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10화-검은 개

by 해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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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환대에 얼떨떨한데 술까지 들어가니 알딸딸해졌다. 주거니 받거니, 술잔이 돌자,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풀어졌고 그간 못다한 얘기들이 흘러 넘쳤다.


“야, 허진희! 내가 너한테 얼마나 섭섭했는지 알아? 연두만 친구야? 나는 친구 아니야?”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혜영이의 얘기는 이랬다. 연두가 실종된 이후, 내가 변했다고 했다. 친구들과 노는 횟수도 줄어들고, 말수도 점점 줄어들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는 멍하니 있다 선생님께 야단맞는 일도 흔했고, 학급활동도 하는 둥 마는 둥 해서 아이들로부터 소외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친한 친구의 실종 때문에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아 혜영이가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다, 혜영이네가 초등학교 졸업이후 이사를 가면서 연락이 아주 끊어지게 된 것이다.


“내가 그랬어? 이상하게 기억이 잘 안 나. 네가 말해주니까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됐어, 다 지난 일이니까 내가 봐준다. 야, 우리 오랜만에 만났으니까 기념사진 하나 찍자. 내 디카가 어디 있더라?”


혜영이가 가방을 한참 뒤적이더니 최신 디지털 카메라를 꺼냈다. 요즘, 유행하는 싸이월드에 한창 사진을 업로드 하는 것 같은데, 오늘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었다. 개인적으로, 사진 찍히는 걸 즐기지 않아 내키지 않았지만, 일하러 온 만큼 최대한 장단을 맞춰야 했다.


“엄마가 진희랑 연준이 사이에 앉아. 자~! 하나, 둘, 셋 하면 김치~ 하는 거야. 하나, 둘, 셋. 김치!”


-찰칵!


재회 기념 사진 촬영이 끝나자, 또 다시, 술잔이 돌았다. 이 집 모녀는 술하고 원수를 졌는지, 한번 마셨다 하면, 술병에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줄기차게 마셨다. 술 좋아하는 이 PD 덕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평소, 술이라고는 입에도 대본 적 없는 내가 이렇게라도 마실 수 있는 건, 제작팀 회의를 빙자한 술자리 덕분이다.


1년간 막내작가로 있다 보니, 말술은 못 마셔도 분위기 맞춰주는 수준까지는 된 것이다. 술잔을 돌리며 서로 근황얘기도 하고 현재 아줌마의 고충도 들어주는 등 워밍업은 모두 마쳤다. 이제 용건에 들어갈 차례. 추미영의 사진을 혜영이 엄마에게 들이밀었다.


“아줌마, 혹시, 이 사람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처음, 대수롭지 않게 사진을 받아 든 혜영이 엄마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묘하게 일그러졌다. 화끈하고 감정표현이 솔직한 아줌마의 성정으로 보아, 모른다는 말로 퉁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와 연준이는 아침 드라마에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극적인 순간에 몰입하듯 아줌마의 입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아줌마는 목이 마른 지 앞에 있는 맥주잔을 한 번에 비운 후, 갑자기, 혜영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혜영아, 안주 떨어졌다. 저 밑에 시장 가서 김천 할매 파전 좀 사와라.”

“김천 할매? 엄마! 거기는 지금 가면 1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돼!”

“그럼, 무릎 아픈 이 어미가 가리? 귀한 손님들 오셨는데 성남 시장 별미는 먹이고 보내야 될 꺼 아니야~!”

“그건… 그렇지. 칫! 알았어!”


혜영이가 툴툴거리며 미장원을 나가자, 아줌마가 그런 혜영이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통유리 너머로 혜영이가 사라지자, 아줌마는 착잡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진희, 너 내가 왜 그 동네 떴는지 아니?”

“아니요.”


철없던 시절, 혜영이 엄마는 다방에서 일하다 알게 된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하지만, 혜영이가 젖먹이 때, 남자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다고 했다. 막막했던 아줌마는 무슨 일이든 해야 했기에,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우여곡절 끝에 가게를 하나 차렸다. 일명, 방석집이라 불리는 술집으로 만리장성과 같은 상가 건물 안에 있었다.


그곳에는 온갖 종류의 남자들이 발을 들였다. 술을 마시러 오는 남자, 욕망을 풀러 오는 남자, 하소연을 하러 오는 남자 등등. 아줌마 입장에서는 어떤 인간이든 상관없었다. 내 새끼를 굶기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어떤 인간이든 상대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혜영이가 국민학교를 들어가고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 우리 아빠는 어디 있어?”

“원래 없어. 밥이나 먹어.”


무시하고 넘겨버린 대가였을까? 혜영이는 가게로 오는 단골 손님들을 아빠라고 여기며 그들을 따랐다. 어떤 날은, 아빠가 회사원이었다가 어떤 날은 교수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혜영이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거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되려 다른 문제를 낳았다. 나이에 비해 조숙한 신체를 가진 혜영이를, 소위 아빠라고 불리던 손님들이 추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혜영이는 그들을 믿고 따랐는데 돌아온 것은 그런 믿음을 이용한 추악하고 비열한 짓거리였다. 아줌마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었다. 딸을 지키고자 시작한 일이 딸을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아줌마에게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배운 것도 아는 것도 없었다. 결국, 그렇고 그런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가게로 오는 손님 중에 돈 많은 손님을 물색했다. 유부남이고 자식도 있는 사람이었지만, 아줌마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생존이 걸린 일이기에 절박한 마음으로 남자를 만났고 나름 잘 하고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남자와 사귄 지 1년이 되는 어느 날, 그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흘러나왔다.


“신경 쓰이는 여자가 있어. 여러모로.”


기시감이 느껴졌다. 아줌마는 바람 피우는 남자의 눈빛과 말투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고 했다. 혜영이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여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남자는 의외로 순순히 혜영이 엄마에게 여자에 대해 말해 주었다.


“우리 동네 미친년? 그 년?”


혜영이 엄마가 발끈하자,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식 웃기만 했다. 그 의뭉스러운 미소가 아줌마의 마음에 불안과 질투의 씨앗을 퍼뜨렸다. 어렵게 구한 돈줄을 동네 미친년 따위에게 뺏길 수 없었다. 하지만, 본처도 아닌 아줌마가 동네 미친년을 잡도리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마도 연두가 없어지고 얼마되지 않은 한겨울이었을 것이다. 연탄을 내 놓으러 가게 밖으로 나갔다가 그 동네 미친년과 마주쳤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머리끄댕이를 쥐어 뜯고 싶었으나 명분이 없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미친년이 친절하게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가게로 다시 들어가려는 혜영이 엄마에게 다가와 여자가 은밀히 속삭였다.


“딸애 간수 잘해요. 위험해요.”


덜컥 겁이 났다고 했다. 혹시라도, 이 여자가 혜영이가 당한 일에 대해 뭘 알고 하는 얘기인가 싶어 두려웠다고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연두가 실종된 지 얼마되지 않은 터라, 딸 가진 부모라면 들을 수 있을 법한 얘기였다. 그러나, 혜영이 엄마 입장에서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한다.


두려움은 곧 폭력으로 표출되었다. 여자에 대한 질투와 딸에게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날까 싶은 걱정에 육탄전을 시작했다. 여자의 산발한 머리를 휘어잡고 돌리는 와중에 미친년의 낯짝을 보았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한 번쯤 딴 생각을 품고 싶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아줌마에게 열패감을 안겨주었던 그 여자가 사진 속에 있다.


“이 여자 이름이 추미영이야?”

“네.”

“이 여자가 뭘 어쨌길래?”


살인사건 용의지라고 말해주니, 아줌마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상당히 놀란 듯 한동안 침묵이 미장원 내부를 가득 채웠다. 잠시 후,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럼, 추미영이랑 그 남자분이랑 둘 사이에 진짜 뭔가 있기는 있었던 건가요?”

“에휴, 있기는 뭐가 있어. 내가 잘못 안 거였어. 그 여자는 아무 상관없었고, 딴 년이랑 바람 피고 있더라고. 내가 애먼 사람만 잡은 거지. 그래서 벌받은 건가? 그 여자랑 싸우고 한 동안 병원신세 좀 졌지.”

“얼마나 다치셨길래요?”

“뒤로 넘어져서 꼬리뼈가 부러졌거든. 그 여자 아귀힘이 장난 아니더라고.”

“그럼, 그 남자는 왜 그런 말을 한 거죠?”

“듣고 보니 그렇네…? 에휴~! 근데 별로 신경 쓰지 마. 그 인간이 원래 좀 그랬어. 능구렁이 같은 구석이 있는 남자라 연애하면서도 이리저리 많이 떠 보더라고. 나중에 생각해보면 기분 더러워지는 일도 더러 있었는데, 내가 그런 일로 끙끙 앓는 스타일도 아니잖아. 얌체 짓 하는 거 뻔히 알면서도 통 크게 넘어가줬지. 돈 많은 줄 알고 만났는데, 쫌생이도 그런 쫌생이가 없었어. 나 같이 없는 여편네 빼먹을 줄만 알았지, 뭐 하나 통 크게 갖다 준 것도 없었어. 기껏해야, 우리 혜영이한테 옷 몇 벌, 장난감 몇 개 사다 준 게 다야. 진희야, 내가 우리 혜영이한테도 누누이 말했지만, 남자 잘 만나라. 안 그러면, 내 꼴 난다.”


추미영 에피소드가 조금 들어있긴 했지만, 결국, 혜영이 엄마의 험난한 인생사와 연애사를 오랜 시간에 걸쳐 들어버린 꼴이다. 마지막에, ‘남자 잘 만나라.’라는 통속적인 교훈에 이르자 조금 허탈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조그만 단서라도 찾기 위해 한 번 더 물었다.


“그 외에 추미영에 대해 더 기억나시는 건 없고요?”

“없어. 나야 가게 밖으로 나갈 일이 어디 있었겠어? 밤에는 장사했고, 낮에는 자느라 그 여자 볼 일도 없었지. 한 겨울에, 서로 머리채 잡고 싸운 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네… 암튼, 인터뷰 응해 주셔서 감사해요.”

“뭘~, 젊은 사람이 일한다는데 도와야지.”

“근데, 아줌마는 어떻게 미용실을 하게 되신 거예요?”

“언제까지 그런 환경에서 애를 키울 수도 없잖아. 그래도, 그 쪼잔한 인간이 막판에는 도움을 좀 주더라고. 내가 꼬리뼈 부러져서 가게문도 못 열고 있을 때, 병문안 와서는 한몫 챙겨줬어. 누구 때문에 일도 못하고 병원 신세 지는 지, 자기도 알았던 거지. 그 때 이후로, 가게는 조금씩 정리하면서 미용기술 배웠어.”

“혹시, 지금도 그 분이랑 연락하세요?”

“연락은 무슨! 조강지처한테 들켰는지 병원에 와서 앞으로 못 만난다고 못을 박고 가더만. 바깥으로 그렇게 나돌면서 본처는 또 엄청 무서워했어. 오죽하면, 나랑 놀다가도 마누라 전화오면 한 밤중에도 쪼르르 집으로 달려 갔어. 그 때는 휴대폰도 없을 때라, 건물 관리인 통해서 우리 영업장으로 전화가 왔거든. 야근한다고 거짓말 치고는 나랑 놀았던 거지.

“같은 동네 분이셨어요?”

“집은 강남에 있었어. 직장이 그 동네 있어서 자주 만났던 거지. 너도 알 거야. 영진 빌딩. 거기 건물주였어.”


추미영에 관한 취재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았다. 이제, 연준이 차례였다. 연준이가 연두의 실종 당시 상황을 아줌마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아줌마가 이번에는 소주를 맥주 글라스에 반쯤 붓고 원샷을 한 후 말했다.


“연두 없어진 거는 진짜 안 된 일인데, 난 진짜 아무것도 몰라. 우리 혜영이가 같이 좀 놀았다고 경찰이 조사하러 온 모양인데, 그 때 혜영이는 지 이모네 있었어. 근데, 여자 혼자 애 키우면서 사니까 인간들이 날 깔봤던 거지. ‘그 날, 뭐하고 있었냐! 술 집 하니까 이상한 인간들 들락거리지 않았냐!’ 하면서 사람을 들볶는데 아주 미치겠더라고. 덕분에, 사생활 다 까발려지고 엄청 스트레스 받았어.”

“괜히 제가 다 죄송하네요. 아줌마.”

“에이, 아니야. 연준이네 네가 무슨 잘못이야. 누군지 몰라도 연두 데려간 인간이 썩을 놈이지.”

“아줌마, 정말 죄송하지만 같은 질문 좀 할게요. 혹시라도, 누나가 실종되던 날 영업장에 수상한 사람이 출입하거나 하지 않았나요? 크리스마스 이브라 동네 사람들 말고 외지인도 많았을텐데요?”

“난 몰라. 그날 가게 영업 안 했거든.”

“왜요?”

“뭐, 이제 니들도 다 컸으니까….”


혜영이 엄마가 약간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나도 여자라 그 날 만은 좋아하는 사람이랑 있고 싶었어. 그래서, 가게 문 닫고 애인이랑 같이 있었어. 아예, 그럴 작정으로 혜영이도 지 이모네로 며칠 전에 미리 보내놨고. 그런데, 이 썩을 인간이 한창 술 잘 마시다가 건물 관리인한테 전화 받고 오밤중에 튀었잖아. 나 혼자 헛물 켠 거지.”

“영진 빌딩 건물주요?”

“어, 맞아, 그 인간.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마누라한테 전화 온 게 아니라, 바람 피는 다른 년 한테 가려고 꼼수 부린 것 같아. 어쩌겠어. 혼자 술 먹고 뻗어서 잤지. 내 신세가 처량하고 또 처량해서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못 버티겠더라고. 근데, 다음 날 늦게 일어나보니까, 연두가 없어졌다고 온 동네가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어. 나도 깜짝 놀랐지.”


혜영이 엄마의 얘기를 들으니, 어릴 적, 기억의 편린들이 차츰 되살아났다. 그럼에도, 모자이크의 일부분만 보이듯 드문드문 장면들이 떠올라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촬영한 프로그램의 초기 부분만 통 편집된 듯 기억나지 않는 과거에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얘기해 주셔서 감사해요, 많은 도움이 됐어요. 아줌마.”

“아니야. 별 도움도 안 되는 얘기였는데, 뭘~!”


짐심으로 감사해하는 연준이와 미안해하는 혜영이 엄마 사이에서 나 혼자만 정신을 못 차리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아이고! 진희, 얘 눈 풀린 거 보니까 취했나 보다.”

“그러게요.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벌써 10시네? 그래, 어쩔 수 없지. 혜영이 이 기집애가 서운해하겠다. 다음에 꼭 다시 와. 그 때는 미리 파전 사다 놓을께.”

“네.”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치켜 올리고 혜영이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연준이의 부축을 받으며 골목길을 내려와 택시를 잡아타자 급격하게 졸음이 몰려왔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진 몸이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 아득해지는 의식 너머로 무언가 천천히 다가왔다. 꿈인 것도 같고 현실인 것도 같다.


칠흑같이 어둡고 슬픈 눈을 가진 생명체.


검은 개가 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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