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19화-우리 동네 미친년 2

by 해금이


코딱지 무리들은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와있었다. 어둑해진 주차장 앞에는 아이들이 제법 모여 있었는데 아무래도 우리의 싸움 소식이 아름아름 전해진 것 같았다. 일전에, 귀신이 출몰했다는 소식에 노는 아이들의 수가 현저히 줄었었는데 이 날은 그 수를 얼추 회복한 것 같았다.


나와 연두 그리고 코딱지 무리는 주차장 램프를 중심으로 양 옆에 대치하고 있었다. 코딱지 무리는 오른쪽 공터, 나와 연두는 왼쪽 화단에 서 있었다. 지난 번, 귀신이 지하 주차장 안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오늘도 비슷한 패턴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주차장에 모여든 어린 구경꾼들은 흥미진진한 이벤트에 설렘과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귀신이 나온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호기심에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심지어, 아이들 중 몇몇은 귀신에 대항하기 위해 집에서 쓰는 장난감 칼이나 새총을 가지고 나오기도 했다.


“진짜 귀신이 나와?”

“당연하지. 저번에도 나왔어. 귀신 나오면 내가 이 칼로 한 방에 무찌를 꺼야.”


하지만, 귀신을 물리치겠다는 아이들의 각오와 기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사그라 들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귀신이 주차장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오는 것이라고는 검은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 몇 대가 다였다.


“진짜 귀신 나오는 거 맞아?”

“야, 너가 귀신 나온다고 했잖아!”


곳곳에서 친구 탓을 하며 심통을 부리는 아이들이 늘어갔고 몇몇 아이들은 체념을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야, 그냥 집에 가자.”


결국, 남은 아이들은 나와 연두, 코딱지와 그 무리들 중 한 명뿐이었다. 무리를 등에 지고 있을 때는 기세등등 하더니 쪽수가 줄자 코딱지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그나마, 코딱지와 함께 있어주던 한 명조차 숙제를 해야 한다며 집으로 가 버렸다. 결국, 남은 것은 코딱지와 우리뿐이었다. 초조해진 코딱지가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건물의 자동차가 빠져나간 주차장 공터는 고요하고 으스스한 기운만 감돌았다.


2006년 현재, 도심의 밤은 상점 혹은 건물의 전광판이 뿜어대는 인공 불빛들 천지라 낮과 밤의 구별이 무의미하다. 그러나, 80년대의 도심은 가로등조차 드문드문 켜졌다. 88올릭픽 이후 개선되었지만 우리 동네에는 대로변의 조도가 낮은 희미한 가로등이 전부였다. 하물며, 건물 뒤쪽 주차장 공터는 암흑천지라고 봐도 무방했다. 빛 이라고는 달빛이 유일했다. 나와 연두 또한 짙어지는 어둠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쯤, 어디선가 희미한 노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그저 눈치만 보고 있지. 늘 속삭이면서도 사랑한다는 그 말을 못 해.”


경쾌한 디스코풍의 밝고 신나는 노래가 처량한 음색과 만나 괴이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셋만 있는 주차장 입구. 노래는 지하가 아닌 램프 뒤쪽의 동산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와 연두가 서 있는 램프 입구 왼쪽 화단에서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코딱지가 서 있는 오른쪽 공터와 이어지는 작은 동산이 나온다. 삭막한 건물과 낡은 주택들만 들어선 도심 속에 숨겨진 작은 동산은 비밀의 화원 같은 곳이다.


램프 진입로 상단 모서리 뒤쪽으로 만들어진 비밀의 화원은 아이들 가슴 높이의 관목들이 반원모양으로 빽빽이 심겨져 있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램프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을 차단하기위해 심어둔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아늑한 동산이 되었다. 푸릇푸릇한 잔디밭 위로 봄마다 이름모를 꽃들이 피어나면 동네 여자 아이들은 이가 빠진 사기 접시들을 가져와 소꿉놀이를 하곤 했다.


그런 비밀의 화원에서 여자 귀신이 관목 끄트머리쯤 위태위태하게 서서는 램프쪽을 내려다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달빛을 받아 창백한 얼굴을 한, 엄마가 미쳤다고 한 그 아줌마는 처량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빙글빙글을 불렀다. 평상복인지 잠옷인지 구분이 안 되는 옷차림에 산발한 머리, 눈동자가 풀린 듯 멍한 시선은 여전했지만 그 아줌마의 사정을 알고 보니 무섭다기 보다는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 아줌마의 사정은 연두에게도 미리 얘기해 두었다. 그래서인지, 첫 날 아줌마를 대면했을 때보다는 침착해 보였다. 반면, 코딱지는 정말이지 한결 같았다. 우는 것과 동시에 오줌까지 지리고 있었다. 이 때가 기회다 싶어 연두가 코딱지에게 외쳤다.


“야, 코딱지. 나랑 진희가 너 울고 오줌 누는 것까지 다 봤어. 네가 거짓말한 거 인정해.”


연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아줌마가 노래를 멈추고 나와 연두 그리고 코딱지를 번갈아 보았다. 아줌마의 눈에 띄었다는 사실에 나와 연두는 움찔하다 말았지만 코딱지는 달랐다. 공포에 질린 코딱지는 궁지에 몰린 쥐 같았다. 평소 까무잡잡한 코딱지의 얼굴은 아예 흙빛으로 질려버렸다.


대놓고 치부를 드러낸 코딱지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듯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듯, 결국, 녀석은 이판사판으로 갔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제법 큰 돌멩이를 여러 개 집더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줌마를 향해 무작정 던지기 시작했다.


“꺼져. 엉엉. 저리 꺼지라고. 엉엉. 내가 귀신 따위 무서워할 것 같아?”


나와 연두는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화단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저 미친 코딱지가 언제 돌변해 우리에게 돌을 던질지 모를 일이었다. 일전에, 연두에게 당한 것도 있고 표적이 꼭 빙글빙글 아줌마만 되라는 법도 없다.


“죽어! 꺼져!”


코딱지는 악다구니를 쓰며 돌을 던졌지만 공격의 대부분은 빗나갔다. 하지만, 고정되어 있는 타겟을 명중시키는 것은 확률과 시간의 문제였다. 코딱지가 제법 가까운 곳에서 던진 돌멩이는 아줌마의 머리에 맞았고 이전에 코딱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줌마의 머리에서도 피가 흘렀다. 달빛을 받아 창백해진 얼굴과 빨간 피가 묘한 대비를 이루며 기괴하지만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렇지 않아도 공포와 흥분 상태에 있던 코딱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더욱 겁을 집어먹었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자리에서 내뺐다. 나와 연두의 완벽한 승리였다. 이제 남은 것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각자 집에 가서 발 뻗고 자는 것이다. 하지만, 코딱지의 돌멩이에 맞아 다친 아줌마가 마음에 걸렸다. 아줌마의 상태를 보고 싶었지만, 막상 다가가기는 무서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희야~! 진희야~!”


마침 잘 됐다 싶어 손을 들어 엄마에게 위치를 알렸다.


“엄마, 여기, 여기.”

"여기서 뭐하노? 동생들 좀 보라캤더니 나가삐고, 들어오지도 안 하고! 지금 시간이 몇 시고!"


엄마의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했다. 동생들을 두고 그냥 나오면서 혼날 것은 어느정도 각오했지만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지금은 연두도 옆에 있는데 좀 창피했다. 뭐라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마가 내 등짝을 세게 내려치며 물었다.


"니 뭐 했노, 응? 뭐 지랄했는데?!”


영문을 몰라, 엄마를 올려다보니, 엄마가 화단 위에 서 있는 아줌마와 내 손에 쥐여져 있는 돌멩이를 번갈아 보며 다그치듯 물었다. 오해받을 만하다는 건 알지만, 엄마의 강한 말투에 당황해 말이 막혔다. 옆의 연두도 놀란 듯 입을 다물고 서 있었다.


평상시나 화가 났을 때나 엄마의 경상도 말투는 언제나 억척스럽고 세다. 심지어, 아빠조차 엄마의 말투에 빈정이 상해 밥상을 엎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하물며 엄마를 처음 대면하는 연두는 오죽했을까. 아무리 똑 부러지는 연두라도 화가 나서 흥분한 어른에게 상황설명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후 10시. 새벽부터 일어나 자식들을 먹이고 장사를 위해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인 엄마는 이제야 피곤한 몸 누일까 고대하고 있었을 시간이다. 그런데, 큰 딸이 사고를 쳐버린 것이다. 화가 머리끝가지 치솟은 엄마는 킹콩처럼 가슴을 여러 번 쳐 댔다. 엄마의 모습에 놀란 우리 둘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엄마는 깊은 한 숨을 내 쉬고는 말했다.


"니, 어디 사노?"

“저… 아래 건물이요.”

“미싱 돌리는 데?”

“네.”

"시간도 늦었는데 뭐하노, 얼른 집에 가라. 그리고 또 이런 짓 한 번만 더 해봐라. 그때는 진짜 가만 안 둔다."


엄마의 경고성 발언에 입을 달싹이려던 연두는 이내 입을 다물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 또한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며 살짝 뒤를 돌아보니, 그 아줌마는 여전히 피를 흘리며 처량하게 동산에 서 있었다. 희미하지만 얼핏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가게 안방으로 들어와 손님이 머물렀던 자리에 남은 냅킨과 먼지를 대충 훑어낸 뒤 이불을 깔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엄마에게 꼭 사실을 말해줘야 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자리에 눕자 마자 따뜻한 방바닥의 온기에 노곤함이 밀려왔다.


‘자면 안 되는데… 엄마한테 말해야 하는데…’


이후의 기억은 꿈결처럼 희미하다. 잠결에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혹여, 누가 들을까 싶어 속삭이듯 주고받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엄마와 우리 가게 옆 정육점 아줌마였다.


"언니가 말 좀 잘해줘라. 애들이 뭘 모르고 무서버서 그런 거 같더라. 고향 사람 좋다 카는 게 뭐꼬, 응?"

"에휴, 그래야지 뭐 별 수 있겠나. 이 동네 애들한테 봉변 한 두번 당한 것도 아이고. 우리 형님은 어쩌다 말년에 이리 고달퍼졌노… 쯧쯧. 멀쩡하던 딸내미가 왜 갑자기 정신이 나가삐가고는."

"전 남편이 지랄맞게 때렸다매? 그래서 언니 조카 그렇게 된 거 아이가?"

"그라믄, 세상에 안 미칠 여자 어디 있노. 다들 말은 안 해도 쪼매쪼매 맞고 사는 기지."

"많이 다친 건 아이제? 아까 보니까 피가 좀 많이 나던데, 병원… 가야 되는 거 아이가?"

"됐다, 마. 그냥 대일밴드 하나 붙이면 된다. 우리 형님도 인자 그러려니 한다. 사실, 또 가만 안 있으면 우얄긴데? 이 동네서 안 쫓기 날라믄, 고마 가마 있어야지”

"고맙다, 언니야~! 아, 내일 점심에 언니가 큰형님이랑 그 조카도 데꼬 와 짬뽕 묵고 가라. 내가 서비스로 군만두 줄게."

"됐다. 신경 쓰지 말라 카는데… 그래도 초대는 받았는데 안 오는 것도 실례지. 그라믄 내일 보자."

“예~ 언니. 내일 점심에 뵐게예~


가게 출입문이 닫히는 소리를 끝으로 홀의 조명이 꺼졌다. 이후 엄마와 아빠가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눕고 약간의 뒤척이는 소리를 끝으로 모든 소음들이 사라졌다. 밤의 고요가 주는 불안감이 또 다시 나를 엄습했다.


몇 년 전, 아빠가 고모집에 나를 맡길 때, 내가 잠든 순간을 틈타 떠나려는 아빠를 이미 예감했었다. 결코, 아빠 손을 놓지 않으려 잠이 드는 순간에도 아빠의 손가락을 꽉 쥐고 잠들었었다. 그럼에도 아이의 잠은 그 어떤 것보다 무겁고 강력해서 결국, 아빠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아빠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는 뒤늦은 후회와 죄책감에 한 동안 잠드는 것이 괴로웠다. 그런데, 그 밤, 내가 꿈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뿌리치고 있었다. 울며 매달리는 누군가의 절박한 손을 뿌리치고 훌훌 떠났다. 그 누군가가 영진빌딩에 홀로 남아 흐느끼는 나미 아줌마라는 걸 알았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외면하고 나니 왠지 모를 안도감이 찾아왔다.


문득, ‘아빠도 나를 두고 갈 때 그랬을까?’ 라는 생각을 끝으로 다시 깊은 잠 빠져들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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