던 곳이다. 추미영이 어떤 경로로 경이동에 정착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전화했지만 실패했던 곳. 사장님은 지금쯤 남해 섬 어딘가에서 바다 낚시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연락두절로 인한 섭외 실패’ 라고만 보고해 두었다.
‘소용 없을텐데…’
굳게 잠겨 있을 성원 부동산을 예상했지만, 사장님은 멀쩡히 정상 영업 중이었다.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연준이는 분명 사장님이 바다 낚시를 가서 전화를 못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사정이 생겨 낚시 일정이 취소된 건가? 의도치 않게, 양치기 소년이 된 것 같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중에 한 소리 듣겠네.’
이 PD의 잔소리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찜찜한 기분을 억누르기 위해 지은 언니가 사다 준 김밥을 우걱우걱 씹어 넘기며,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제작진과 부동산 사장님이 미래 문방구로 향했다. 가게 열쇠를 성원 부동산에서 관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부동산 사장님의 너른 등판이 화면에 들어왔고 잠시 후, 출입문이 열렸다.
카메라가 천천히 문방구 내부를 훑었다. 대낮인 데도 안은 꽤 어두웠다. 부동산 중개인이 전등을 켜자, 판매 상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구류, 장난감, 불량식품 코너까지 두루 갖춘 보통의 문방구. 카메라가 카운터로 이동했다. 주인의 개인적인 공간을 엿보기 위함인 것 같았다. 카운터 또한 별다를 것은 없었다. 귀여운 곰인형이 그려진 머그컵과, 자양강장제 빈 병, 주요 보수 일간지가 조하대의 개인적인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전부였다.
너무 평범했다. 장팀장이 사건현장에서 목격했다는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의 깔끔함과 정리벽은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인 공간과 사회적인 공간을 철저히 분리하는 타입일까? 주인이 부재중이라는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문방구 내부 상품 곳곳에 쌓인 수북한 먼지와 먼지 한 톨 없이 정갈했던 사건현장은 분명한 괴리를 드러냈다.
조하대를 알면 알수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인간적인 면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카운터 의자 뒤 벽면에 걸린 액자였다. 액자 속 사진에는 성인 남성 한 명과 여자 아이 한 명이 나란히 서 있다. 배경으로 ‘푸른 언덕 보육원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초점이 흐릿하던 카메라는 줌 인과 줌 아웃을 반복하더니, 마침내 사진 속 인물들의 얼굴에 초점을 맞췄다.
‘이 사람이 조하대?’
잠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조하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낯설지 않은 얼굴이다. 깊게 패인 눈 우물, 매부리코, 얄상한 입술에 호리호리한 체격. 보면 볼수록 느껴지는 익숙한 불쾌감.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며 방금 먹은 김밥이 덩어리 채 올라올 것 같았다. 두통이 일어 찌릿한 통증이 정수리까지 치솟으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동시에, 봉인되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무서운 압력으로 터져 나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