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17화-친구

by 해금이

그날 이후, 까까머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괴롭혔다. 처음엔, 본인의 치부를 덮기 위한 입단속이 목적이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단순한 괴롭힘으로 변질되었다.


“얼레리 꼴레리~! 못 생겼데요~! 못 생겼데요~!”


폭력의 기억은 강렬했다. 명치와 머리를 강타했던 통증은 내 안에 까까머리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그래서인지, 까무잡잡한 얼굴에 눈이 찢어진 비슷한 생김새의 소년만 보아도 왠지 모르게 위축되었다.


움츠러드는 나 자신이 창피하고 비루하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약자는 강자 앞에서 최대한 몸을 낮추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까까머리 앞에서 여지없이 빗나갔다. 아무리 몸을 낮추고 피해도 녀석은 집요하게 나를 찾아내 괴롭혔다.


게다가, 이제는 친구들까지 데려와 집단으로 놀려대기 시작하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네 다섯 명의 무리들이 나를 둘러싼 모습에 위압감이 들었지만 이제는 이판사판이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야! 하지 마!”


나름 크게 소리를 지른다고 질렀지만 결과는 미약했다. 내가 들어도 자신 없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였다. 영진 빌딩 주차장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내 쪽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일부는 재미난 구경이라도 난 듯 까치발을 들고 고개까지 내 빼고 있었다. 주변 아이들의 시선에 힘입어 괴롭힘은 강도를 더해갔다.


“야~, 하지 마아아아~.”


그 중에 짓궂은 남자 아이 하나가 깐족거리며 내가 한 말을 따라했다. 급기야는, 주변의 있던 다른 아이들까지 단체로 돌림노래 하듯 내가 한 말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포위되듯 남자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그 자리에게 빠져나오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저, 쟤네들 앞에서 우는 꼴만은 보이지 말아야 겠다는 일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놀림이 계속될수록 눈가가 빨개지며 금방이라도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씩씩거리며 무리들을 노려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아 무릎 사이에 고개를 박고 엉엉 울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영진빌딩 공터에는 나와 놀지도 못하고 집 안에 처 박혀서 살아야 할 지 몰랐다. 아이들 앞에서 놀림당하고 울어버렸다는 것은 9살 인생 최대의 수치였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자, 두려움과 함께 막막함이 밀려왔다. 나를 감싸고 있던 습자지 같은 방패에 균열이 일어났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 앉아야 하나 싶을 때, 어디선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보는 니들이지. 여러 명이서 한 사람 괴롭히는 게 더 바보 아니야?”


느닷없는 외침에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로 향했다. 주인공은 바로 호돌이 티셔츠였다. 호돌이는 양손을 허리에 짚은 채 날 괴롭히는 무리들을 띠꺼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진 빌딩 지하 주차장 램프 입구 왼쪽 화단에 서 있던 호돌이 티셔츠는 그 순간 나에게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호돌이의 한 마디에 흥이 깨진 까까머리가 소리쳤다.


“네가 뭔데 상관이야!”


으르는 듯한 목소리는 여전히 위협적이었지만, 그것은 나한테만 유효한 것 같았다. 까까머리의 으름장에도 호돌이 티셔츠는 콧방귀를 끼며 뭐 어쩌라는 식으로 눈을 둥그렇게 뜨며 까까머리와 눈싸움을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매서운 시선에 아이들의 관심은 나에게서 호돌이 티셔츠로 옮겨갔다.


뉴페이스의 등장에 점점 흥미진진해진 영진빌딩 주차장은 OK 목장의 결투를 방불케 했다. 약한 사람을 무리지어 괴롭히는 까까머리와 그런 까까머리를 벌하는 정의로운 법 집행자 호돌이 티셔츠.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깬 것은 까까머리였다. 녀석이 먼저 선빵을 날리러 호돌이에게 돌진한 것이다.


“저 계집애가~!”


까까머리가 날랜 몸으로 돌진하자 호돌이도 가만 있지는 않았다. 호돌이는 화단 위 돌맹이를 잽싸게 집어 까까머리의 머리통에 정확하게 명중시켜 버렸다.


-딱!


머리통에 맞은 돌멩이 소리가 어찌나 찰 지던지 꼭 잘 익은 군밤이 터지는 것 같았다. 딱 소리와 함께 까까머리가 머리통을 감싸쥐며 몸을 웅크렸다. 잠시 뒤, 까까머리 이마에서 꽤 많은 양의 피가 눈가로 흘러내렸다.


놀다가 무릎이 깨지거나 손바닥이 까지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피는 처음 보는 거라 주차장 아이들 모두 한 순간에 얼어붙었다. 돌멩이를 던진 호돌이조차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 지 누구도 알지 못하고 얼음 상태로 서 있는데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그저 눈치만 보고 있지, 늘 속삭이면서도 사랑한다는 그 말을 못 해.


누군가 흥에 겨워 부르는 나미의 ‘빙글빙글.’ 소리의 출처는 영진 빌딩 지하 주차장 안쪽이었다. 보통 차가 올라오며 그 안에서 라디오를 트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면 노래 반주도 같이 나왔어야 한다. 이 노래는 반주 없이 생으로 흥얼거리는 것이었다.


순간, 아이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모두의 머릿속 영진 빌딩 주차장 귀신에 대한 괴담이 스쳐 지나갔다. 밤이면 밤마다 머리를 산발한 여자 귀신이 노래를 부르는데, 만일, 박수를 쳐주지 않으면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뜬소문.


노느라 잊고 있었지만, 어느 덧, 사위는 어둑해졌고 귀신이 출몰할 시간과 맞아 떨어졌다. 모두가 뻤뻤하게 굳은 채 지하 주차장에 시선을 고정했다. 점점 더 크게 들리는 노랫소리, 어둠속에서 차츰 형체를 갖추며 드러나는 무언가. 진짜, 귀신이 나타나는 건가 싶어 상처를 입은 까까머리조차 고통을 잊은 채 지하 주차장 입구를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그저 속만 태우고 있지. 늘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우리 두 사람.


진짜 귀신이 있었다. 산발한 파마 머리, 흐리멍덩한 눈동자. 어디서 구르기라도 했는지 지저분하고 너저분한 옷 차림새가 ‘빙글빙글’을 부르는 당대 최고 여가수의 화려한 모습과 오버랩되며 부자연스러움을 연출했다. 더군다나, 어디를 보고 웃는 것인지 올라간 입꼬리는 어딘가 괴이하기까지 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귀신을 동네 아이들 모두가 목격한 것이다. 겁에 질린 아이들은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하던 주차장 램프 근처가 한 동안 진공상태처럼 정적 속에 빠져들었다. 내내 노래를 흥얼거리던 여자 귀신도 잠시 노래를 멈추더니, 주변의 아이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러다, 여자 귀신이 까까머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는 뭔가 흥미 돋는 것이라도 발견한 듯 흐리멍덩한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에 번갈아 가며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물론, 눈동자가 커진 것 외에 다른 얼굴근육은 변화가 없었기에 그 모습이 더욱 기기하고 으스스하게 다가왔다.


여자 귀신과 아이들 모두 자리에서 이탈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원치 않는 대치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가위에 눌려 깰 수 없는 상태에서 손가락 끝 하나만 움찔거려도 악몽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것처럼 지나가는 어른 아무라도 그런 역할을 해 줬으면 했는데, 하필, 주변에 지나가는 어른도 한 명 없었다.


결국, 먼저 움직인 것은 귀신이었다. 빙글빙글 노래를 불렀던 나미 귀신은 갑자기 까까머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귀신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주변의 아이들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자리를 벗어났다.


“아아아악~~~.”


나 또한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언제나 한 발 늦는 나는 이번에도 주차장 공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저, 발이 땅에 못 박힌 듯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굳어진 몸은 위험에 노출되어도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했다. 심적인 본능은 정상적으로 작동했지만 신체적 본능은 확실히 비정상이었다.


까까머리 다음은 나일 것이다. 그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조막만한 머리통 속에 떠올랐다. 내가 죽으면 부모님은 많이 우실까? 어린 나를 친척집에 맡긴 것을 후회하실까? 세 밤만 자면 금방 오겠다고 했던 아빠는 1년이 지나도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한 번도 미안하단 말을 듣지 못한 것이 내내 서운했다. 그럼에도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웠다고 말하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말하고 싶은데 가능할까?


그런 생각들을 하며 귀신이 까까머리를 뒤쫓는 것을 멍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그러다 산발머리 귀신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보이지 않자 나도 모르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긴장이 풀리며 그제서야 깊은 숨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괜찮아?”


기척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호돌이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 손을 잡고 가까스로 일어난 나는 비로소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당찬 아이를 가까이서 마주 볼 수 있었다. 하얀 피부에 땡글땡글한 눈, 낮지만 귀여운 콧대, 야무진 입술이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얼굴이었다. 나 보다 한 뼘 정도 더 자라 키가 큰 호돌이는 어떻게 보면 언니 같았다. 언니 같은 친근함과 나를 까까머리로부터 구해주었다는 사실에 무한정 호감이 갔다.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까 도와줘서 고마워.”

“괜찮아, 걔네들이 나쁜 거지. 앞으로 그 코딱지 같은 놈 또 나타나면 나한테 말해. 내가 혼내 줄게.”

“코딱지?”

“응, 걔 까무잡잡하고 꾀제재한 게 꼭 코딱지 같지 않아?”

“코딱지… 아… 하하, 크크, 깔깔깔.”


까까머리를 코딱지라고 부른 순간, 이제까지 가슴속을 짓누르던 무거운 바위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 동안, 내 안에서 거대하고 두렵게만 보이던 까까머리가 하찮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가 벗겨져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 호돌이는 정말 구세주가 맞았다.


“어, 앞으로 코딱지 나타나면 꼭 말할게. 하하.”


터질 듯 비어져 나오는 나의 웃음에 전염된 호돌이 또한 삐뚤삐뚤한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렇게 우리 둘은 한 동안 주차장이 떠나가도록 한바탕 웃어 젖혔다.


내 유년 시절의 그리운 친구, 임연두와 친구가 된 첫 날이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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