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무도 모른다

20화-오락실

by 해금이


놀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나는 현재와 다르게, 1980년대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오락거리가 드물었다. 기껏해야 TV나 라디오가 전국민에게 제공되는 공통의 오락 거리였던 시대. 물론, 책이나 잡지 등 구독하면 받아볼 수 있는 간행물이 있기는 했으나 우리집에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사치품에 불과했다.


그나마, 부모님이 구독하는 유일한 매체는 손님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신문이 유일했다. 하지만, 한문과 한글이 빽빽이 들어찬 종이 따위 9살 여자아이에겐 폐지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신문이 배달되면 유일하게 펼쳐 보는 지면이 있었는데 바로 텔레비전 프로그램 편성표였다.


오후 5시 30분 KBS2 채널-개구쟁이 스머프

오후 6시 05분 MBC 채널-귀염둥이 포니


당시에는 지상파 4사와 AFKN이 채널의 전부였고, 한 번 놓치면 만화영화의 재방송은 없었기에 본방 사수는 필수였다. 그런 나를 부모님은 ‘TV박사’라고 부르며 다른 프로그램의 편성 시간까지 물어보곤 했다.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인 나는 TV 편성표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모든 프로그램의 시간대를 외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뉴스, 드라마, 다큐멘터리까지… 재미가 없었어도 텔레비전은 더부살이를 할 때나 아닐 때나 내 곁에 묵묵이 있어준 유일한 친구였다. 그만큼 놀거리, 볼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에, 마침내, 희소식이 생겼으니, 우리 가게 맞은편 영진빌딩 1층에 오락실이 생긴 것이다. 식당과 마주보는 오락실은 길만 건너면 펼쳐지는 신세계였다. 약간의 코 묻은 돈만 있으면, 아니 없어도 출입이 가능한 이 곳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양쪽으로 쭉 늘어선 오락 기계들이 다양한 종류의 전자음을 내 뿜으며 모험과 탐험의 세계를 선사했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보글보글, 너구리, 갤러그 등등의 게임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이야, 저화질의 레트로 게임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어리고 순수한 뇌를 중독으로 이끌만큼 파격적인 자극이었다.


용돈의 전부를 간식을 사 먹는 대신 오락기계 동전 구멍에 집어넣을 만큼 게임에 심취한 때가 있었다. 화생방 훈련을 방불케 할 만큼 매캐하고 뿌연 담배 연기가 가득한 오락실은 첫 발을 들이기가 어렵지 일단 들어가면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갔다.


한 판에 50원 자리 게임을 1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내 버리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른 오빠들이 하는 게임을 구경하는 것 뿐이었다. 나 보다 한 두 살 많은 오빠들부터 아저씨들까지… 그들은 내가 깨지 못한 50판, 80판까지 가서 마왕을 물리치고 잡혀간 주인공의 여자친구를 구해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폴’ 이라는 만화에서 니나를 마왕에게서 구하는 폴 같았다.


대리만족을 느끼며 플레이어 뒤에서 게임을 응원하고 있으면, 종종, 누군가 내 머리를 칭찬하듯 쓰다듬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뒤를 돌아보면, 오락실 주인 아저씨였다. 마르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아저씨는 나 말고도 오락실의 다른 또래 아이들에게 예쁘다며 머리나 볼 등을 쓰다듬었다.


귀찮고 짜증이 났지만, 상대가 주인 아저씨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만일, 왜 만지냐고 짜증을 내거나 싫은 기색을 내비치면 돈도 없는 주제에 오락실에 있는다며 쫓겨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아저씨의 행동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금 고수들의 게임에 집중하곤 했다.


게임을 구경하는 중에 아저씨가 불시에 머리나 볼을 쓰다듬는 점을 제외하면 오락실 아저씨는 오히려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늘 상쾌한 스킨 냄새가 났고 옷차림도 깔끔했다. 각이 잡힐 정도로 다림질된 면바지와 흰 셔츠 그리고 그 위에 덧 입은 아이보리 브이넥 니트조끼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잘사는 도련님 같았다.


비록, 개구쟁이 스머프에 나오는 악당, 가가멜과 비슷하게 생긴 매부리코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 외에는 전혀 흠잡을 것이 없는 아저씨였다. 이 동네, 어른들이 먹고 사느라 억척스럽고 거칠다면, 오락실 아저씨는 여유롭고 다정했다.


아이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눈을 맞추며 미소 지었다. 오락실 아저씨는 어렸던 내가 처음 접해 본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생활이 팍팍해서 인색한 주변 어른들과 달리, 오락실 아저씨는 크던 작던 주변사람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오락실 아이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주전부리였다. 오락실이 개업을 한 이후로 용돈을 게임에 탕진하느라 과자를 사먹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는데, 종종 허기가 지면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오락실 카운터로 갔다.


오락실로 들어가면 정면에 자리한 카운터 책상 위에는 돈을 모아두는 철제 금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온갖 주전부리가 진열되어 있었다. 아저씨가 먹으려고 사온 것인지,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사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그 과자 때문에 카운터 주변에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들끓었다는 것이다.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아저씨는 참 행복해 보였다.


매부리코 아저씨는 동네 어른들에게도 인심이 후했다. 가게를 개업하는 동시에 시루떡은 물론 개업 기념 수건까지 돌린 것이다. 물자가 귀했던 당시, 공짜 수건은 아줌마들에게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 오락실 아저씨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여론은 급속도로 좋아졌다. 아이들 코 묻은 돈이나 갈취하고 불량 청소년을 끌어들인다며 뒤에서 욕을 하던 어른들의 입도 잠잠해졌다.


단순히, 시루떡과 수건이 그 모든 말들을 잠재웠나 싶지만, 진실은 좀 더 깊숙이 있었다. 매부리코 아저씨가 영진 빌딩 1층에 오락실을 개업할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영진빌딩 건물주와 오락실 주인 아저씨가 형제지간이었던 것이다. 밤 늦은 시간, 나와 동생들을 재우고 부모님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하는 얘기들을 잠결에 들을 수 있었다.


“오락실이 영진빌딩 건물 주인 동생이라카더라?”

“그렇다카데. 근데 나이 차가 좀 나가꼬 형제보단 삼촌이랑 조카 같은 기라.”

“니미럴, 좋겠다~! 월세 걱정은 없겠네. 주인 영감이 내년부터 우리 가게 월세 올리겠다카더라.”

“얼마나?”

“10만 원”

“하이고, 그라고 많이 올린다카나?”

“주인 영감탱이가 아주 능구렁이 같다. 영진빌딩 회사 사람들 점심 때 많이 온다꼬 하면서 월세 올린다카고, 아주 날로 먹으려고 한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번다고… 우리는 고생 바가지로 하는데, 그 영감은 앉아서 돈만 받아묵는 기라.”

“하휴….”

“씨팔, 안 그래도 요 아래에 청요리집 하나 더 생기가 손님도 줄었는데…”


부모님의 한숨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10만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알기에 더더욱 그랬다. 장녀로서 그 동안 너무 안일했다. 내일부터 오락실에도 그만 가고, 과자도 그만 사 먹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처럼 안 쓰고 절약하면 조금이나마 부모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그 각오는 오락실을 보자마자 바로 무너져 내렸고, 홀린 듯 오락실로 발걸음이 향했다. 그런데, 출입문을 잡고 문을 밀려는 순간, 내 손을 잡아챈 사람이 있었다.


“진희야, 왜 요즘 나랑 안 놀아?”


진혜영이었다. 그러고보니, 최근 연두와 노느라 혜영이와는 좀처럼 놀지 못했다. 사실, 못 논 것이 아니라 안 논 것이지만. 만나면 잘난 척만 해대는 혜영이와는 놀기 싫었다. 언젠가, 혜영이 엄마와 혜영이가 나를 면전에 두고 창피를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화근은 골덴 원피스를 입은 혜영이에게 ‘예쁘다’라는 말 한 마디를 안 했다는 이유였다. 다음 번, 혜영이네로 갔을 때 나를 앉혀두고 두 사람이 대놓고 쑥떡거렸다.


“엄마! 진희 얘, 내가 새 옷 입은 거 보고 예쁘다고 한 마디도 안 했다!”

“네가 새 옷 입은 거 보고 부러워서 그런가보다. 호호”

“그래서 그런 거야? 깔깔~! 진희야, 지금이라도 한 번 입어 볼래?”


김칫국물이 흉하게 번져 이제는 그 본래의 빛깔을 잃어버린 누런 원피스가 내 앞에 건네 졌을 때 난생처음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이후로는 다시 혜영이네 집에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놀기를 거부했더니 혜영이가 나를 직접 찾아온 것이다.


“너 요즘 새로 전학 온 애랑 놀더라? 이제 난 잊어버린 거야?”


그 동안 네가 나한테 어떤 짓을 했는지 곰곰이 잘 생각해보라고 한껏 퍼부었으면 정말 좋았을 것이다. 너와 너희 엄마 앞에서 내가 느꼈던 초라함, 비루함, 모멸감 이 모든 쓰레기 같은 감정들을 너와의 관계를 단절함으로서 벗어나리라 말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였다. 나를 지켜줄 뒷배도, 스스로를 지킬 방패도 없는 약자 중에 약자였다. 부모에게조차 원하는 바를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나는 친구에게도 솔직할 수 없었다. 진짜 속마음을 말하면 싸움이 일어날 것이고, 난 그 싸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억울하고 불편해도 나만 참으면 아무 일 없이 평화로울 수 있다. 부글부글 끓는 속마음과는 달리, 내 입은 엉뚱한 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은 나 요즘 오락실 가느라 바빴거든. 진짜 재밌어. 너두 같이 갈래?”

“뭐?”

“너 혹시 돈 있어?”

“어, 왜?”

“한 판에 50원인데 잘만하면 50원으로 1시간도 오락할 수 있어. 같이 들어가자.”

“엄마가 오락실 같은데 가지 말랬는데… 무서운 오빠들 많다고.”

“하나도 안 무서워. 오빠들이 얼마나 오락을 잘 하는데. 구경만 해도 재미있어.”


혜영이에 대한 미움은 곧 오락실 안에서 경험할 쾌락 앞에서 금세 사그라 들었다. 혜영이의 용돈은 항상 두둑했고, 혜영이 덕분에 공짜 오락 또한 할 수 있을 터였다. 오락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꼴 보기 싫은 혜영이는 다시 절친이 되었다. 예상대로 혜영이는 나에게 무려 500원이나 되는 거금을 쾌척해 주었다.


난 그 돈으로 이제껏 한 번도 깨 보지 못한 보글보글의 다섯 번째 판에 도전하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이토록 짜릿한 쾌감은. 온 신경이 오락기 화면에 쏠려 있어 다른 것들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같이 온 혜영이는 물론 나 자신에게조차. 정신이 든 것은 혜영이가 돈을 다 써버렸다며 집으로 돈을 가지러 가자고 했을 때였다.


흔쾌히 혜영이의 손을 잡고 오락실을 나왔다. 혜영이도 게임에 재미를 들인 것 같으니, 이번에는 좀 더 많은 돈을 가지고 나올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번엔 혜영이가 얼마만큼의 게임비를 나에게 대줄 지 사뭇 기대가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혜영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혜영이가 물었다.


“너 오락실 아저씨랑 친해?”

“어! 친하지. 그 아저씨 되게 좋아. 가끔씩 나한테 과자도 그냥 주고 그래. 돈 없어도 오락실에서 나가라고 안하고. 착한 아저씨야.”

“아~, 그래서 그랬구나.”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아, 근데… 진희, 넌 아빠랑 뽀뽀해?”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고.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


빨리 오락을 하러 가야 하는데 머뭇거리듯 묻는 혜영이의 질문에 짜증이 올라왔다. 별 시답지 않은 물음이 이내 아빠의 지긋지긋한 술주정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빠의 취미와 특기는 술 마시기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고된 장사와 배달에 피곤한 아빠는 매일 하루를 소주로 마무리했다.


엄마와 반주를 하는 날은 그나마 괜찮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어디서 그렇게 마시고 오는 지 술이 떡이 되어 들어왔다. 오후 11시. 아빠는 나와 동생들이 자고 있는 방에 불을 켜고, 잠든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어른을 공경해야 한다.’ 등등의 뻔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동생들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나마 말이 통하는 나를 깨운 것 같은데 그 지점이 제일 짜증스러웠다.


비몽사몽 간에 들은 아빠의 술주정은 한 귀로 들어와 한 귀로 나갔고 전혀 집중하지 않는 내 모습에 아빠는 빈정이 상해 나를 더욱 꾸짖었다.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나는 기분이 상해 무릎을 꿇고 아빠의 술주정을 견뎌냈다. 결국, 안 되겠다 싶은 엄마가 아빠를 말려 겨우 나를 이불 속으로 들여보냈지만 거기가 끝은 아니었다. 술김에 딸자식을 혼내고 미안했는지 아빠는 내 입술에 당신의 입술을 길게 부비며 나름 사과의 제스처를 취한 후 곯아 떨어졌다.


과연 그걸 뽀뽀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뽀뽀도 뽀뽀라면 뽀뽀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두루뭉술한 대답에 혜영이는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확실한 정답을 원하는 것 같은데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게 다였다. 이상한 애다. 자기도 아빠가 있다면서 왜 이런 종류의 질문들을 할까 싶었다.


“넌 아빠랑 뭐하고 놀아?”

“넌 아빠랑 같이 자?”


혜영이네 아빠가 출장이 잦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빠와 관련된 저런 시시콜콜한 질문은 내 관심 밖이었다. 저런 질문을 하는 혜영이는 답지 않게 늘 조심스러워서 가끔 기분이 내킬 때나 자세히 대답해 주었다.


“아빠가 비행기 많이 태워줘. 아빠가 내 배 위에다 발 올려놓고 아래에서 위로 들어올려 주면 그건 좀 재밌어.”

“아빠랑 같이 자냐고? 당연하지. 방이 하나뿐인데 어떻게 같이 안 자냐? 씨… 나도 엄마 옆에서 자고 싶은데... 동생들 때문에 아빠 옆에서 자야 돼.”


아빠와 뽀뽀를 하냐는 혜영이의 질문이 좀 짜증스럽긴 했지만, 오늘 혜영이는 나의 물주다.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면 또 다시 500원어치 오락을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 아빠가 술 많이 먹으면 주로 뽀뽀해. 다른 때는 안하고.”

“아~, 너도 그렇구나.”


순간 혜영이의 얼굴이 화사하게 밝아졌다. 어려운 숙제 하나를 해치운 듯 개운해 보였다. 그날, 혜영이는 나에게 무려 천 원어치의 오락을 시켜주었다.



매우 즐거운 하루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 인물, 단체, 지명 및 장소는 모두 허구이며 실제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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