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인터뷰
“언니! 팔이 왜 그래요?”
출근해서 보니, 지은 언니가 팔에 깁스를 하고 있다. 위염. 역류성식도염. 장염도 아닌 깁스? 방송 작가라면 위의 three 염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고로, 내과 출입은 몰라도 정형외과 출입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너무 놀라 다그치듯 언니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언니는 지친 얼굴로 대답 대신 나를 편집실로 데려갔다.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종종 걸음으로 따라간 편집실에서 언니는 테이프 하나를 재생했다.
영상 속 놀이터에는 한 명의 여자 아이가 보였다. 양갈래로 머리를 묶고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한동안 모래밭에서 혼자 놀더니 이내 심심한 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모래 놀이터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네를 타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있었다. 소녀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모두가 그네를 타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데, 소녀의 행동은 사뭇 달랐다.
겁이 없는 것인지, 소녀는 한창 그네를 타는 아이의 정면에 마주 섰다. 잘못하면, 그네 타는 아이의 발에 맞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소녀는 개의치 않고 그네를 타는 중인 소년 앞에 위태위태하게 서 있었다.
“야! 비켜! 비키라고!”
소년이 소녀에게 악을 쓰듯 소리쳤지만, 소녀는 그런 남자 아이를 되려 여유 있게 비웃었다. 결국, 화가 난 소년이 그네를 멈추고 내려와 소녀의 멱살을 잡았다. 소년은 소녀보다 덩치도 크고 나이도 더 많아 보였다. 그럼에도, 소녀는 주눅은커녕 이를 드러내며 상대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이때부터 카메라에 지은 언니가 등장했다.
“얘들아, 싸우면 안 되지. 이거 놓고 말로 해. 너도 그네 타고 싶으면 저 친구들처럼 줄 서서 기다려야지.”
낯선 사람과 카메라의 등장에 아이들이 경계심을 보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지은 언니의 개입에 맥이 풀린 듯 남자아이가 거칠게 소녀를 놓아주었다. 결국, 양갈래 머리 소녀만 남고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안녕? 언니는 이지은이라고 해. 네가 화진이니?”
“…”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 옆에 말을 건 사람이 있던 말던, 무작정 그네만 타기 시작했다. 그네가 앞뒤로 흔들릴 때마다 소녀는 위태롭게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소녀가 추진력을 더할수록 땅에 박힌 절제 기둥이 헐겁게 흔들렸고, 위험을 감지한 지은 언니가 외쳤다.
“화진아, 살살 타. 위험해.”
지은 언니의 우려에도 화진이는 더욱 박차를 가했고, 어느 순간, 몸이 그네의 궤도에서 벗어나 공증으로 튀어 오르듯 날아올랐다. 동시에, 조연출 남기현의 당황하는 목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흔들리며 화면도 정지했다.
“애가 바닥으로 떨어지는데 어떡해. 받아야지.”
“아무리 그래도… 괜찮아요? 많이 아팠죠.”
“말도 마. 죽는 줄 알았어.”
“뼈가 부러진 거에요?”
“아니, 금만 살짝 갔어.”
편집실을 나오며 어제의 상황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범석 PD, 남기현 조연출, 지은 언니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푸른 언덕 보육원으로 향했다. 생전, 조하대가 후원을 했던 시설로, 후원을 받은 아이에게서 그의 미담을 들으려는 목적이었다.
PD는 시설의 원장님과 아이에 대해 얘기 중이었고, 아동심리상담 전문가는 세미나 일정 때문에 추후에 보육원에서 합류할 예정이었다. 그 사이, 조연출과 지은 언니는 아이의 일상도 촬영하고 얼굴도 익힐 겸 보육원 운동장에서 촬영 중이었는데 사고가 발생했다. 결국, 지은 언니는 제작진 차량을 운전해주는 기사님과 함께 병원으로 가 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진짜 다이나믹 했던 하루였네요.”
“맞아, 이 나이에 깁스까지 하고. 근데, 인터뷰는 따지도 못했어.”
“왜요? 이 PD랑 조연출은 남아 있었잖아요.”
“애가 말을 안 해.”
“왜요? 설마, 애가 인터뷰를 거부해요?”
“그런 것 같아. 아니… 에이, 나도 몰라.”
평소와 다른 지은 언니의 모습이 생경했다. 세상만사 단순하고 확실한 지은 언니가 이렇게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복잡다단한 지은언니의 얼굴에는 얼핏 죄책감이 엿보이기도 했다. 할 말은 꼭 하고 살아야 하는 지은 언니의 성격을 알기에 가려운 곳을 긁어 보았다.
“왜 그래요? 뭔데요?”
자유로운 한 손으로 푸석한 얼굴을 쓸어내린 지은 언니는 안타까운 듯 아이에 관해 말해주었다. 7살에 보육원에 들어온 화진이는 친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화진이가 갓난아이일 적에 엄마는 집을 나갔고, 중증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빠는 건설현장에서 노동을 하다 자재에 깔려 사망했다. 맡아 줄 일가친척이 없었던 화진이는 결국 푸른 언덕 보육원에 입소했다. 하지만, 장기간 폭력에 노출된 후유증 때문인지, 입소 초기,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화진이를 안타깝게 여긴 원장님은 보육원 후원자인 조하대를 연결해 주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아 본 경험이 없는 화진이는 자신을 아껴주고 보살펴주는 조하대를 잘 따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데면데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 사이는 친밀해졌고, 종종 놀이공원이나 수영장도 같이 다녀왔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점차 짜증과 불만이 많아지고 주변 친구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과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내는 식으로 문제를 마무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화진이는 점점 겉돌았고, 또래는 물론 시설 내의 선생님들 에게까지 욕설을 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물건을 던지거나 부수는 일은 기본이고 이제는 친구들을 때리기까지 했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으로, 사춘기가 일찍 왔다고 치부하기에는 행동양상과 감정기복이 평균치를 심하게 벗어나 있었다. 마침, 어제 시설을 방문한 아동심리상담 전문가에게 화진이를 보여주고 상담을 했는데, 치료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냈다. 원인 파악을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주기적인 상담과 치료가 필수다. 하지만, 후원자도 사망하고 없는 지금 화진이의 심리상담치료 비용을 부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분이 안 좋았어. 안 그래도 불쌍한 애인데, 우리 생각만 하고 찾아간 게 좀 부끄럽기도 하고, 아픈 애를 그냥 두고 올 수밖에 없는 게 좀… 으으으! 내가 돈만 많으면 진짜 도와주고 싶다.”
“언니 마음은 잘 알겠는데, 그래도 언니 팔이나 먼저 신경 써요.”
“야! 넌 참… 가끔 보면, 애가 되게 차갑더라? 화진이 안 불쌍해?”
“불쌍해요. 그렇다고 한 개인이 책임져 줄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안됐지만, 더 좋은 후원자가 나타나길 기도해주는 수 밖에요.”
“와~ 씨~! 아주 찬바람 쌩쌩 분다. 허진희! 난 이제부터 다친 팔 신경 써야 돼서 프리뷰 못하니까 네가 다 해!”
심사가 뒤틀린 지은 언니가 나를 지나쳐 쌩하니 가버렸다. 멀어져 가는 지은 언니를 붙잡고 싶었다. 사실, 내 진심은 그게 아니라고. 나도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하지만, 생판 모르는 아이보다 언니가 더 걱정돼서 그랬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내 진심을 전하는 일은 항상 어려웠다. 누군가는 내가 너무 잘나서 콧대만 높다고 욕을 했지만, 본질은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본모습을 타인에게 들키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나마, 이런 나를 이해해주던 지은 언니가 화를 내고 가버리니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막막하고 두려웠다.
‘한심해.’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서 죽고 싶었다. 나이를 이 만큼이나 먹고도 누군가에게 심리적으로 기생하지 않으면 혼자 설 수 없는 내가 초라하고 구차하게 느껴졌다. 최근 들어, 모든 일이 쉽지 않았다. 추미영에 관한 취재를 오롯이 담당하는 데서 오는 중압감 때문인지, 연준이가 등장하며 연두의 실종 사건을 다시 되새김질해서 인지는 잘 모르겠다.
전화기가 울렸다. 연준이었다. 받고 싶지 않았다. 안 받으면 끊겠지 싶어, 녀석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의미 없는 겨루기를 시작했다. 통화하기 싫었지만 녀석은 끈질겼고,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기와 실랑이하는 사이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앉았다.
-여보세요.
-누나,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미안, 회의 중이었어.
-혹시, 누나 어머니한테 연락 받으셨어요?
-아니, 왜?
-누나가 구한 추미영 사진 핸드폰으로 어머니께 보내 드렸더니 누군지 아시겠데요. 그래서, 지금 만리장성으로 갈 건데 누나는 어떻게 하실래요? 예전에 인터뷰하려다 못한 정육점 아주머니도 오신데요.
-어, 당연히 가야지.
-그럼, 한 시간 후에 만리장성에서 봐요.
여러 곳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가장 가까운 취재원인 엄마에게 추미영 사진을 보여주지 못했다. 프리뷰를 포함해서 할 일이 산더미지만, 다시 집으로 가야 했다. 메인 언니에게 허락을 받고 방송국을 나왔다. 버스를 타고 만리장성으로 가는 중에 지은 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야, 내가 싫은 소리 좀 했기로서니, 나한테 인사도 안 하고 가냐? 나쁜 계집애.
-미안해요.
-됐어. 하루이틀도 아니고. 대신, 이번 회차 프리뷰는 네가 다 해. 진짜다! 안 도와줄 거야!
-네. 잘 쉬어요.
언니와 문자를 주고받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지니 일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 시간대가 한참 지난 버스 안은 한산했다. 대략적이라도 정보를 파악해야 겠다 싶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추미영 사진 보니까 누군지 알겠어?
-어, 니도 알 건데? 기억 안 나나?
-내가 그 여자를 안다고?
-그래, 니 어렸을 적에 그 여자 처음 보고 귀신 봤다고 집에 와서 난리난리 쳤는데? 저번에 연준이 왔을 때 말 한번 안했나~. 그 여자 때매 니 자다가 이불에 오줌도 쌌잖아.
-그럼, 그 때 엄마가 말한 미친년이 추미영이 맞았네?
-맞다. 근데… 니 정육점 아줌마 앞에서 말조심해라. 사실, 정육점 언니 시조카가 추미영이라 카드라. 집 안에 그런 우환이 있어가지고, 저번에 내가 불렀는데도 못 온 거야. 사실, 오늘도 언니가 안 올라카는 거를 내가 졸라가지고 겨우 온 거다. 어제 그 언니 만나서 조카 사정 들어보니까, 사정이 딱해도 너무 딱한 기라. 그러니까, 연준이도 그렇도 니도 그렇고, 정육점 언니 너무 몰아붙이지 마라. 알긋나?
볼륨을 최대한 줄였는데도 싸울 듯 카랑카랑한 엄마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버스 내부를 가득 채웠다.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을 듣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더 이상의 통화는 불가능했다. 결국, 출근한 지 두 시간 만에 다시 집으로 왔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만리장성은 대로변 사거리에 위치한 건물 2층에 있다. 식당 내부는 아직 한가했다. 모임용 룸으로 들어가니 원탁 테이블에 엄마와, 연준이 그리고 정육점 아줌마가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몰라보겠다. 이제 완전 아가씨네.”
근 10년 만에 본 정육점 아줌마는 이제 거의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구부정한 어깨,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많은 곱슬머리 그리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불어난 살. 그로 인해, 아줌마에게서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천식 환자처럼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언니, 나 이제 영업 준비해야 돼서 나가 보께. 애들한테는 아는 대로만 말해. 연준이가 기자니까 기사 잘 써줄 거야. 지은 죄가 중해도 사람들이 사정 알면 덮어놓고 욕 못해. 나도 사정 몰랐을때는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지금은 아니야. 응?
정육점 아줌마를 대하는 엄마의 말투가 다정하고 정겨웠다. 난생 처음 해보는 인터뷰가 주는 부담감, 거기에, 살인 용의자의 친인척이라는 입장이 주는 난처함을 충분히 배려한듯 엄마는 아줌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엄마의 말에 용기를 얻은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엄마가 나간 후, 드디어,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우리 미영이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