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16화-영진빌딩

by 해금이


-이윤석 군 유괴범 최덕수는 오늘 경찰에서 지금까지의 진술을 번복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하면서 자신이 이윤석 군을 목졸라 숨지게 한 뒤 사체를 강원도 홍천 야산에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똥물에 튀겨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 애가 뭔 죄가 있다고~! 쯔쯧!

“그러게, 이제 애 부모는 어떻게 살아. 벼락 맞아 죽을 놈 같으니라고.”


학교를 마치고 가게로 들어가니 늦은 점심을 먹으로 온 손님 두 명이 TV 뉴스를 보며 유괴범에게 욕을 퍼붓고 있었다. 1980년대 후반. 하루가 멀다 하고 텔레비전에서는 유괴 소식이 들려왔다. 주로 돈이 목적인 범행으로 부잣집 아이들이 타겟이었다.


유복한 집 아이들이 주된 범행대상이라는 점에서 우리집을 포함한 이 동네 부모들은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모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집이 대부분이라 유괴범에게 줄 돈은 먹고 죽으려 해도 없었다. 그럼에도 자식을 둔 부모인지라, 저런 종류의 뉴스가 나오면 아빠, 엄마는 모르는 사람은 절대 따라가지 말라며 한 번씩 주의를 주시곤 했다. 사실, 말이 주의지 협박이나 으름장에 더 가까웠다.


‘따라가면 무조건 죽는 거야. 다시는 엄마, 아빠 못 봐.’


무섭기는 했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다. 동생들 때문에 집 안에 천덕꾸러기가 된 나로서는 부모님의 극단적인 발언조차도 나를 사랑하는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날은 이상했다. 유괴범의 자백 소식이 실시간 속보로 흘러나오고 있음에도 부모님은 조용했다.


그 날의 가게 분위기도 왠지 평소와 달랐다. 뒤숭숭한 뉴스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카운터에 앉은 엄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플라스틱 컵에 물을 따라 마시며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한껏 찌푸린 양 미간이 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빠와 또 싸운 것임에 틀림없다.


자연스레 주방에 있는 아빠에게 눈이 갔다. 주방 안쪽으로 들어가 도시락 통을 개수대에 넣으며 아빠의 기분을 살폈다. 평소와 다름없이 채소를 다듬고 있었지만 주방을 메운 공기가 무거웠다.


확실히 이상했다. 아빠와 엄마의 싸움은 우리집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빠가 엄마에게 폭언을 하거나 TV를 집어 던지는 등의 폭력적인 방법으로 마무리된다. 엄마는 그런 아빠의 폭력을 묵묵히 견디거나 침묵으로 대응한다.


즉, 싸움이 발발하면, 엄마는 가만히 있고 아빠 쪽에서 동네사람 다 들으라는 듯이 구구절절 설명했기 때문에 어린 나조차도 대충 다툼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싸움 중에 엄마를 향한 아빠의 비난과 조롱은 주변에 사람이 있든 없든 지속되었다. 그래서, 부부싸움이 나면 다음 날 동네방네 우리집 소문이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오늘은 아빠도 조용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불안했다. 불안의 친구인 긴장이 찾아오며 갑자기 배가 싸르르 아파오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어 주방 뒷문으로 나가 화장실을 가려는데 눈에 익은 종이 여러 장이 구겨진 채 바닥에 나뒹구는 것이 보였다.


‘청운각 신장개업’


어제 혜영이네 가게에서 봤던 그 전단지였다. 그제서야, 혜영이 엄마가 말했던 ‘큰 일 났다’의 의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원피스에 정신이 팔려 잊고 있었지만 전단지를 처음 본 순간 가슴깨를 죄여왔던 이유가 이것인가 싶었다. 본능이 경고를 보낸 것이다.


이 동네의 유일한 중국집인 ‘만리정성’에 드디어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경쟁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곧 우리 가게에 손님이 줄 것이란 얘기이고 그렇다면 안 그래도 팍팍한 우리집 살림이 더 쪼그라들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그쳤다면 나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이겠지만, 늘 불안을 안고 살아왔던 어린 시절의 나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의 가지를 뻗어 나갔다. 장사가 안되 가게가 망하면 또 다시 부모님과 떨어져 친척집을 전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럼 또 싫은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일까?


항상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하는 나의 버릇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불안했지만 막상 부모님에게 묻기는 껄끄러웠다. 또 다시 친척집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을까 겁이 났었던 것 같다. 며칠 간,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속만 태웠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인지라 시간이 흐르자 불안감도 점차 옅어지기 시작했다.


저녁 시간, 가게에는 손님이 변함없이 들어찼고 다시 친적집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말도 부모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평온한 상태로 돌아갔고 저녁 시간만 되면 집 앞 영진 빌딩 주차장 램프 앞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았다.


한 겨울, 영진빌딩 뒤편의 주차장 램프 주변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눈이 오면 램프의 내리막길은 눈썰매장이 되었다. 포대자루나 박스를 가지고 와서 신나게 썰매를 탔다. 지금이야 주차장 입구에 경고등이 있어 출차 시 사람들이 차를 피해갈 수 있게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장치가 전무했다. 그런 이유로, 영진 빌딩 주차장 입구에서 놀던 아이들이 차에 치어 크게 다치는 사고가 왕왕 있었다.


이런 사고가 잦았기에 영진빌딩 경비원 아저씨의 업무 중에는 주차장 근처에서 노는 아이들을 쫓아내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도 경비원을 주로 하는 연령대는 젊은 남성보다 중년이나 노년에 이른 남성들이 더 많았다. 당연히, 관절에 무리가 오는 나이대의 아저씨들이 쌩쌩하고 날랜 아이들을 당해낼 리 없었다.


경비 아저씨가 아이들을 잡으러 오면 아이들은 더 신이 나서 원숭이 날 뛰듯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아저씨가 아무리 큰 소리로 혼을 내며 쫓아도 소용없었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더욱 흥이 돋아서 경비 아저씨를 상상 속 악당으로 여기며 달아났다.


영진 빌딩 주차장 램프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놀이는 또 있었다. 바로, ‘누가 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나’ 였다. 평지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곡선형 램프 양쪽은 콘크리트 벽이었는데, 오른쪽 벽은 건물 1층 바닥과 연결되어 있었다. 폭 1m 남짓한 1층 바닥은 콘크리트 벽 난간 모서리에서 아이들이 뛰어내리기 위해 대기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경사로 탓에 램프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수 있었는데, 대부분 놀이는 아무 탈 없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종종 자신이 슈퍼맨이라도 된 듯 하늘을 날 수 있다며 겁 없이 뛰어내리는 아이들이 있었고, 그런 경우, 예외 없이 다리가 부러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잔디 머리에 단단한 체구를 가진 남자 아이 한 명이 나타났다. 영진빌딩은 나의 놀이터이자 홈그라운드라 내가 모르는 동네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잔디 머리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뱃살이 투실투실한 아이가 단차가 제일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고 하니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잔디머리에게 향했다.


잔디머리는 시선을 즐기듯 보란듯이 난간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이제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난간에 멈춰 섰다. 아이가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한 편으론 진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위험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제일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목격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모여든 아이들 모두 숨을 죽이며 느닷없이 등장한 슈퍼맨의 비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잔디머리가 뛰어내리기 전 준비운동을 하며 아이들의 속을 바짝바짝 태웠다. 나 또한 숨을 꼴깍 삼키며 잔디머리가 영웅이 될지 허풍쟁이가 될지 예의 주시 중이었다.


“뛰어내린다~! 슈퍼맨~! 빠라….”


아이가 도움닫기를 하기 위해 무릎을 구부렸다 펴는 순간, 슈퍼맨의 메인 테마는 끝을 맺지 못한 채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언제 나타났는지 또 다른 뉴페이스가 잔디머리의 뒷덜미를 잡아채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임연준! 한번 더 말썽 부리면 내가 죽는다고 했어? 안 했어?”


똑단발에 88 올림픽 호돌이 마스코트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여자아이가 잔디머리를 족쳤다. 하얀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해 야무지게 생긴 아이는 짐가방을 끌 듯 잔디머리를 질질 끌고 갔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이들은 멀뚱히 서 있다가 상황이 마무리된 것을 깨닫고는 아쉬운 듯 무리로 되돌아갔다.


나 또한 불발된 슈퍼맨 놀이에 김이 빠져 공터에서 놀고 있는 동생들에게 돌아갔다. 자리로 되돌아 가면서도 내내 호돌이 티셔츠를 입은 여자 아이가 생각났다.


저 아이는 어쩜 저렇게 똑 부러질 수 있을까? 내 눈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허세를 부리는 잔디머리보다 누나인 그 아이가 더 슈퍼맨처럼 보였다. 다리가 부러질지 모르는 동생을 위험에서 구해주는 진짜 영웅. 나에게도 저런 언니가 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덜 외롭고 든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디머리가 부러웠다.


뭘 해도 뒤에서 나를 지켜주는 백이 있다는 것. 그건 나 자신을 지켜주는 일종의 방패 같은 거였다. 방패가 있는 아이는 어디를 가든 자신감이 생긴다. 하지만, 나에겐 그 방패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동생들의 방패가 되어 주어야 했다. 문제는 내가 동생들의 방패가 되어 주기에는 한없이 약하고 초라하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동생들은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고, 동생에 대한 사랑과 애정 따위 없었던 나에게 둘이나 되는 동생들은 부모님이 일을 하는 동안 돌봐야 하는 짐이었다. 그런 내가 동생들의 방패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일단, 나 조차도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했다.


“퍽!”


멍하니 서 있는 내게 갑작스러운 충격이 가해졌다. 눈이 불이 번쩍할 정도로 강한 통증에 머리를 감싸 쥔 채 고개를 드니, 오줌싸개 까까머리가 바로 앞에서 살벌하게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너 말하면 죽는다고 했다.”


은근하게 내리까는 목소리가 험악했다. 또 다시 간이 쪼그라들었다. 그 날 이후, 까까머리가 오줌을 지렸다고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심지어,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아 바지에 묻은 오줌이 내 것이라는 누명까지 뒤집어썼다. 이런 상황을 알리 없는 까까머리가 또 다시 입단속을 시키며 나를 위협하고 지나갔다.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듯 앞으로 걸어가면서도 고개를 뒤로 돌려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억울해서 금방이라도 울고 싶었지만, 녀석의 눈빛이 너무 매서워서 눈물 한 방울 흘릴 수도 없었다. 그냥 다른 아이들처럼 울면서 부모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면 되었을텐데,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던 부모에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만일, 이런 일로 귀찮게 하면, 또 다시 나를 친척집으로 보내 버릴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울 듯 떨리는 하관을 가다듬고 동생들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까까머리와 더 이상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동생과 함께 가게로 들어가니, 홀을 가득 메운 춘장과 기름냄새가 코 끝으로 스며들었다.


왜 벌써 들어왔냐는 엄마의 눈 흘김에 안 그래도 쪼그라든 간이 몸 속에서 자취를 감추는것 같았다. 아무 말 못하고 서 있는 나에게 주방 구석에 있는 창고방이라도 들어가라며 엄마가 눈짓을 한다. 눈치를 보며 동생들과 창고방으로 들어가 몸을 옹송그렸다.


뻥 뚫린 가슴깨로 찬바람이 휘몰아치며 시린 하루가 지나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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