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우리 동네 미친년
1980년대.
모든 동네에 미친놈 아니면 미친년이 꼭 한 명씩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국가적인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만 당시에는 전무했다. 그래서, 관리와 치료를 받지 못한 정신질환자들이 동네에 나돌아 다니곤 했다.
동네를 다니다 보면, 허름한 행색의 아저씨나 아줌마들이 행인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려는 장면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 다행히 주변에 중재하는 어른들이 있어 더 이상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등교길에 목격했던 한 미친놈은 아직까지 뇌리에 각인된 채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진 어느 봄날, 학교를 가기 위해 연두 그리고 연두동생과 함께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갑자기, 눈 앞으로 알몸의 아저씨가 장발을 휘날리며 횡단보도를 가볍게 조깅하듯 건너갔다. 깡 마른 팔.다리, 하얀 피부, 다리 사이에서 덜렁거리던 신체 일부.
말 그대로 시각 테러였다. 정신적인 충격에 머리가 멍해진 나는 눈을 깜박거리는 것도 잊은 채 멀어져가는 알몸을 놀란 눈으로 쫓았다.
“진희야!”
“어… 어?”
“방금 뭐야?”
“모… 모르겠어.”
당시 연두가 옆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혼자였다면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 채 학교에도 가지 못할 뻔했다. 나와 달리, 싹싹하고 똑 부러지는 연두는 야무지게 내 손과 동생인 연준이의 손까지 꽉 붙들고는 신호가 바뀐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날,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내가 목격한 것을 얘기했다. 당시, 아홉 살이던 내가 얼마나 조리있게 사실 그대로만 말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약간의 비약과 과장은 있을 지 언정, 나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임에도 엄마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깍두기를 담고 있던 엄마는 양념에 버무려진 무 한 조각을 맛보고는 불만인 듯 고추가루를 스텐 대야에 때려 부으며 말했다.
"이 동네에 그런 사람 어디 한둘이가? 니 언제는 여자 귀신 봤다 카더만!"
“어, 영진 빌딩 주차장에서 어떤 남자애 한 명 잡아갔어.”
"그거, 귀신 아이라, 이 동네 미친년이다."
“미친년?”
“...어, 그기…”
어린 딸의 입에서 나온 ‘미친 년’이란 단어가 듣기 거북스러웠는지 엄마는 불편한 기색으로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얼버무리려 했다.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 같은 엄마를 보며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무를 버무리는 엄마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귀찮게 했다.
“그게 무슨 말인데, 응? 말 해에에에~ 응?”
평소와 다르게 끈질기게 조르는 딸을 보며, 엄마는 귀찮기도, 지치기도 했던 모양이다. 만일,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해주지 않으면 귀신을 보고 놀란 그날처럼 내가 또 이불에 오줌을 지릴 지 모를 일이다. 세탁기가 모든 빨래를 다해주는 지금과 달리, 당시, 우리집에는 빨래판과 세탁 비누가 유일한 세탁 도구였다. 불필요한 가사노동을 줄이기 위해, 딸에게 현실을 직시시켜 줄 필요도 있다고 판단한 엄마는 어른들이 쉬쉬하는 미친년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니, 요 아래 한옥집 많은 데 알제?"
“어.”
"그 미친 년… 아니, 니가 봤다카던 그 여자 귀신, 거 산다. 그러니까, 그 여자는 귀신이 아이라, 사람이다. 원래는 여자가 회사도 다니고 결혼도 했었다. 근데 정신이 쪼매 이상했다카더라. 그래서 남편한테 소박맞고 쫓겨나가꼬, 지금은 지 어매랑 산다. 괜히 귀신이니 뭐니 헛소문 퍼뜨리지 말고, 그 여자 보이면 그냥 피해 다니라. 알겠나?"
“아…”
확실히, 엄마가 해준 얘기는 효과가 있었다. ‘나미’ 귀신을 본 이후로 밤마다 악몽을 꿔서 무서웠는데 실체를 알고 나니, 두려움과 공포는 사라지고 안도감이 찾아왔다. 아이를 잡아가는 무서운 귀신이 사실은 불쌍한 아줌마였다니… 허탈감마저 찾아왔다.
얼른, 이 사실을 연두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연두도 말은 안 하지만 ‘나미’ 귀신 때문에 나처럼 밤에 오줌을 지릴 지 모를 일이었다. 가게에서 나가 집 앞 영진 빌딩 주차장으로 바로 뛰어갔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연두는 그곳에서 놀고 있을 터였다.
“연두야! 임연두…”
예상대로 연두가 있었지만 문제는 또 다른 불청객도 있었다는 것이다. 일전에, 연두에게 머리를 돌멩이로 얻어맞은 코딱지가 이번에는 아는 동네 형들까지 대동하고 연두를 둘러싸고 있었다. 연두를 부르는 내 목소리에 코딱지를 위시한 다른 남자아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딱히 설명을 듣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코딱지가 치사하게 보복을 하는 중인 거였다. 예전이라면 바로 도망가 집으로 숨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연두와 친구가 된 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코딱지가 얼마나 비겁하고 나쁜 놈인지에 대한 얘기를 끊임없이 나누었다. 당연히, 코딱지가 그 동안 나에게 저지른 만행과 내 앞에서 오줌을 지린 일까지.
만나면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골려 주어야 할지를 종합장에 여러 번 써가며 적에 대한 전략을 짰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놈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기까지 했다. 내 입장에서는 코딱지에게 대항하기 위해 일종의 정신 무장을 한 셈이었다. 바야흐로, 그 때가 온 것이다.
비장한 눈빛으로 연두를 구하기 위해 주차장 램프 옆 공터로 걸어갔다. 남자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연두를 보았다. 아무래도 수적으로 열세인지라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그럼에도, 코딱지에게 지지 않겠다는 열의는 꺼지지 않은 듯 당당해 보였다. 연두의 멋진 모습에 힘입어 내가 먼저 코딱지에게 선방을 날렸다.
“어떻게 왔어? 귀신한테 잡혀 가서 죽은 줄 알았는데?”
“웃기지 마, 내가 왜 죽어. 내가 얼마나 빠른데!”
“하긴, 얼마나 무서웠으면 꽁지 빠지게 도망가긴 하더라.”
“이 계집애가 미쳤나! 내가 언제?”
“나랑 연두가 다 봤어. 너 울면서 도망가는 거.”
“안 울었거든!”
코딱지가 씩씩거리며 주먹을 치켜들고 내 코 앞까지 다가왔다. 주먹을 보니, 또 다시 간이 쪼그라들었지만 난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연두와 공책에 여러 번 써 내려간 대사들을 머릿속에 떠 올렸다.
“아니 울었어. 쩝때 너 내 앞에서 오줌 쌌잖아! 여기 지하에서 자동차 올라올 때. 기억 않나?”
“내.. 내가 언제!”
“그랬잖아. 내 앞에서 오줌 싼 거 다른 애들한테 말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그러면서 내 머리랑 배까지 때렸는데? 나 그 때 되게 아팠어. 만약, 오늘도 때리면 우리 엄마, 아빠가 너 가만 안 두겠다고 했어. 너희 엄마,아빠한테 찾아가서 네가 한 짓 다 얘기하고 사과까지 받을 거야. 너 이제 큰 일 났어!”
금방이라도 닿을 듯한 주먹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확신을 담아 녀석을 째려보듯 마주 보았다. 물론, 내가 한 말 중에 부모님 얘기는 다 거짓이다. 한 번도 코딱지에 대해 말 한 적 없으니, 우리 부모님이 코딱지의 부모를 찾아갈 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난 코딱지가 어디 사는 지조차 모른다.
그럼에도, 효과가 있었는지 코딱지의 얼굴이 달아오르며 홍시로 변했다. 더불어, 코딱지를 따라온 남자 아이들도 술렁거렸다. 아무래도, 어른이 나선다니 껄끄러웠던 모양이다. 지금이야, 아이들 사이에서 생기는 폭력에 학교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개입하는 일이 당연하지만, 때는 1980년대였다.
남,녀 가릴 것 없이,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게 그 당시의 상식이자 정서였다. 밖에서 몇 대 맞고 들어올 수 있으며 심지어 부모가 아닌 이웃어른이 다른 집 아이를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뺨 몇 대 때리는 것도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당연히, 나와 연두가 또래 남자아이들에게 맞는다 한들, 아이들끼리 놀면서 생길 수 있는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와 연두의 도박이 코딱지 무리에게 먹힐 가능성은 50대 50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영겁처럼 느껴졌다. 팽팽한 분위기 속, 코딱지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며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 모든 상황이 정리되는 것인가 싶어 한시름 놓고 있을 때, 의외로 코딱지가 맞받아쳤다.
“네가 한 말은 다 거짓말이야. 난 귀신 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아. 그러니까 울 일도 오줌 쌀 일도 없지. 내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주먹만 휘두르는 똥 멍청이 인줄만 알았는데 나름 생각이라는 것도 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그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말싸움이 일어나면 무조건 나오는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증거 있어?’ 였다. 증거. 그 놈의 증거 때문에 나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 지금처럼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CCTV가 동네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증거는 없었다.
공책에 써 놓은 것 외에 떠 오르는 말은 없었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당황한 모습이 역력하자, 코딱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오른쪽 주먹을 다른 손바닥에 여러 차례 치며 응징을 시작하려는 듯 몸을 풀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연두가 외쳤다.
“그럼 너도 증거 대봐!”
갑작스러운 연두의 발언에 주변에 모인 코딱지 무리가 잠시 멈칫했다. 나 또한 무슨 말인지 몰라 연두를 보자, 호돌이 티셔츠를 입은 연두가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나섰다.
“진희가 한 말이 거짓말이라고 했는데 증거 있어? 그러니까 다 같이 확인해 봐야 되는 거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 같이 확인해 볼 방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타임 머신을 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와 연두 외에 목격자를 당장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 울상을 지으며 연두를 보자, 똑 부러지는 연두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코딱지 포함 무리들에게 말했다.
“서로 증거 없잖아. 그러니까 직접 확인해 보자고!”
“뭐..뭘 어떻게 확인해?!”
“오늘 저녁 8시에 그 여자 귀신 여기 또 나타날 걸? 그 때, 네가 그 여자 귀신 보고도 안 도망가면 네가 한 말 인정해 줄게.”
“내가 왜… 왜 그래야 되는데!”
“거 봐, 무서우니까 못 하겠지?”
“누가 무섭대!?”
“좋아, 그럼 오늘 저녁 8시에 여기로 나와. 확인해 보자.”
지금 와서 생각해도 연두는 영민하고 영악한 아이였다. 코딱지의 우기기에 머릿속이 백지 상태가 되어버린 나와는 다르게, 연두는 상대의 약점과 심리를 파악해 막다른 골목에서 돌파구를 찾아내는 친구였다. 내 입장에서는 일종의 지적인 충격이었기에 또래지만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코딱지 무리들과 8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진 다음, 둘만 있을 때 물어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말 할 수 있었어? 난 아무 생각도 안 나던데.”
“보물섬.”
“어? 보물섬?”
“만화책이야. 거기에 코딱지처럼 거짓말하는 얘들 혼내 주는 법이 나와있거든. 거기에 나온 대로 따라해 본거야.”
“와아… 멋지다.”
“내가 다음에 가져올게. 같이 보자.”
“그래!”
서로 마주보며 까르르 웃어 젖힌 우리는 코딱지 따위는 잊어버리고 신나게 놀았다. 최고의 친구를 만난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맨날, 지 자랑만 하는 혜영이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았다. 코딱지 무리들 말고 그 보다 더 큰 악의 무리들이 나타나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저녁 8시의 약속이 걱정되었다. 코딱지 무리들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미친 아줌마를 보는 것이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엄마는 분명 그 아줌마를 피하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아줌마를 보기 위한 약속을 잡아버린 것이다.
엄마 말씀을 잘 듣는 것과 친구와의 의리 사이에서 수없이 갈팡질팡 했다.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코딱지와 벌이는 한판승부에 연두 혼자 가게 둘 수는 없었다. 결국, 마음을 정했다. 이후,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드디어 오후 8시가 되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