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12화-인터뷰2

by 해금이


정육점 아줌마는 긴장되는 지 말을 하다 말고 테이블 위에 놓인 물컵을 한 번에 들이켰다. 정작, 죄를 지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아줌마의 움츠러든 모습이 안쓰러웠다. 원활한 인터뷰를 위해 뭐라도 해야 하나 싶을 때, 연준이가 먼저 나섰다.


“아주머니, 오늘 인터뷰 어려운 일이라는 거 알아요. 저라도 아주머니 입장이라면 힘들 것 같고요. 그래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신 분이니까, 적어도, 추미영 씨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많아 아실 거잖아요. 아주머니 말씀이 추미영이라는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편하게, 기억나는 대로 말씀해주시면 돼요. “


연준이의 다정하고 조곤조곤한 말투에 아줌마는 그나마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럼에도, 눈치를 보듯 시선을 고정하지 못한 눈동자에는 초조함과 불안함이 엿보였다. 중. 고등학생때,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무심하게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갔던 동네 아줌마. 세월이 흐르고, 폭삭 늙어 힘이 빠진 모습을 보니, 마음 한 켠이 씁쓸하게 아려왔다. 유난히, 얼어 있는 아줌마에게 쉬운 질문부터 던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엄마로부터 들은 에피소드를 꺼냈다.


“아줌마, 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제가 밤에 자다가 오줌을 지렸데요. 엄마 말로는, 미영이 아줌마한테 놀라 가지고 그랬다는데, 미영이 아줌마는 왜 애들을 놀래키고 다녔을까요?”


과거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두고도 사람마다 기억이 다른 것일까? 내 질문에 정육점 아줌마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미영이는 애들 놀래키고 다닌 적 없어. 그냥, 애들이 지레 놀라서 도망 간 거지. 되려 애들이 나빴어. 미영이 사정도 모르고 귀신이네 뭐네 돌로 사람을 치질 않나. 아! 한번 그런 적은 있었어. 어떤 남자애가 놀다가 다쳤는지 머리에 피가 났다네? 그래서 괜찮은 지 봐주려고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남자애 부모가 오해를 해서 형님한테 따지러 왔었어. 물론, 나중에 다 오해 풀었고.”

“아… 그랬었군요.”


“그래, 알다시피, 우리 미영이가 정신이 온전치 않아. 그래서, 웬만하면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하려고 했는데 애가 말을 들어야지. 미영이 입장에서는 그냥 나 다닌 것뿐인데, 몰골이 그래서… 하여튼, 꼬맹이들은 무서울 만도 했지. 어쨌든지 간에, 우리 형님이 고생 진짜 많이 하셨어. 시집온 지 3년만에 남편 교통사고로 잃은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다 큰 딸래미 뒤치다꺼리까지 하는 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야?”

“그럼, 지금 미영이 아줌마 어머니는 어디 계세요? 댁에 찾아갔는데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더라고요.”

“아~, 한옥집?”

“네.”

“지금 형님은 요양병원에 계셔. 2년 전인가? 그 때부터 정신이 오락가락했는데 딸이 그 모양이니 주변에 돌봐 줄 사람이 있어야지. 지금, 우리 영감도 뇌출혈로 쓰러져서 나 혼자 간병 중이라 여력이 안 되거든. 그래서, 그 집은 팔려고 내놨어. 근데, 옆에 파이프 만드는 공장인가? 암튼, 밤낮으로 너무 시끄러워서 누가 그 집을 사야 말이지. 지금은 그냥 빈집으로 있을 거야.”

“그래서 집에 아무런 기척도 없었군요? 근데, 미영이 아줌마는 어쩌다가 그렇게 아프게 된 거예요?”


내 질문에 아줌마는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쉽사리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 닫힌 이 사이로 숨을 들이쉬며 스읍하는 소리를 내더니 결심한 듯 추미영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아줌마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속에 끓어오르는 분노가 거친 숨소리와 함께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줌마의 얘기는 이랬다.


사건 당시, 9세였던 추미영은 심부름을 해 달라는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의 요청으로 가게 내부 쪽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동네 아저씨는 추미영의 선한 마음을 저열한 욕망으로 무참히 짓밟았다. 추미영은 이 일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지만, 끔찍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내내 그녀를 괴롭혔다. 아이였던 추미영은 먼 산을 보고 혼자 중얼거리는 때가 많았지만 가족들은 아이가 보내는 SOS를 알아채지 못했다.


이후, 성인이 된 추미영은 1978년 결혼했으나 잠자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이혼당하고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나중에, 직장생활도 해 봤지만 심한 대인기피증과 혐오증으로 고통받다 사직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했다. 몇 년 간의 치료 후 퇴원했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날씨에 상관없이 얇은 홈드레스에 고무 슬리퍼를 신고서 동네를 이리저리 배회했다. 관리되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얼굴을 덮은 긴머리로 외출했는데, 이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미친년으로 불렀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잔인했다. 그녀를 귀신으로 생각한 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져 추미영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괴롭혔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의도치 않게 놀래 킨 아이들이 충격을 받고 밤에 경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문제가 지속되는 어느 날, 동네에서 연두가 실종되었다. 흉흉한 분위기 속, 추미영의 기행은 계속되었고, 사람들이 이를 좋게 볼 리 없었다. 모두가 그녀를 벼르던 참에, 동네에서 술집을 하던 혜영이 엄마와 추미영이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혜영이 엄마는 꼬리뼈가 부러져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았고, 타인에게 상해를 입힌 추미영은 정신병원에 강제로 보내졌다.


10년간 입원 치료를 마친 추미영은 퇴원 후 더 이상의 기행을 반복하진 않았지만, 째깍거리는 시한폭탄 같았다. 종종, 환시와 환청에 시달렸고, 그녀의 어머니조차 딸을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지는 않은 것인지, 지역사회의 정신보건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추미영의 증상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해진 것이다.


“근데, 문제는 항상 돈이야. 미영이 입원비 대느라 집에 돈이 똑 떨어졌어. 큰 형님네가 진짜 알부자였는데 애 치료하느라 야금야금 따 까먹은 거지. 지금 있는 거라고는 그 한옥집 하나뿐인데, 말이 팔려고 내놓은 거지 사려는 사람 없으면 은행에 담보로 넘어가는 거나 마찮가지야. 집 담보로 대출받은 돈이 꽤 크거든.”

“그래도, 집이 완전히 넘어간 건 아니니까, 계속 살 수는 있었잖아요. 미영이 아줌마는 왜 갑자기 변주시로 이사한 거죠? 그쪽에 연고가 있나요?”

“글쎄.. 내가 알기론 없는데? 나도 놀랐어. 갑자기 혼자 살겠다면서 이사를 한다길래”

“왜 가는 지 안 물어보셨어요?”

“옆에 공장 소음이 너무 시끄럽다고 했어.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녀의 과거 자체만 놓고 본다면 너무나 비참하고 처절했다. 사고가 발생한 후, 곧바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고, 그 때문에 수 십년간 고통에 시달렸다. 첫 단추가 잘 못 채워졌기 때문에, 모든 것이 어긋나 현재까지 이르렀다. 인터뷰 내내, 아줌마는 추미영에게 나쁜 짓을 한 인간에 대한 분노를 지속적으로 드러냈다.


“아주 육실할 놈이야. 인두겁을 쓰고 어떻게 그런 몹쓸 짓을 저질러!”

“혹시, 지금, 그 사람 어디에서 뭐 하는 지 아세요?

“에휴~, 나도 몰라. 나도 그렇고 우리 형님도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는지 한참 후에나 알았어. 늦었지만, 경찰서에 잡아넣을 요량으로 알아봤더니 공소시효인가 뭔가가 한참 지났다더라고. 그래가지고, 분통이 터져서 살 수가 있나! 안 되겠다 싶어, 형님이 칼 들고 그 인간 사는 집을 찾아갔지. 그랬더니, 어땠는 줄 알아? 글쎄, 도둑이사를 가 버렸더라고. 그 동안, 우리가 유치장에 처넣는다고 난리 치면서 몇 번 들락거렸더니, 겁먹고 내 빼 버린 거야. 자기도, 이 동네서 얼굴 들고 사는 게 남사스러웠던 거지.

“그럼, 미영이 아줌마는 그런 일을 당하고도 가해자랑 한 동네에서 10년 이상을 같이 산 거예요?”

“그게 제일 미안하지…”


제일 나쁜 놈은 추미영을 그렇게 만든 짐승이지만, 이제는 주변 가족들에게 더 화가 나려 했다. 그간 추미영이 보냈을 수많은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가족들의 무심함이 추미영을 더욱 궁지로 몰았을 것이다. 그 결과, 현재, 추미영은 살인범이 되었고, 피해는 조하대와 그가 후원했던 화진이에게도 돌아갔다. 과거의 끔찍한 사건이 초래한 또 다른 비극에 절로 탄식이 나왔고, 참담했다. 그렇기에 더욱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았다.


“아줌마, 미영이 아줌마 그렇게 만든 사람 이름 알아요? 주민등록번호나 사진 같은 거요.”

“에휴, 나는 몰라. 하도 오래 돼서. 뭐 좋은 거라고 계속 갖고 있을까마는… 그래도 미영이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혹시, 미영이 아줌마랑 면회 가능하세요? 지금, 미영이 아줌마 어머니는 치매라서 면회가시기 어려울 거고, 아줌마는 가족 자격으로 가능하시잖아요.”

“사실, 가 봐야 하는데 못 가봤어. 우리 영감이 자리보존하고 누워있는데 간병할 사람이 없잖아. 나도 몸이 이래서 움직이는 게 쉽지 않고.”


변명을 하듯 아줌마가 무릎 관절을 손으로 주무르며 난처한 얼굴을 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지금, 추미영 주변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앞가림조차 힘에 부치는 노인들 뿐이다. 이들에게 왜 그녀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일은 70대 노인에게 복잡한 전자기계와 매뉴얼을 던져주고 왜 못 써먹느냐고 화를 내는 일과 같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현실에 화가 났다. 인터뷰 중이라는 것도 잊은 채, 열이 받아 얼굴을 붉히며 깊은 숨을 여러 번 몰아쉬었다. 다행히, 폭주하려는 나를 연준이가 멈춰 세웠다. 테이블 식탁보 아래로 연준이의 발이 내 운동화 코를 경고하듯 여러 번 툭툭 쳤다. 고개를 드니, 연준이가 그만 하라는 듯,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미세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더 이상 인터뷰를 진행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만일, 지은 언니가 옆에 있었다면 두고두고 혼났을 법한 취재 태도였다.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터뷰의 주도권을 연준이에게 넘겼다. 연준이는 중년 여성들에게 내보이는 특유의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아줌마에게 질문을 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추미영 씨가 당시 동네에서 술집 하시던 아줌마랑 대판 싸웠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그런 일로 정신 병원에 강제 입원 당하는 건 너무 심한 처사 아닌가 싶어서요. 입원 기간도 근 10년이라고 하셨는데, 피해자랑 합의는 안 해 보셨어요?”

“에휴~, 우리라고 그 여편네 찾아가서 사정 안 해 봤을까? 지독한 여편네. 생판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한 건물에서 장사하며 알고 지낸 게 몇 년인데, 씨알도 안 먹혔어. 합의하고 싶으면 당시 돈으로 500을 내 놓으래. 근데, 그런 돈이 어디 있었겠어. 용 빼는 재주 있어? 돈 없고 백 없으면 당해야지. 나중에, 형님이 미영이 정신 병원비 대느라 얼마나 쎄가 빠졌는지 말도 못해.”

“다른 곳에 도움을 받아 보실 곳은 없었나요? 변호사라던지…”

“그럴 여유가 어디 있어. 변호사 사려면 그 당시에도 돈이 수백 깨졌는데 엄두도 못냈지. 변호사 살 돈이면 미영이 병원비 대는 게 훨씬 싸게 먹혔어. 연두가 없어지는 바람에 동네 민심도 흉흉했는데, 눈치껏 굴지 않으면 어쩌겠어. 여차하면 동네에서 쫓겨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 때 분위기가 좀 그랬어."


결국, 추미영은 동네북이자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연두의 실종으로 인해 뒤숭숭한 동네 분위기. 사람들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불안과 두려움이 전염되었을 것이다. 범인이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옆집 사람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그 말인 즉, 누구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이고, 최악의 경우, 죄 없이 감옥에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1980년대는 그게 가능한 시절이었다. 결국, 공동체가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을 제일 약한 상대인 추미영에게 투사하고 그녀를 제거하므로서 사람들은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동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약자를 상대로 다수가 비겁한 짓을 벌였다. 비록, 내가 직접 가담한 일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그 공동체의 일부였다는 점에서 수치심이 들었다. 침울해지는 나와 다르게, 연준이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인터뷰를 계속 진행했다.


“이번에 물어볼 건 추미영 씨 관련 질문은 아니고요. 저희 누나 기억하시죠? 임연두.”

“알지. 연두 없어진 것 때문에 동네에 그 난리가 났었는데 모를 리가 있나.”

“저희 누나 없어진 날, 혹시 동네에서 수상한 사람 본 적은 없으신가 하고요.”

“수상한 사람?”

“네, 낯선 사람이 영진빌딩 근처나 정육점 근처에서 어슬렁거리지는 않았나 해서요.”


정육점 아줌마라면 누군가 보았을 수도 있다. 내 기억에, 아줌마의 정육점은 생고기를 전시해야 하는 특성상, 가게 전면이 통유리였다. 상가 건물 모퉁이에 자리잡은 정육점은 만리장성 앞의 이면도로에서 대로변으로 꺾여 나가는 인도까지 양방향으로 외부를 볼 수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12시간을 운영하는 아줌마의 정육점. 종종, 등하교를 할 때 붙박이처럼 고기 진열대 뒤쪽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거나, 멍하니 가게 내부의 TV를 시청하는 아줌마의 모습이 벽에 붙은 풍경화처럼 익숙했다. 사실상, 그녀는 살아있는 CCTV나 마찬가지다. 잠시, 그날의 기억을 헤집던 아줌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외지인은 없었어. 이 동네가 뭐 좋은 곳이라고 사람들이 놀러 오겠어? 평소처럼 조용했지. 그리고, 만약에 있었으면 내가 모를 리 없어. 우리 미영이가 하도 사고를 치고 돌아다녀서 수시로 밖을 내다보거든. 미영이 밖으로 나갔다 하면, 형님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우리 가게로 전화하는 거야. 또 영진빌딩 근처에서 나 돌아다닐 게 뻔하니까 밖에 잘 살펴봐 달라고. 그날도 아마 미영이가 나왔을거야."

“그럼, 그날 저녁에 가게 근처에 있던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오후 7시부터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이 날래나? 어디 보자… 그 날 오후는 하도 추워서 길거리에 사람들도 별로 없었어. 그나마, 연말이라고 장사가 좀 되긴 했는데, 바쁜 거 어느 정도 마무리하니까 거의 8시쯤 됐던 것 같아. 그리고… 가만 있어보자….”


눈동자를 위로 치뜬 후, 한참, 게슴츠레 눈을 늘이던 아줌마가 더듬더듬 그 날의 일을 꺼내 놓았다.


“보통, 오락실 아저씨가 매일 저녁 8시 조금 넘어서 오락실 앞에서 담배를 폈어. 그래, 8시 조금 넘었겠네. 그맘 때쯤, 연속극 보는 시간이니까 맞을거야. 다음에는… 진희 아빠. 몇 시쯤 인지는 모르겠는데 9시 뉴스데스크 시작하고 한참 지났나? 진희 아빠가 영진 슈퍼로 가더라고. 아마, 소주 사러 갔을 거야. 매일 술에 절어 살았거든. 그 다음에는 나도 가게 문 일찍 닫고 저녁에 모임하러 갔지. 우리 영감 향우회가 근처 호프집에서 있었는데, 가게 문 일찍 닫고 바로 오라고 했거든. 이게 다야.”

“감사해요. 많은 도움이 됐어요.”

“에이, 뭘~, 암것도 아니야.”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아줌마의 개인 전화번호를 받고, 카메라 촬영일자 및 안내 사항을 말씀드렸다. 카메라를 들고 온다고 하니, 처음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 하겠다고 하셨다. 이에,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와 음성 변조가 들어가니 걱정 말라고 한참 설명을 하고 나서야 출연 허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정말이지? 내 얼굴 아무도 못 알아보지?”

“그럼요. 그리고, 인터뷰 허락하시면, 저희가 미영이 아줌마 면회 가실 수 있게 교통편도 제공해 드려요. 면회하시는 동안 아저씨 간병인은 물론 간병비 지원도 해 드리고요.”

“고마워. 내가 진희 덕을 이렇게 보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만리장성에 손님이 들어찼는지 기름진 음식 냄새가 룸으로 파고 들어왔다. 취재를 마무리하고 슬라이딩 문을 열자, 엄마가 계산대 앞에서 손님 응대를 하며 우리 쪽을 향해 외쳤다.


“언니, 점심 먹고 가. 내가 짬뽕 얼큰하게 내줄 게. 너희들도 먹고 가고.”


배는 고팠지만, 먹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빨리, 기름내가 전 만리장성을 벗어나고 싶었다. 정육점 아줌마에게 인사를 드렸다.


“아줌마, 죄송하지만, 저는 이만 회사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점심 맛있게 드세요.”

“아쉬워서 어떡해?”

“담에 또 뵐 게요.”


인사를 마치고 룸을 나오자, 연준이도 급히 아줌마에게 인사를 하고 따라 나왔다. 당연히, 녀석이 점심을 먹을 줄 알았기에 의아한 얼굴로 녀석에게 물었다.


“밥 안 먹고 가?”

“오래 앉아 있었더니 답답해서요. 같이 나가요.”


밥 먹고 가라는 엄마의 성화를 겨우 뿌리치고 만리장성을 나왔다. 오전과 달리, 하늘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습기를 한가득 머금은 구름에서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어두워진 날씨만큼이나 무거운 인터뷰였다. 밖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기분이 나아질 줄 알았건만, 습한 공기 때문인지, 숨을 들이쉴수록 가슴이 묵직해졌다.


“누나 괜찮아요?”

“그럼, 괜찮지. 너, 혹시, 괜히 나 때문에 밥도 못 먹고 나온 거 아니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연준이는 항상 조심스레 내 기분을 살폈다. 정작, 가장 힘든 사람은 연준이일텐데 내가 뭐라고 녀석이 눈치까지 보게 만들었다.


“알면, 밥이나 사요. 짜장면보다 더 비싼 걸로 사 먹어야지!”

“알았어. 먹고 싶은 거 골라.”

“그럼... 김치찌게요.”

“비싼 거 먹는다더니… 그나저나, 너 우리 아빠랑 인터뷰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온 김에 하고 가지?”

“지금 한창 바쁘실 때 잖아요. 점심 시간 끝나고 찾아 뵐려고요.”

“그래. 근데, 기대는 하지 마라. 엄마는 그나마 협조적인 것 같다만, 아빠는 얄짤 없어. 소리 지르고 쫓아내지 않으면 다행일걸? 귀찮고 골치 아픈 거 딱 질색하는 스타일이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누나, 밥 먹고 영진빌딩 같이 안 가 볼래요? 오락실 아저씨 연락처 알려면 그 건물 관리인한테 물어보라고 어머니가 그러셨잖아요.”


-지이이이이잉~. 지이이이이잉~. 지이이이이잉~.


어떻게 할 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손 안에 쥔 핸드폰이 사납게 울렸다. 액정을 보니, 메인 언니. 불길했다. 보통, 서브가 아닌 메인이 막내에게 다이렉트로 전화를 한다는 것은 뭔가 큰 일이 터졌을 때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으니, 메인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희야, 얼른 방송국으로 와. 응급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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